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밥을 기다리던 일요일

짬밥과 사제밥 사이에서 생각한 군인의 시간

by 고품격 글쟁이


사제밥.





사제’라는 단어와 ‘’이 붙어 만들어진 기묘한 복합명사다.

군대에서는 군용이 아닌 모든 물건을 ‘사제용품’이라 불렀다. 사회에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뜻이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일제와 미제 위에 '사제'가 있다.”






군대라는 공간은 폐쇄적이고, 그 안에서는 대부분 같은 보급품을 사용한다. 그래서일까. 병사들에게 ‘사제’라는 말에는 늘 작은 동경 같은 것이 따라붙었다.


더욱이 수통이나 반합처럼 군용 물품은 편의성보다 내구성을 우선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사제용품을 선호하게 된다.






사제 라이터, 사제 랜턴, 사제 담배 같은 것들이다.







물론 이런 물건들은 간부들의 눈에 잘 띄었고 지적을 받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아무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이 된 병사들만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짬도 안 되는 병사가 어설프게 사제용품을 쓰다간 십중팔구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야. 개념 없냐?”






사실 ‘사제밥’이라는 말은 참 아이러니한 표현이다.


사제밥이 있다면 군용밥도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런 말은 없다. 군대에서 먹는 병영식은 그저 ‘짬밥’이라고 부른다.
한쪽에는 고급스럽게 들리는 ‘사제’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어딘가 푸대접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짬’이 있다.







사제밥과 짬밥.







이 극단적인 대비만 보아도, 사제밥의 위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사제밥은 주로 교회나 성당 같은 종교행사에서 제공되는 점심식사였다. 물론, 법당에서도 점심을 주긴 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곳에는 고기가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교회와 성당 쪽으로 향했다. 획일적인 식판, 젓가락이 없는 도구의 제한, 빠르게 끝내야 하는 식사 시간, 어딘가 하나쯤 빠져 있는 듯한 병영식 메뉴.
이 모든 것을 떠올려보면 사제밥은 그 자체로 군 생활의 작은 힐링 포인트였다. 잠시나마 사회의 맛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사제밥을 먹으러 선임과 함께 교회에 가곤 했다. 물론 원래 기독교 신앙이 있었기에 교회가 더 마음 편하기도 했다.



예배가 끝나면 식사가 이어졌다.








식판이 아니었다.




한식뷔페처럼 둥근 접시에 원하는 반찬을 직접 떠 담는 ‘자율 배식’이었다. 원하는 만큼 반찬을 담아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이미 짬밥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젓가락을 쥐자, 그 작은 동작마저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짬밥과는 다른 고슬한 밥, 대량 조리 음식이 아닌 제육볶음, 늘 먹던 김치가 아닌 아삭함이 살아 있는 김치. 군대에서 흔히 나오던 ‘국’이 아니라 제대로 끓여낸 찌개, 그리고 싱싱한 나물까지.



교회의 사제밥은 병영식과는 전혀 다른, 다채로운 식탁이었다. 그 한 끼 식사 속에서 우리는 어쩐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음식을 준비해 주신 군인가족분들과 교회 관계자분들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제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군대 밖 세상과 이어지는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믹스커피 한 잔을 뽑아 들었다.
종이컵을 손에 쥐고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군대 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울타리 너머에는 사회가 있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군대와 사회가 나뉘어 있었지만, 그곳의 시간은 여전히 바쁘게 흐르고 있었다.




어딘가로 분주히 이동하는 차량들,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 책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학생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없어도 사회는 저렇게 잘 돌아가고 있구나.'





저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데, 나는 이곳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구나. 그 순간 느껴지는 묘한 괴리감.




어쩌면 그것은 사제밥과 짬밥 사이의 거리와도 비슷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우리 가족도, 친구들도, 그리고 내가 한번쯤 지나쳤을 누군가도. 저렇게 잘 지내고 있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어딘가에서는 스무 살의 청춘들이 군복을 입고 있다. 사회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가기 위해,
그 이면에서는 군인들의 시간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흘러가고 있다.


당시에는 사제밥을 먹고 손에 든 믹스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이 한 모금을 마시고 돌아서면, 나는 다시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다시 군대라는 작은 세계 안으로 들어가 ‘짬’이라는 질서 속에서 나를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춰 가야 했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의 짬밥을 먹고 나면
또다시 사제밥을 먹는 일요일이 오겠지.


나는 이 사제밥을 몇 번이나 더 먹어야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아직은 까마득하게 멀어 보이는 그날을 떠올리며 교회를 나서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짬밥을 먹고 나면
다시 사제밥을 먹는 일요일이 찾아온다.



사제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군대와 사회의 시간이 잠시 맞닿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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