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은 결국 질서가 된다
군에 입대하기 전,
우유는 대체로 학창 시절의 기억에 가까웠다.
급식 시간마다 함께 나오던 우유.
나는 크게 거부감 없이 마셨지만
비린 맛을 이유로 남기던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우유는 좋아서 찾는 음식이라기보다
주어지면 마시고, 아니면 굳이 찾지 않는 정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더 그랬다.
우유를 일부러 마실 일은 거의 없었다.
빵과 함께라면 어울리지만
일상적인 식사는 여전히 밥 중심이었으니까.
그래도 바나나우유는 조금 달랐다.
목욕탕에 가면 냉장고 안에 줄지어 놓인
그 노란 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목욕을 마친 뒤
물기 마른 손으로 하나를 꺼내 들고 뚜껑을 돌려 연다.
차갑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그 기억은 분명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사실 우유라기보다
바나나 향이 더해진 단맛에 가까웠다.
훈련소에서 처음 마주한 식사 풍경은
아침마다 제공되는 흰 우유였다.
밥과 국, 반찬을 먹고
마지막에 우유를 하나 마신다.
그 우유는 늘 같은 흰 우유였다.
생각해보면 낯선 조합이다.
밥을 먹고 우유를 마신다는 것.
우유는 보통 빵과 곁들어 먹는 음식이니까.
하지만 그때는 그걸 따져볼 여유가 없었다.
누구도 묻지 않았고, 굳이 이유를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주어진 대로 먹는 것이
군대의 방식이었다.
군대에서는 유독 흰 우유만 나왔다.
딸기우유도, 초코우유도,
그리고 바나나우유도 있었지만
식판 위에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우유의 종류를 고를 일은 없었다.
모두가 식사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흰우유를 마셨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왜 늘 같은 우유인지
잠깐씩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식으로 식사를 반복하다 보면
우유의 종류는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건
우유에 붙은 이름이었다.
그전까지 우유라고 하면
서울우유나 매일우유 정도만 떠올렸는데,
훈련소에서는 낯선 이름의 우유가 나왔다.
광주우유.
이후 다른 부대로 이동하면서도
비슷한 장면을 보게 된다.
경북에서는 대구우유,
양구에서는 춘천우유,
화천에서는 강원우유.
같은 우유였지만
이름은 지역에 따라 달라졌다.
아침마다 그 우유를 보면서
내가 집을 떠나
군대에 와 있다는 걸 비로소 실감했다.
사람은 금세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조합이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진다.
밥과 국을 먹고
마지막에 우유를 마신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낯선 이름의 우유를 함께 마신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밥과 함께 우유를 마시고,
개인의 취향과는 무관한 흰 우유를 받아든다.
낯설었던 이름의 우유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그 순간 이미 그곳의 방식 안에 스며들어 있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짬’이 우유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훈련소에서는 모두 같은 계급이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같은 방식으로 우유를 마셨다.
하지만 자대로 가면 달라진다.
짬이 되지 않는 계급은
식당에서만 우유를 마신다.
반대로 짬이 되는 사람은
우유를 들고 나와
생활관 관물대에 넣어 둔다.
그리고 원하는 때에 꺼내 마신다.
빵과 함께 먹기도 하고,
건빵과 섞어 이른바 ‘건프레이크’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같은 우유였지만
소비되는 방식은 달랐다.
건빵과 우유를 섞어 먹는,
이른바 ‘건프레이크’는
군대에서 만들어 먹는 방식이다.
군대이기 때문에 생겨난 음식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식당에서 우유를 마시고,
누군가는 그것을 들고 나와 관물대에 넣어 둔다.
같은 우유였지만 먹는 방식은 달랐다.
그 차이는 이미 나뉘어 있었다.
결국 ‘짬’의 문제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깟 우유 하나에도
‘짬’에 따라 허용의 기준이 달라졌다.
시간이 쌓일수록
가능한 것들도 달라졌다.
군대의 규칙은
명문화된 것만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고,
그 기준은 ‘짬’이 만들고 있었다.
분명히 불합리해 보였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시간이 만들어낸 일종의 보상 체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미 그 시간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어떤 행동이 허용되었고,
아직 그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그 경계를 넘지 않았다.
언젠가 나 역시 그 ‘짬’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그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 믿으며
보이지 않는 규칙을 스스로 내면화해 갔다.
그렇게 형성된 기대와 보상의 감각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군대라는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2021년부터는
군대에도 두유와 딸기우유, 초코우유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늘 같던 식판 위에도
조금씩 다른 선택이 놓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놓이던 조합들도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식판 위에서는
늘 정해져 있던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기준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고 있었다.
어쩌면 변한것은
질서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