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라면의 맛이 아니라 그 시절의 이야기였다
얼마 전, 묘하게 끝까지 보게 되는 유튜브 영상을 하나 봤다.
집에서 라면을 먹던 출연자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이 맛이 아닌데. 군대에서 먹던 라면은 진짜 맛있었는데….”
그러더니 정말 그 맛을 다시 확인해보겠다는 듯
조리도구를 챙겨 야밤에 서울을 떠나 철원으로 향했다.
자신이 군 생활을 했던 곳에 도착한 그는
라면을 끓일 적절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단지 ‘그때 그 맛’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철원의 한 야외 공터에 도착한 그는
혹한기 훈련 때 먹었던 라면이 그렇게 맛있었다며
준비해온 온도계를 꺼냈다.
온도계의 바늘은 영하 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버너를 꺼내고,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뚜껑에 라면을 덜어
연신 입김을 불어가며 한입씩 먹었다.
잠시 후, 그가 한 말은 이거였다.
“진짜 맛있다.
근데… X나 춥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웃기면서도 정확하게 느껴졌다.
결국 라면이 맛있었던 게 아니라
그 상황이 만들어낸 맛이었을지도 모른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건이 만들어낸
'군대의 맛'말이다.
나 역시 그 맛을 잘알고 있다.
군대에서 먹던 라면은 이상할 정도로 맛있었다.
지금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과
재료도, 조리법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때만큼의 맛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몇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열악한 조건과 극한의 상황이다.
군대에서 라면을 먹는 순간은 대부분
이미 어느 정도 고생을 하고 난 뒤다.
훈련이 끝난 뒤, 근무를 마친 뒤,
혹은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날씨 속에서.
그 상태에서 먹는 따뜻한 국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거의 ‘회복’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두 번째는, 희소성과 보상이다.
군대에서 라면은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일종의 보상이었다.
그래서 한 번 먹을 기회가 생기면
그 순간 자체가 이미 특별해진다.
고생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라는 인식이
그 라면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어쩌면 우리는
라면을 먹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날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함께 삼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누군가와 함께였다'는 점이다.
혼자 먹는 라면과
같은 상황을 버틴 사람들과 함께 먹는 라면은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같이 추위를 버티고,
같이 피로를 견디고,
같이 그 순간을 통과한 사람들이
같은 냄비를 바라보며 먹는 라면.
그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어떤 ‘공유된 경험’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도
우리가 기억하는 건
라면의 정확한 맛이 아니라
그때의 공기와 온도, 그리고 분위기다.
나 역시 라면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라면을 먹어왔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군대에서 먹었던 라면이다.
첫번째는 훈련병 시절 야간행군 간 먹은 육개장 컵라면이다.
입대 전, 나는 라면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주 찾는 편이었다.
그런데 군대에 들어오고 나서는
이상하게 라면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정해진 식단표에 따라
하루 세 끼가 빠짐없이 나오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건강해지고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렇게
라면을 잊고 지내던 시간이 흘렀다.
훈련 4주 차,
야간 행군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40km를 걷고 또 걸었다.
다리는 이미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고
군장은 어깨를 파고들었다.
숨은 거칠어지고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때,
대휴식이 떨어졌다.
사람들이 말없이 줄을 섰다.
보온병에서 김이 올라왔다.
뚜껑을 여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퍼졌다.
육개장 컵라면.
뜨거운 물을 붓고
잠깐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야지 한가운데,
차가운 땅 위에 털썩 앉았다.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렸다.
김이 얼굴을 스쳤다.
한 입.
후루룩.
"으...허..."
그 순간,
몸 안으로 무언가가 밀려 들어왔다.
따뜻함이었다.
그리고 안도감이었다.
라면이 달게 느껴진다면 믿어지는가.
그날의 육개장은 분명 '달았다'.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굳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졌다.
피로가 사라진다기보다
몸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 짧은 몇 분이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줬다.
그리고 나는
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두 번째는 부사관학교에서 임관훈련을 받던 시절의 일이다.
임관 전날,
새벽이었다.
당시 부사관학교 양성과정은 군기가 세기로 유명했다.
특히 내가 받은 과정은 현역병 출신들만 모인 과정이었고,
교관들은 ‘병사 물을 뺀다’는 기치 아래
정말 무던히도 굴렸었다.
오리걸음은 기본이었고,
한밤중에 집합을 당해
연병장에서 얼차려를 받는 일도 흔했다.
그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니네 아직 병사야?”였다.
돌이켜보면
일부러 자존심을 긁으려 했던 말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그곳은
자유라는 게 거의 없었고,
PX에 갈 기회도 매우 드물었다.
그러던 중
임관을 하루 앞둔 날,
나는 새벽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임관이다.
고되던 8주 훈련이
무던히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동기생 한 명이 다가와
작게 말을 걸었다.
“야, 창고에 쌀국수 있는데… 하나 끓여 먹고 자자.”
순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완전한 금기였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망설임이 길지 않았다.
‘몇시간 지나면 임관인데, 걸려봐야 어떡하겠어.’
그 생각 하나로 선을 넘었다.
근무가 끝난 새벽 네 시,
우리는 조심스럽게 쌀국수를 끓였다.
작은 소리에도
괜히 몸이 굳었고,
누군가 올까 봐
숨을 죽인 채 먹었다.
그 맛은 단순히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이제 끝이라는 해방감,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버틴 동기들.
그 모든 게 섞여 있었다.
세 번째는 소대장 시절,
병사들과 훈련을 나가 자주 끓여 먹었던
‘반합라면’이다.
그때의 라면은
누군가와 함께였기에
유독 더 맛있었던 라면이었다.
당시에는 병사 월급이
30만 원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급식도 지금처럼 좋지 않았다.
훈련을 나가면
부실한 비닐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였을까.
군장 한켠에는 늘 라면이 들어 있었다.
거의 하나의 군장품처럼.
그 라면은
대부분 통신병이 끓였다.
내가 “야, 소대장이 한번 할게”라고 말하면
그 친구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소대장님은 카드만 주시면 됩니다.”
그러곤 내 카드를 받아
PX에서 라면이랑 참치캔, 빅팜 같은 것들을 챙겨
어느새 준비를 다 해놓곤 했다.
훈련 중 잠깐의 시간,
반합에 끓여 나눠 먹던 그 라면.
뜨거운 김이 올라오고
각자 한 젓가락씩 건져 먹던 그 순간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아 있다.
그때의 라면은
훈련으로 소모된 칼로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
열악한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버티던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건
라면의 ‘맛’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라면을
같은 방식으로 끓여도
그때의 맛이 다시 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그 맛은
단순히 혀로 느끼는 감각이 아니라
그 순간의 조건과 관계, 그리고 상황이
겹쳐져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혹한의 밤,
금기를 넘던 새벽,
그리고 함께였던 시간.
라면은 그저 매개였을 뿐,
우리가 기억하는 건
그때의 공기와 감정,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나 자신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그 맛을 다시 찾으려 한다.
하지만 결국 깨닫게 된다.
그건 다시 끓여낼 수 있는 종류의 맛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결국 다시 느껴보고 싶은 건
그때 그 라면의 맛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 맛은
다시 끓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