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믹스커피, 그 적당한 쓴맛과 단맛

쓰기도 달기도 했던 군대의 기억들

by 고품격 글쟁이



"내가 알파포대장이야.

넌 알파포대 계산병이고.
니 역할이 엄청 중요해.

만나서 반갑다."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로 처음 가서 들어간 곳은 포대장실이었다. 포대장실에 들어가자 포대장이 직접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달여주었다.

달달한 커피향이 작은 포대장실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어리둥절했다. 모든 게 어색했고,

포대장의 전투복 깃에 붙은 대위라는 계급도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계급처럼 보였다.
포대장은 커피를 마시며 나를 뽑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교를 보고 계산을 잘할 것 같아서 계산병으로 데려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간단한 신상에 대한 것들을 물었다.
나는 너무 긴장한 탓에 포대장이 타준 믹스커피의 맛을 느끼지도 못했다.



“마셔.”




포대장의 말에 몇 번 홀짝였던 것 같지만,
그때 믹스커피의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맛이 아니라 분위기였다.



낯선 포대장실의 공기,
책상 위에 놓인 사격제원표,
무전기에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던 잡음,
그리고 내가 이제 여기서 군생활을 시작한다는 실감.



아마 믹스커피는 달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긴장 때문에 쓰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믹스커피는
단맛도 쓴맛도 아니었다.
그건 군대라는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건네받는 첫 의식 같은 맛,
계산병으로서의 책임을 처음 들은 자리에서 마신
어쩌면 가장 무거운 종이컵 커피였다.

그게 군대에서 맛본 첫번째 믹스커피였다.




육사 출신의 포대장은 타인에게 엄격한 사람이었다.

사실 인문학도였던 나는 수학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맡은 임무는 역설적으로 사격제원을 ‘계산’하는 일이었다.

계산병은 포대장의 두뇌의 한 부분을 대신하는 역할이었다.



계산이 틀리면 어떻게 되냐고?



포병의 포탄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진다.

물론 사격제원계산기라는 편리한 수단이 있었다.

하지만 절차는 늘 같았다.

수기로 계산하고, 마지막에 계산기로 검증한다.

기상, 장약, 사거리.제원을 구하기 위해

모든 요소를 숫자로 풀어 넣어야 했다.

고등학교 때 반쯤 포기했던 수학을 다시 꺼내 드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그래도 군대는 묘한 곳이다.

못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결국 하게 된다.

계산표는 점점 익숙해졌고 숫자를 보는 속도도

조금씩 빨라졌다.

물론 실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계산이 어긋나면 포대장의 짧은 말이 떨어졌다.




다시.”




그 한마디면 계산병들 모두가 긴장했다.



포대의 계산병은 한 명뿐이었다.
대신해 줄 사람은 없었다.
숫자를 처음부터 다시 짚어 내려갔다.
확신했던 값들도 다시 의심했다.
내려놓았던 수학을
군대에서 다시 붙잡고 있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하지만 여유는 없었다.
실수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곳이 군대였다.




그 이후로
행정반에서 가장 자주 보던 것도
믹스커피였다.
노란 네모난 박스 안에
스틱 형태로 가득 채워져 있던 그것.
특별한 원두도
깊은 맛도 아니었지만
뜨거운 물만 있으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커피가 만들어졌다.

모든 것이 효율로 움직이던 군대에서
커피마저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다시 수학을 붙잡고
계산을 하고
군대 일과라는 거대한 틀 속에
나를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춰 가는 것이
병사 생활이었다.
주 5일은 일과를 하고
밤에는 경계근무와 상황근무를 서고
주말이 되면 개인정비를 했다.




일요일이 되면 종교행사에 갈 수 있었다.
군대라는 공간 속에서
군대 같지 않은 유일한 시간이었다.
종교행사를 마치고
교회에서 주는 사제밥을 먹고
자판기에서 믹스커피 한 잔을 뽑았다.
울타리 밖 풍경을 보는 것이
당시의 유일한 힐링이었다.
담장 하나 너머로 사회가 보였다.
내가 있던 부대는
다니던 대학교와 차량으로 10분 거리였기에
더 낯설지 않았다.




와, 학교 다닐 때는
이쪽은 외진 곳이라 오지도 않았는데.
여기에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울타리 너머에는
어딘가로 바삐 달리는 차량들,
거리를 걷는 학생들과
자유로운 사람들이 보였다.
나처럼
한 공간에 묶여 있지 않은 사람들.
손에 든 믹스커피를 들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모금, 한 모금이
왜인지 쓰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쉬웠다.
이 믹스커피 한 잔을 다 마시면
나는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돌아가야 할 시간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이 믹스커피 한 잔을 다 마시면
나는 다시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그날의 커피는
포대장실의 커피처럼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달지도,
고소하지도 않았다.
밖을 바라보며 마시던
조금은 길게 느껴지던
일요일 오후의 쓴맛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믹스커피가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달달하게 나를 채워 주던 순간도 있었다.
3사관학교 가입교 훈련 동안,

2주 만에 교회에서 마신 커피는 무척이나 달았다.
가입교 훈련은

1년 선배인 지도생도들의 엄격한 훈육 아래서 이뤄진다.
특히 나처럼 현역병과 부사관을 거친 경우에는

그 훈련이 더욱 혹독하게 느껴졌다.
그동안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깨야 했기 때문이다.
지도생도들도 내가 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더욱 몰아붙였고, 나 또한 이것을 그만두고 자대로 돌아갈 생각을 몇 번이나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자존심이 긁히는 일이 많았던 시간이 가입교 훈련이었다.




사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지도생도의 훈육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에 가까웠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을까.
내가 선택한 이 길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까.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훈련보다 더 버겁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런 고민 속에서
2주 만에 찾은 교회는
나를 조금 안정되게 했다.
익숙한 피아노 건반 소리,
교회 특유의 나를 감싸 줄 것만 같은 분위기,
큰 소리 하나들리지 않는 차분한 공간.
그리고 온화한 기도아버지와 기도어머니.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간식과 함께 믹스커피가 나왔다.
종이컵에 타 먹는 커피가 아니라
주전자에 가득 담긴 믹스커피였다.
김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주전자에서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 담았다.
연한 갈색의 커피가
천천히 컵을 채웠다.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 쥐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순간,
입안으로 가득 단맛이 먼저 퍼졌다.
그동안 들었던 고함도,
계속 맴돌던 고민도,
잠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의 믹스커피는
유난히 달았다.






왜 그날의 커피는
유독 달게 느껴졌을까.



카페의 커피잔도,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도

제각각의 이야기를 담는다.


커피는 낭만과 사색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관념과 추상을 넘어

삶의 순간을 직접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믹스커피라도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마셨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맛으로 남는다.



3사관학교 교회에서 마셨던 그 커피도

단순히 달았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훈련에서 잠시 벗어났다는 안도감,

진로에 대한 고민에서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던 시간,

고함 대신 조용한 목소리가 들리던 공간.

그 모든 순간이

종이컵 속 믹스커피를

더 달게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믹스커피의 매력은
쓴맛과 단맛을
적당히 함께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대위 시절, ‘과장’ 직책을 맡았을 때
늘 나에게 커피를 타 주던 병사가 있었다.
원래 편제에는 없었지만
군생활이 어려워
내가 전역할 때까지 도맡게 된 병사였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출근하면 늘 믹스커피 한 잔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곤 했다.
믹스커피 스틱의 끝에는
설탕이 담겨 있었기에
나는 그 부분을 조금 덜어내고
타 달라고 했다.



적당한 쓴맛,
적당한 단맛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 친구는 늘 그렇게 타 주었고

어느새

본인도 그렇게 타 먹기 시작했다.

전역한 뒤에도

여전히 그렇게 마신다고 들었다.

가끔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사진찍어 보내기도 한다.

믹스커피만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돌이켜보면

믹스커피의 매력은

적당한 쓴맛과 단맛 사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쓰기만 하면

오래 붙잡고 있기 어렵고,

너무 달기만 하면

금세 질려 버린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천천히 마시게 되는 맛,

부담 없이 다시 찾게 되는 맛.



군대에서의 시간도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쓰게 남았고

어떤 순간은 달게 기억됐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시간은

적당한 쓴맛과 단맛 사이에서

하나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끔 믹스커피를 마시면

그 시절이 함께 떠오른다.

삶도 어쩌면

그렇게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당한 쓴맛과

적당한 단맛 사이에서.

어딘가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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