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보기 힘든 음식, GP의 계란후라이

고립된 최전방에서 마주한 가장 평범한 일상

by 고품격 글쟁이


"0대위, GP 동숙 한번 다녀와."


"잘못 들었습니다…?"


"아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GP 가서 하루 자고 오라고."


"GP 말씀이십니까?"


"그래. 000 GP. 최근에 인접 부대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걱정돼. 다른 참모들도 한 번씩 다녀오라고 했다.
너희 기능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확인하고.
좋은 경험 한다 생각하고 다녀와.
거기 군생활하면서 아무나 못 가는 곳이다."


"예, 잘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GP.
말로만 듣던 그곳에
내가 간다고 했다.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외부와의 온전한 ‘단절’과 ‘고립’을 의미했다.
모든 전자기기는 반납해야 했고,
공중전화조차 없었다.
외부와의 소식을 끊은 채
오로지 전방만을 바라보며

경계작전에 임하는 곳.

군 내부 통신망을 제외하면
외부와 연락할 수단은 전무했다.

지도 위에서만 보던 최북단.
철책 너머 미지의 땅에 자리한 그곳.

아무나 가지 않는 곳.

아무나 갈수 없는 곳.

항상 긴장감이 서려 있는 곳.

거기가 바로 GP(Guard Post)였다.




참모 임무를 수행하던 대위 시절, 연대장님께서 특별히 GP 동숙을 지시하신 적이 있다. 기능별 점검도 하고, 병력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한번 훑어보고 오라는 뜻이었다. 군생활을 꽤 오래 했지만 GP를 직접 가보는 건 나도 처음이었다. GP라는 곳 자체가 GOP를 담당하는 전방 사단에 근무해야 접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GOP와 달리 GP는 철책 너머에 위치해 몇개월 단위로 교대가 이루어졌다. 그만큼 GP를 맡고 있는 GP장과 소대원들은 철저히 검증된 인원들로 꾸려졌고,그곳에 출입할 수 있는 인원 또한 엄격하게 제한됐다.

경계작전의 여건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영화에서만 보던 GP는 어떤 곳일까.
GP는 과거 불미스러운 일로 크게 뉴스에 오르내렸던 곳이기도 했다. GP 안의 모든 지점이 북한군의 유효사거리 안에 있다던데.전쟁의 흔적인 비무장지대의 땅을 직접 밟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곳의 풍경은 또 어떨까.
독수리나 수리부엉이 같은 천연기념물도 자주 볼 수 있다던데, 정말 그럴까.

GP에 들어가기 전날, 내 머릿속에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장면들이 뒤섞여 떠다녔다.
막연한 긴장감과 함께 묘한 설렘도 있었다.



GOP 연대에 근무한다고 해도
GP를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채

전출 가는 간부들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GP는 쉽게 가보기 힘든,
어딘가 미지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지피에 동숙하기로 한 디데이가 되었다. 전투배낭에 하룻밤 자고 올 기본적인 세면도구들을 챙겼다. 휴대폰이 없이 들어가야하므로 밤에 읽을만한 두꺼운 책도 하나 챙겼다ㅡ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일기를 쓰는 다이어리도 함께 챙겼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지만, 왠지 이번에는 기록을 남겨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 다녀오면
군생활 동안 다시 가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최전방 GOP 연대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GP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연대본부에서 도로를 따라 북단으로
약 1시간가량 차로 이동해야 했다.
이 도로는 험난해
SUV 차량이 아니면 이동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을 올라가면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민통초소가 나온다.
그 초소를 지나 다시 일정시간을 올라가면 GOP가 나오고,
그곳에서 더 깊숙이 들어가면,

GP를 출입할 수 있는 일정한 '문'이 있다.

물론 이 문은 아무때나 열리지 않는다.

딱 정해진시간에 출입 인원과 인적사항, 그리고

목적이 모두 확인된 뒤에야
비로소 제한적으로 개방된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이제부터는 정말 GP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철책을 따라 난 좁은 길을 이동하면서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사람의 흔적은 줄어들고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경호작전을 수행하는 병력이 따라붙게 된다.

이동 자체가 영화에서 나오는 하나의 작전처럼 진행된다.
그제야 내가 단순히 다른 부대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GP장은 눈빛이 강렬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방문자인 나를 위해
GP의 이곳저곳을 직접 안내해 주었다.
정말 철책 너머로
북한 땅이 보이는 신기한 곳이었다.
지도 위에서만 보던 경계선이
눈앞의 풍경으로 펼쳐져 있었다.


GP에 근무하는 소수의 병사들 역시
어딘가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도
외부인을 대하는 듯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소수 인원끼리 생활하는 환경이었고,
작전 기간 동안 외부인이 들어오는 경우도 드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긴장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풀어보려고
바깥세상에서 공수해 온 치킨버거와 콜라 세트를 꺼냈다.




"와!"
"우와!"
"진짜입니까?"



순간, 병사들의 표정이 확 풀렸다.
방금 전까지 조용하던 공간에
작은 환호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방문자를 바라보던 경계의 눈빛도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GP의 군대문화에서 놀랐던 점은
마치 2000년대 초반의 군대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병영에서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2018년 즈음이었고, 그 이후 군대문화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서로에게 향하던 과도한 관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GP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는 곳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생활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전투조끼를 입은 채 농구공을 튀기는 병사들,
슛 하나에도 잠시 숨을 고르며 서로 웃고 있었다
식당 한쪽에서는 몇 명이
작은 테이블에 몸을 바짝 붙이고
보드게임 말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구석에서는 누군가 이어폰도 없이
책장을 넘기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사이버지식정보방에는 한 대뿐인 컴퓨터 앞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병사들이 서 있었다.

아마 거기 사용하고 있는 병사는 소위 말해

'짬'이 되는 병사 일것이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공간 전체에는 묘하게 같은 리듬이 흐르고 있었다.
그곳은 마치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듯,
고유의 군대문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해가 내려가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어둠이 내려앉자 GP의 밤은 더욱 칠흑같이 짙어졌다.
주변은 너무나 고요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산짐승 소리만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불빛도 많지 않았다.
GP 안의 몇 개 조명만이
어둠 속에 떠 있는 '섬'처럼 보였다.
그 바깥은 완전히 어둠이었다.
사람의 인기척도,
차 소리도,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생활의 소음도 없었다.
그제야
이곳이 철책 너머,
고립된 공간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식사하십시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GP장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GP장은 혹여나

내 보고가 지휘관께 잘못 전달될까 봐

내내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지적하러 온 것이 아니니

편하게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어둠을 고요히 지키고 있는 그의 모습이

후배였지만 새삼 다르게 보였다.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책임감이

이곳의 밤에서는 그의 등뒤로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최전방의 어둠 속에 남아

밤을 지키고 있었고,

그래서 멀리 떨어진 곳의 일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저게 뭐지?"
식판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는 순간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군대 식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음식이
식판 한쪽에 놓여 있었다.
집에서는 너무나 흔하고
언제든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지만,
이상하게도 군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메뉴였다.
그래서 더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인의 가장 평범한 아침을 책임지는 음식,
하지만 군대에서는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음식.
바로 계란후라이였다.



군대는 대부분 대량 조리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계란 요리는 주로 삶아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군대에서 계란 요리라고 하면
훈련소에서 먹던 삶은 계란이 먼저 떠오른다.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아
한 번에 까지지 않던 그 계란.
조금씩 벗겨내다 보면
흰자까지 우수수 떨어져 나가고,
결국 반 이상을 버리게 되던
그 삶은 계란 말이다.





"오, 여기는 계란후라이가 나오네요.
군생활하면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내 말에 GP장이 웃으며 답했다.



"예, 아무래도 인원이 많지 않다 보니
취사병이 직접 만들어서 먹고 있습니다.
저도 아래에 있을 때는 못 먹어봤고,
GP 들어올때만 접할 수 있는 메뉴입니다."





역설적이었다.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없는
대한민국 최전방의 밤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정작 군대에서는 보기 힘든
계란후라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일반 부대에서는
효율성과 통제가 우선된다.
그래서 계란은 삶아 나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 된다.
하지만 소수 인원이 고립된 GP에서는
오히려 개인의 생활 리듬과
작은 선택이 가능해진다.
취사병이 직접 후라이팬을 올리고,
각자의 식사가 조금 더 손을 거쳐 나온다.


가장 긴장된 공간에서
가장 일상적인 음식이 등장하고,
가장 자유로워 보이는 공간에서는
획일적인 방식이 유지된다.
GP의 계란후라이는
그 역설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는 계란후라이를
밥 위에 올려 조심스럽게 먹었다.
노른자가 터지면서
밥 위로 천천히 번졌다.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군대에서 계란은 자주 봤지만
이렇게 먹는 계란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고립된 GP에서
가장 평범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작은 일상이 더 또렷해지는지도 모른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었기에
오히려 사소한 식사 하나가
더 크게 느껴졌다.




불과 몇 km 떨어지지 않은 북쪽의 땅에서는
병사들이 경계 임무와 함께
영농 활동을 병행하며 군 생활을 이어간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 남쪽의 GP에서는
계란후라이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같은 밤을 지키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지만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한쪽에서는 생계를 위한 노동이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군생활속에서도

작은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사소한 차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그날 GP에서 마주한 계란후라이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지켜지고 있는 우리 일상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 일상은,
누군가 고립된 곳에서
밤을 지키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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