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레시피가 없는 음식
“얘들아, 3일 뒤 아침에 드디어 군대리아 나온대.”
훈련병 시절, 막사 안이 잠시 들썩이던 때가 있었다.
군대리아가 나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훈련소 생활은 대체로 퍽퍽했다.
빡빡한 일정과 자유의 통제,
낯선 잠자리와 불침번 근무까지.
하루는 비슷하게 반복됐고, 작은 변화도 쉽게 눈에 띄었다.
낙이라곤 많지 않았다.
주말에 가는 종교행사,
가끔 도착하는 인터넷 편지 정도였다.
그래서 식단이 한 번 달라진다는 소식만으로도
막사 안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군대리아가 뭔데?”
“군대에서 나오는 햄버거잖아.”
“우리 형이 군대 제대했는데,
짬밥 중 제일 좋아하는 메뉴였대.”
그 말만으로도 기대는 더 커졌다.
훈련소에서 햄버거를 먹는다는 상상은
그 자체로 평소와 다른 일이었다.
더욱이 평소 식단에서는 보기 힘든
달콤한 잼도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군대리아를 겪어보지 못한 훈련병들 사이에서
군대리아는 어느새 오성급 호텔 조식처럼
막연한 기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군대리아가 나오기 전날이었다.
조교들 중에서도 가장 짬이 안 되는 이등병 조교가 있었다.
저녁 점호 시간, 우리는 그 조교에게
군대리아가 나온다는 게 사실인지 물었다.
맛은 어떤지도 함께 물었다.
조교는 어찌 알았냐는 듯 잠시 흠칫하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한마디만 남겼다.
“맛있게 잘 먹어봐라.”
그 말은 오히려 기대를 더 키웠다.
조교의 반응까지 더해지자
군대리아는 정말 특별한 메뉴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당일 아침이 다가왔다.
훈련소 식당은 늘 희뿌연 김으로 가득했다.
함바식당에서 날 법한 밥 냄새가 공간을 채우고,
어딘가 눅눅한 공기가 익숙하게 느껴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밥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고
하얀 김도 평소보다 덜했다.
우리는 군대리아를 맛볼 생각에
마치 스머프처럼 들뜬 발걸음으로
식당 안으로 줄지어 들어섰다.
“훈련병들, 빨리빨리 들어옵니다.”
조교의 평소와 같은 보채는 목소리도
그날은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군대리아를 먹을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모습은 우리가 떠올리던 것과 달랐다.
사회에서 보던 것처럼 포장지에 싸인 햄버거와
콜라를 기대했거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평소와 같은 식판과
포크숟가락뿐이었다.
잠시 어리둥절했다.
햄버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식판 위에
낯선 재료들이 하나씩 놓이기 시작했다.
줄을 서서 배식을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앞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게 된다.
쪼그라든 빵이 담긴 봉지 두 개를 집어 들고
치즈 한 장과 정체 모를 패티를 올렸다.
투박한 샐러드와 삶은 계란도 담았다.
불고기 소스 하나를 챙겼다.
가장 기대했던 잼은
배식 훈련병이 숟가락으로
엄지손톱만큼 덜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식판 오른쪽에
허여멀건 풀처럼 보이는 스프가 채워졌다.
흰 우유까지 챙기자 배식이 끝났다.
그제야 알게 됐다.
이것이 바로 군대리아였다.
모두 어리둥절했지만 묘한 기대감도 남아 있었다.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문’을 복창했다.
그리고 각자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
빵을 뜯고 패티를 올리고
샐러드를 얹고 소스를 뿌렸다.
대충 눈치껏 따라 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빵의 식감이 독특했다.
굽는 것이 아니라
봉지째 찜통에 넣어 둔 듯한 느낌이었다.
눅눅함과 쫄깃함 사이 어딘가의 식감이었다.
패티는 식은 함박스테이크처럼 단단했고
샐러드는 투박했다.
그리고 스프를 한 숟갈 맛봤다.
어우, 짰다.
조리병이 간 조절에 실패했나 싶었다.
더 먹기엔 부담스러워 그대로 옆으로 밀어 두었다.
대신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조합이었지만
배를 채우는 게 더 중요했다.
그때 문득 손톱만큼 덜어 준 잼이 떠올랐다.
이걸 어디에 써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두 번째 빵에 발라 우유와 함께 먹어 봤다.
그래도 잼이 들어가니 조금 나았다.
햄버거도 이렇게 군대식으로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어딘가 어설프지만 묘하게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그게 첫 번째 군대리아 시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훈련병들 사이에서 군대리아는
호불호가 갈리는 메뉴였다.
훈련병 기간 동안 딱 두 번 나오던 군대리아였는데
첫 번째 시식부터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군대리아를 먹고 배가 아프다는 둥,
패티를 닭 머리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둥
괴담도 돌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나쁘지 않았다.
매일 3찬 1국이 나오는 한식 위주의 식단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나의 맛으로 완성된 음식이라기보다
재료들이 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빵은 빵대로, 패티는 패티대로,
샐러드는 샐러드대로 맛이 분리돼 있었다.
어쩌면 군대리아는
완성된 음식이 아니라
각자 조합해야 하는 음식에 가까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만들면 맛있을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어느덧 자대로 이동하게 됐다.
운이 좋게도 훈련받았던 곳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포병부대였다.
자대에는 더 이상 무서운 조교들은 없었다.
대신 철저히 짬에 의해 움직이는
또 다른 질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등병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관등성명을 크게 대고, 제식을 바르게 하고
늘 군기가 들어 있는 상태로 지내는 것.
걸레를 들고 다니며 청소를 하고
자잘한 일들을 도맡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 다시 군대리아를 맞이하게 됐다.
자대에서 군대리아의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다.
PX를 이용할 수 있는 여유 때문이었는지
많은 병사들이 식당만 들렀다가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곤 했다.
군대리아는 자연스럽게
선택받지 않는 메뉴가 되어 있었다.
이등병이던 나는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군대리아를 조합해
한 끼를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군대리아를 좋아하는 선임이 있어
자연스럽게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비선호 식단이었던 덕분인지
재료들은 비교적 여유 있게 남아 있었다.
훈련소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나의 보직은 계산병이었다.
포병의 사격 제원을 계산해
사격에 필요한 값을 산출하는 임무였다.
마주 앉아 있던,
군대리아를 좋아하던 선임은 관측병이었다.
감시장비로 표적을 감시하고
거리를 산출해
계산병에게 값을 넘겨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일과에서 자주 엮이는 선임이었고,
평소 잘난 체하는 것만 빼면
그래도 나에게는 꽤 잘해주는 사람이었다.
“야, 형이 인마.
훈련 때도 내가 너한테 제원값 인계해 주는 거 알어?”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똑바로 안 알려주면 너 계산 못 해, 인마.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형이 특별히
군대리아 맛있게 먹는 법 알려줄게. 기대해.”
“이걸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습니까?”
(한살차이 밖에 안나면서..)
내 질문에 그는 숙련된 조교처럼
능숙하게 시범을 보였다.
“먼저 식판에 스프 뜨겁잖아.
식판 밑에 치즈를 깔아.
스프 열기로 치즈를 조금이라도 녹이는 거야.”
대충 심드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나는
치즈를 녹인다는 말에 눈이 약간 뜨였다.
본능적으로 뭔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스프는 그날 상태를 잘 봐야 돼.
조리병 컨디션에 따라 달라.
어떤 날은 진짜 맛있는데
어떤 날은 X나 짜.
또 어떤 날은 엄청 묽어.
그러니까 살짝 찍어 먹어보고 결정해.”
그는 빵 봉지를 뜯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첫 번째 빵을 따.
그리고 빵 한쪽 면에는 스프를 살짝 발라.
스프가 맛있으면 바르는 거야. 명심해라.
그리고 다른 빵 한쪽에는 이 잼을 바르는 거야.”
“잠깐, 패티 올릴 건데 잼을 바르는 게 맞습니까?”
“조용해, 인마.
이등병이 감히 선임병이 지금 작업하고 있는데.”
“그리고 샐러드를 만들어야지.”
그는 삶은 계란을 집어 들었다.
“계란을 까는 거야.
여기 사람들 군대리아 잘 안 먹으니까
계란 남아돌아. 너 다섯 개씩 먹어도 돼.”
“계란 다섯 개 못 먹습니다.”
“조용히 해. 너 경고야, 경고.”
그러더니 그는 계란을 으깨기 시작했다.
“여기 마요네즈 소스에
흰자랑 노른자를 으깨서 섞는 게 핵심이야.”
오, 맙소사.
그는 즉석에서 셀프 에그 샐러드를 만들어냈다.
순간 ‘천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스프 바른 빵이랑
잼 바른 빵 사이에 패티랑 에그 샐러드 올려.
불고기 소스도 좀 뿌리고. 다뿌리면 엄청 짜. 적당히.
그리고 아까 넣어둔 녹은 치즈를 올리는거야.
자, 먹어봐. 어때? 다르지?”
선임이 작업하는 동안
마지못해 표정 관리를 하고 있던 나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오, 진짜 뭔가 달랐다.
잼과 불고기 소스는
서로 충돌할 것 같았지만 묘하게 어울렸다.
스프와 잼이 더해지면서
일종의 ‘단짠’ 조합이 완성됐다.
특히 단조롭던 샐러드를 계란을 으깨
에그 샐러드로 바꾼 것은 신의 한수였다.
투박하던 패티마저
어느새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게 진짜 짬이구나 싶었다.
군대리아가 한 달에 두 번 나온다고 치면
그는 이미 수십 번은 먹어 본 사람이었다.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대감에 찬 채
나는 그의 군대리아 일타 강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두 번째 빵은 말이야.
사람 취향에 따라 다른데
스프가 맛있다 싶으면 그냥 빵을 찢어서
스프에 찍어 먹는 거야.
레스토랑에서 먹는 거랑
십분의 일 정도는 비슷해.”
첫 번째 강의에 비하면
어딘가 싱거운 설명이었다.
그게 전부냐는 표정을 짓고 있자
그는 내 얼굴을 슬쩍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스프가 맛이 없다 싶으면
빵을 쫙 펴.”
그는 실제로 빵을 손바닥으로 눌러 펼쳤다.
“그다음에 양쪽에 잼을 덕지덕지 바르는 거야.”
잼을 남김없이 긁어
빵 위에 문지르듯 발랐다.
“그리고 식판에 올린 다음
가운데를 숟가락으로 십자 모양으로 쪼개.”
그는 숟가락으로 빵을 꾹 눌러
십자 모양으로 갈랐다.
“여기에 우유를 붓는 거야.
빵에 잘 스며들도록.”
우유가 빵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잼을 바른 빵에 우유를 붓다니.
“으으… 저 그런 거 싫어합니다.
너무 느끼할 것 같습니다.”
“이 자식이. 일단 먹어보라니까.”
정색하는 나를 향해
군대리아 일타강사는 재촉했다.
마지못해 그대로 따라 만들고는 한 숟갈을 떠 입에 넣었다.
순간 눈이 크게 뜨였다.
맙소사.
우유를 머금은 빵이 먼저 부드럽게 풀어졌고
뒤이어 잼의 달콤함이 천천히 퍼졌다.
단순히 달기만 한 맛이 아니라
촉촉하게 스며드는 단맛이었다.
눅눅할 거라 생각했던 식감은 오히려 부드러웠고
어색할 것 같던 조합은 묘하게 균형이 맞았다.
이건 가히 혁신이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의 맛을 살려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회의 햄버거가 이미 완성된 하나의 맛이라면,
군대리아는 사용자가 스스로 조합하며
맛을 만들어가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조화롭지 않은 것들을 이어 붙여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그 묘한 터치가 좋았다.
그 뒤로 나는 군대리아를 즐기게 됐다.
군대리아 일타강사 선임이 알려준
그 레시피 그대로였다.
사회에서 전 남친이 만들어준 토스트가 너무 맛있어
헤어진 뒤에도 연락해 레시피를 물어봤다는
‘전 남친 토스트’처럼,
나에게도 ‘맞선임 군대리아’는
뇌리에 깊게 각인된 맛으로 남았다.
선임이 군대리아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때
나는 막 이등병이었다.
군에 오래 남을 생각은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18년째
같은 방식으로 군대리아를 만들어 먹고 있다.
군대리아도 변했다.
전반적인 맛의 질이 높아졌고,
부대에 따라 소시지나 시리얼,
계란후라이까지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그 레시피는 아직도 나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때 그 선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겨우 한 살 차이였던 스물세 살이었으면서
늘 '형' 행세를 하던 사람이었다.
전역하면 요식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군대리아를 만들던 손놀림을 보면
어쩌면 어울리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때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선임은
내가 아직도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18년째
그 레시피 그대로 군대리아를
만들어 먹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괜히 궁금해진다.
군대리아.
특정 브랜드의 이름을 딴,
군대에서 만드는 햄버거를 이르는 말.
평범하고 투박한 재료도
어떤 시선으로, 어떤 순서로 손이 닿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어쩌면 군대리아는
정해진 레시피가 없는 음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재료를 받아도
누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평범한 재료라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르게 쓰면
훨씬 나은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선임이 알려준 것은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군 생활과 삶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