군대가 시간을 부르는 방식: 권력, 문화 그리고 이데올로기
“야, 니 짬에 짬밥을 이거밖에 안 먹고 그냥 짬처리하냐?
짬 좀 찼어? 아놔, 오늘 내 짬에 급양감독 짬처리 받은 것도 기분 나쁜데 이 녀석이 짬질하는 거 보니까 더 기분이 나쁘네.”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이해한다면, 당신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일 것이다. 군대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군대 토익 900점’쯤 된다. 군대에서 ‘짬’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뜻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짬밥’은 병영식을 뜻한다.
‘짬처리’는 먹지 않은 밥을 그대로 잔반통에 버리는 행위다.
“짬 좀 찼어?”에서의 짬은 복무 기간을 가리킨다.
일정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군 생활의 질서를 이해해야 하지 않느냐,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책이 담긴 말이다.
“내 짬에” 역시 복무 경력을 기준 삼는 표현이다.
그러나 같은 ‘짬처리’라는 말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였다. 급양감독처럼 번거로운 임무를 떠맡는 일, 위로부터 내려온 일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상황을 두고도 ‘짬처리’라고 부른다.
마지막의 ‘짬질’은 복무 기간이 쌓이며 드러나는 태도다.
때로는 여유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권위의 행사로 읽힌다. 그것은 단순한 익숙함이 아니라, 위계를 자원으로 삼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짬’이라는 단어는 식사, 잔반, 시간, 노동, 태도 등을 동시에 가리킨다.
그것은 단순한 은어가 아니다.
하나의 단어 안에 군대의 위계와 통제가 압축되어 있다.
짬은 때로 서열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때로는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된다. 하나의 단어가 이처럼 여러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단순한 은어가 아니라 군대라는 공간의 질서를 압축해 놓은 상징임을 보여준다.
사실 ‘짬’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병영식을 ‘짬밥’이라고 부르고, 원치 않는 일을 ‘짬처리’라고 말한다. 그 어감에는 어딘가 낮춤과 체념이 묻어 있다. 우리는 사회에서 급식을 그저 ‘급식’이라고 부른다. 특별한 비하의 언어를 덧붙이지 않는다. 그런데 군대에서는 밥이 ‘짬밥’이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밥이 얼마나 맛이 없으면 짬밥이라 불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밥은 예비역들에게 때때로 추억이 된다. 이상하게도 유난히 맛있었던 기억도 함께 따라온다.
말년 병장도 식당으로 뛰어가게 만든다는 미역국,
꼬리곰탕이 나오는 날이면 배식 줄이 유독 길어졌다.
소세지야채볶음, 제육볶음, 잘 익은 깍두기, 짭짤한 오징어젓갈까지.평소에는 투덜거리던 병사들도 그날만큼은 말없이 한 숟갈을 더 떴다.
동원훈련 통제 간부로 나간 적이 있다. 예비군 훈련 기간 동안, 예비군들을 훈련장으로 안내하고 전반적인 일정을 통제하는 임무였다. 오랜만에 군복을 다시 입은 예비군들의 관심사는 의외로 단순했다.
첫째는 “PX는 언제 여느냐”였고,
둘째는 “오늘 식단이 뭐냐”였다.
수료일도, 훈련 강도도, 사격 점수도 아니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은 늘 PX와 짬밥이었다.
현역 시절에는 불평의 대상이던 짬밥이,
전역 후에는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메뉴가 된다.
짬은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들은 어딘가 들떠 보였다.
현역이 아닌, 2박 3일짜리 예비군훈련을 일종의 군대 체험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PX가 열리자마자 몇몇은 빅팜과 참치캔을 집어 들었다.
어떤 이들은 맛다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현역 시절에는 지겹게 먹던 것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음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을 다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환하고 싶은 자신의 기억을 말이다.
빅팜 하나, 맛다시 한 봉지 안에는
훈련이 끝나고 PX 앞에 줄 서 있던 저녁의 공기와,
지겹다며 투덜거리던 스무 살의 표정이 함께 들어 있었을 것이다.
짬은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추억이 된다.
불평의 언어였던 짬밥은,
어느새 되돌아보고 싶은 시절의 맛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짬’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잊지 않는다. 사격을 지시하면 “아, 내 짬에 이걸 또 해야 합니까” 하고 웃으며 반문하고, 훈련 일정을 통제하면
“내 짬에 진짜…” 하고 투덜거린다. 통제 조교로 서 있는 병사를 마주하면, 마치 말년 병장이 신병을 대하듯 득달같이 다가간다. “형이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하며, 어느새 과거의 위계를 소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시키든 곧잘 해낸다.
총기 분해·결합도, 주특기 훈련도 어색함 없이 수행한다.
타이트한 시간 계획에도 투덜거리지만, 결국은 정확히 지킨다. 군대에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된 훈련과 통제 속에서 형성된 습관,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태도.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하나의 아비투스다.
짬은 계급장이 아니라, 시간이 체화되어 만들어진 자본이다.
그래서 짬은 사라지지 않는다.
전역을 해도, 군복을 벗어도,
몸은 여전히 그 질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
시간이 쌓여 태도가 되고, 태도가 질서가 되는 상태.
그게 바로 ‘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