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고지에서 먹던 전투식량

유해발굴작전에서 깨달은 한 끼의 의미

by 고품격 글쟁이


군대에서 먹었던 것 가운데 유난히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이 있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전투식량’을 떠올릴 것이다.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군대의 맛’으로 소개된 적도 있지만,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에게 전투식량은 그리 반가운 음식이 아니다.











예전보다 조리 방식도 나아지고 구성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맛을 지니고 있다.



사실 전투식량의 조합부터가 독특하다. 쇠고기볶음밥, 파운드케이크, 볶음김치, 양념소시지, 미트로프, 그리고 초코볼까지. 한 끼 식사라기보다는, 마트에서 아무 생각 없이 담은 장바구니 같다. 밥과 디저트의 경계가 뒤섞인 어딘가 어색한 구성이다. 아마 이것은 맛의 조화를 고민했다기보다는, 칼로리에 맞춰 구성품을 채워 넣은 결과일 것이다.






‘전투식량’이라는 이름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역설이다.




전투는 긴장과 움직임의 언어이고, 식량은 잠시 멈춰 몸을 보충하는 행위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결합해 ‘전투식량’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이름만 들어도 무언가 전투적으로 먹어야 할 것 같다.
천천히 음미하는 식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음식.




그런 뉘앙스가 느껴지는 작명이다.


그래서인지 조리 방법도 매우 간단하다. 봉지를 개봉하면 각 구성품들이 개별 포장되어 있고, 그 옆에 발열팩이 들어 있다. 이 발열팩이 전투식량 조리의 핵심이다. 음식을 따뜻하게 데워 주기 때문이다. 방법도 단순하다. 발열팩 안에 모든 개별 봉지를 넣고 마지막으로 레버를 당긴다. 그러면 안쪽의 발열 물질이 반응하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을 주의해야 한다. 레버를 당기자마자 뜨거운 증기가 올라오기 때문에 자칫하면 손을 데기 쉽다. 그래서 대부분 재빨리 봉지를 닫는다. 전투식량을 몇 번 먹어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요령이다.



먹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다 익으면 대부분의 재료를 한데 넣어 비벼 먹으면 된다. 물론 파운드케이크와 초코볼은 제외다. 다른 봉지들은 꺼내 모두 섞어 비비고, 파운드케이크와 초코볼은 다시 발열팩 안에 넣어 따뜻하게 데운다. 그러면 이른바 ‘초코파운드케이크’가 완성된다. 전투식량을 몇 번 먹어 본 사람들이 은근히 즐기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문제는 역시 맛이다.



밥과 반찬을 모두 비비면 묘한 맛이 난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김치비빔밥’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전투식량답게 한 번쯤 별식처럼 먹어 볼 수는 있지만,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다. 약 1100칼로리에 달하는 고칼로리 식사이고, 장기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 그런지 어딘가 인공적인 맛이 느껴진다.





약간 기름진 느낌도 있다. 묘하게 개운하지 않은 끝맛이 남는다. 그래서인지 전투식량을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되지 않는 기분이 들곤 했다.



필자는 이 전투식량을 지겹도록 먹어 본 경험이 있다.
바로 두 달간의 유해발굴작전 동안 매일 점심으로 먹었던 음식이 전투식량이었기 때문이다. 유해발굴작전은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기치 아래, 6·25전쟁 당시 희생된 선배 전우들의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숭고한 작업이다. 전쟁이 주로 고지전의 형태로 이루어졌던 탓에, 유해발굴작전 역시 대부분 높은 산악 지형에서 진행된다.




또한 전쟁이 끝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산과 들 어딘가에 묻혀 계신 선배 전우들의 유해를 후배 장병들이 직접 손으로 발굴하며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작전에 투입된 곳은 과거 격전지였던 철원 지역이었다.



유해발굴작전 장병의 하루 일과는 대략 이렇다.
아침 06시 30분 기상.
07시에 집결해 800고지 등반을 시작한다.
정글모에 간편한 상의, 하의는 전투복과 전투화를 착용한다.
이때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있다. 그날 점심으로 먹을 전투식량 한 봉지와, 하루 종일 아껴 마셔야 할 물을 가득 채운 수통이다.


등반은 약 한 시간가량 이어진다.

작업 현장에 도착하면 정오까지 발굴 작업이 진행된다. 점심에는 전투식량으로 간단히 식사를 한다.

그리고 다시 작업을 이어 간다.

오후 5시까지 발굴 작업을 마치면 그제야 하산을 시작한다.

정오가 되면 우리는 그제야 삽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린다.

그리고 한데 모여 전투식량 봉지를 꺼낸다.

발열팩의 레버를 당기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그 순간이 바로 우리의 점심시간이었다.





사회에서라면 등산 뒤 김밥이나 막걸리로 허기를 달랬겠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전투식량 한 봉지가 전부였다.



그렇다.



당시 우리에게 전투식량은 말 그대로 ‘생존’의 음식이었다.





사실 매일 점심에 같은 음식을 먹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진미라도 물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남자들은 매일 제육덮밥도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두 달 동안 점심마다 그것만 먹는다면 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전투’라는 단어가 붙은 전투식량이라면 오죽하겠는가.



그렇다고 먹지 않을 수는 없다.
800고지 등반과 하루 여섯 시간에 이르는 발굴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먹지 않으면 오후 작업을 버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전투식량 봉지를 뜯어야했다.


정통 조리법인 비벼 먹는 방식부터 시작해, 재료를 따로 먹어 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전투식량을 먹어 보았다.
일단 먹어야 오후 작업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 가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마다 가파른 등반을 마치면 어김없이 고된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진척은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그저 땅만 계속 파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오가 되면 맛없는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작업을 이어 갔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던 약 2주째였다.



흙의 색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껴지던 어느 순간이었다.
우리는 삽질을 멈췄다.




그리고 흙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녹슬고 부러진 숟가락 하나였다.











그리고 곧 다른 것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화 굽이 마모된 것으로 보이는 철 조각, M60 탄피, 낡은 수통, 그리고 반합이었다.



신기하게도 수통과 반합은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시점에도 지금 우리가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울러 그 지점에서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직원들이 정밀 발굴 작업을 진행했고, 유해 한 구가 발견되었다.
중국군인지, 북한군인지, 아니면 우리 선배 전우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의 유해였다.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이곳이 바로 격전지였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먹듯, 과거에도 누군가 이곳에서 저 수통과 반합으로 식사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 병사는 과연 식사를 제대로 했을까.






식사 도구와 함께 발굴된 수많은 탄피들이 그 사실을 더욱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때부터 전투식량을 먹는 점심시간에는 말이 부쩍 줄어들었다.







아마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의 의미와, 전투식량이라는 음식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어김없이 땅을 파는 하루는 계속됐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삽질에 의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 땀 또 한 땀.






우리는 선배 전우들의 흔적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 땀 또 한 땀.






그렇게 작업을 이어 가다 보면 각종 전쟁 유품과 흔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행위가 과거 이 자리에 있었던 선배 전우들과 시대를 뛰어넘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리고 정오가 되면 우리는 다시 전투식량을 먹었다.
아마 오래전 이곳에서 싸웠던 누군가도
비슷한 점심을 먹었을지 모른다.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고,
자신의 생명과 전우를 지키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 전투식량의 맛은 더욱 복잡해졌다. 선배 전우들의 피와 땀이 어린, 설명하기 힘든 어떤 맛이 더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군대에서는 여전히 같은 전투식량이 보급되고 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먹어야 하는 간절한 식사.


어쩌면 전투식량이란 그런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예전에도, 지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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