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짬타이거’와 병사들의 공생
얼마 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참호 속에서 한 군인이 고양이를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피와 먼지로 얼룩진 군인의 얼굴에는 전쟁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런데 그 품 안에서 고양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전쟁의 참혹함과 잠깐의 평온이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묘하게 겹쳐진다. 그 장면은 5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실을 말없이 보여준다.
이 장면을 보며 문득 군대에서 흔히 보던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병사들은 그들을 ‘짬타이거’라고 불렀다. 짬타이거는 군부대 주변에 서식하는 고양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취사장이나 식당 주변에서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곳을 어슬렁거리다 병사들이 던져주는 ‘짬’을 먹으며 살아가는 녀석들이다.
짬타이거라는 이름도 꽤 흥미롭다. ‘짬’과 ‘타이거’가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짬캣’이라 불러도 될 법하지만, 병사들은 늘 ‘짬타이거’라고 불렀다. 호랑이도 엄밀히 말하면 고양이과 동물이니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이름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일반 고양이들과 달리 병사들이 남긴 짬밥을 먹고 자라 몸집이 유난히 커진 고양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 사진처럼 짬을 먹고 자란 고양이들은 체구부터 남다르다. 고양이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제법 크고, 그렇다고 호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또 어딘가 애매한 체격이다. 그래서 병사들이 이들을 ‘짬타이거’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 길고양이지만 짬밥을 먹고 자라서인지 얼굴에는 어딘가 묘한 위엄까지 느껴진다.
짬타이거는 짬을 먹고 오래 살다 보니, 어떤 부대에서는 아예 계급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내가 자대에 이등병을 달고 처음 전입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댁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자라 고양이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부대에서 처음 본 짬타이거를 자연스럽게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병장이 정색하며 말했다.
“야, 경례해. 우리 부대 짬타 중사님이야.”
나는 순간 얼떨떨해져 되물었다.
“중사입니까…?”
병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이등병 때부터 있었으니까 나보다 짬을 더 먹었지. 어디 이등병 따위가 중사님을 만지려고 해. 경례부터 해, 인마.”
굴욕적이지만 나는 결국 경례를 했다. 그리고 짬타 중사님보다 짬이 안 되는 주변 후임병들도 하나둘 따라 경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조의 삼배구고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짬타 중사님’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커다랗게 하품을 한 번 하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어슬렁거리며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그저 한낯 고양이일 뿐인데, 그 표정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저 한심한 놈들.’
고양이 특유의 한가로운 표정 때문인지 왠지 더 모욕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새삼 깨달았다.
아, 이곳은 군대구나.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짬’에 의해 작동하는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말이다.
하다못해 저 고양이조차 짬을 오래 먹었다는 이유로 ‘중사님’이라 불리는데, 입대한 지 겨우 두 달 된 나는 무엇일까. 나는 아직 짬의 위계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고양이만도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사실 짬타이거들은 사실 군 복무의 의무가 없는 그저 평범한 짐승이다. 하지만 군대 취사장에는 늘 '짬(잔반)'이 남기 마련이다. 아마 그 때문에 이 녀석들은 군대를 자신의 서식지로 삼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필요에 의해 부대 주변에 자리 잡고, 어쩌다 보니 군생활을 자처하게 되며
짬을 먹고 자라는 기묘한 존재들이다.
한편 병사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군대는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던 시절이라 병영생활에서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짬타이거에게 자연스럽게 애착을 갖고 돌봐주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묘(猫)한 관계다.
짬타이거는 군대에서 먹이를 얻고, 병사들은 그 녀석들을 보며 잠시나마 병영의 무료함을 잊는다. 그렇게 군인과 짬타이거는 서로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채 공생하고 있었다. 어쩌면 부대 안에서만 존재하는 작은 반려묘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특히 GOP 소초처럼 스무 명 남짓이 생활하는 독립된 공간에서는 짬타이거가 아예 소초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병사들은 나무판자나 상자로 작은 집을 만들어 주고, 남은 음식을 챙겨 주며 자연스럽게 녀석을 돌보곤 했다.
물론 위생이나 군대라는 공간의 특성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급부대에서도 GOP 소초의 생활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고 있었기에, 그런 소소한 즐거움까지 굳이 간섭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위 사진은 필자가 대위로 복무하던 2018년, 한 GOP 소초에서 찍은 짬타이거의 모습이다. 짬밥을 오래 먹은 녀석답게 체구부터 제법 당당하다. 길고양이 특유의 왜소한 느낌은 거의 없고, 몸집에는 어딘가 느긋한 위엄까지 묻어 있었다.
소초를 방문했을 때도 이 녀석은 마치 이곳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앞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 번째 사진처럼 크게 하품을 하며 송곳니를 드러내는 모습에서는 묘하게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그 모습이 꼭 “여긴 내 구역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낯선 사람이 나타났는데도 길을 비켜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진처럼 느긋하게 몸을 늘어뜨린 채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계하는 기색도, 도망갈 생각도 없다. 이미 이곳을 완전히 자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인 표정이다. 하지만 소초원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존재였다. 병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던 녀석이었다. GOP 작전지역 이름이 ‘슬○○○’였는데, 병사들은 그 이름을 따 이 고양이를 줄여 ‘슬타’라고 부르고 있었다.
GOP 소초의 핵심 임무는 완전한 경계작전이다.
그래서인지 소초원들은 이 슬타의 존재가 어쩐지 자신들을 지켜주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소초를 지키는 작은 수호신 같은 존재랄까.
생각해 보면 군대와 고양이의 관계는 꽤 오래된 역사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영국군의 군함에서도 ‘함재묘’를 키우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선원들은 배 안에서 고양이를 기르며 항해의 안전을 기원했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 식량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지만, 무엇보다 오랜 항해로 지친 수병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선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완화(PTSD)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짬타이거도 그런 존재였는지 모른다.
군번도, 계급도, 전역도 없는 존재.
하지만 군대라는 공간 속에서 병사들과 묘(猫)하게 함께 살아가던 녀석들이다.
다만 짬(잔반)을 따라 부대에 머물며 그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았을 뿐이다. 사실 짬타이거들은 인간 음식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수명이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부대의 시간을 함께 지나가며 군인들과 같은 공간을 나누어 살아가고 있다.
군대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병사들의 군생활은 언젠가 끝난다. 하지만 그 녀석은 같은 자리에서 또 다른 병사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의 부대에서는, 또 다른 짬타이거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