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에서 라면이 특별해지는 순간

살아남은 하루 끝에 먹는 한 그릇.

by 고품격 글쟁이




“환영해. 근데 전입을 축하한다고는 못 하겠다.
생활자체가 고생이니까. 특히 눈오면 지옥이 펼쳐질거야. 부디 잘 살아남아.”


강원도 최북단 부대에 처음 전입 갔을 때
먼저 근무하고 있던 한 친한 선배에게 들은 인사였다.


보통 전입 인사라면
“축하한다”라거나
“잘 지내보자” 같은 말이 먼저인데,
이제 막 전입 온 사람한테
' 살아남으라니'.


다른 나라라고도 불리는

'강원국'은 어떤 곳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따뜻한 지방에서 그동안 자라온 나에게
강원도 양구는 처음 겪는 환경이었다.
눈이 많이 온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까지는 몰랐다.
잘 살아남으라’는 말도
그저 군대식 농담쯤으로 들렸다.



그때는 아직
양구의 진짜 겨울을
겪어보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전입한 곳은
양구 읍내에서도 큰 고개를 넘어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방산’이라는 곳이었다.
이름 그대로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라
방산(方山)이라고 했다.
지도에서 보면
그저 깊숙한 골짜기 하나에 불과했지만,
직접 들어가 보면
그곳은 바깥과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휴대폰 신호가 약해지는 곳도 많았을 뿐더러,
마지막 고개를 지나면
도로 위 차량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산으로 둘러싸였다는 말이
풍경 설명이 아니라
고립의 느낌에 가까웠다.


특히 ‘도고 터널’을 통과하면 방산으로 진입하는데,
그 터널은 바깥과 안쪽을 나누는
하나의 경계처럼 느껴졌다.
터널을 지나면
같은 지역인데도
전혀 다른 공간이 시작됐다.






다행히 내가 근무할 주둔지는 주도로와 가까운 비교적(?) 양호한 위치에 있어서 그나마 좀 나은듯 했다. 훗날 이야기지만 예하 대대하나를 직접 가보았는데,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다시피 열악하여, 내 첫부대가 이 대대였으면 나는 아마 울었을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한 적도 있다.





그렇게 전입 온 지 어느덧 5개월이 지나
부대 생활에도 조금씩 적응해 갈 때쯤이었다.
가을이 짧게 스쳐 지나가고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드디어 양구의 겨울,
그리고 양구 안에서도
또 하나의 독립된 공간처럼 느껴지던 방산의
진짜 겨울을 맞이하게 됐다.


그날은 다음 날 눈 예보가 있는 날이었다. 강설확률이 그다지 높진 않았기에 급한 참모업무를 처리하러
SUV 코란도를 몰고
GOP 소초로 올라가게 됐다.
내가 있던 주둔지에서 그 소초까지는
편도로 약 1시간 40분이 걸렸다.
지도상 거리로 보면 멀지 않았지만,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따라
고개를 몇 번이나 넘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만큼 산세가 깊은 지역이었다.


뭐 별일 없겠거니
기상 예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채
그대로 올라간 것이 문제였다.
업무를 얼른 마치고
이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흩날리는 정도였는데,
이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산 능선이 흐려지더니
길 가장자리가 빠르게 하얗게 변했고,
방금 올라왔던 길의 형태가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내려갈 수 있을까.
잠시 희망회로를 돌려봤지만,
소초장이 나를 붙잡았다.
과장님, 내려가실 수 없습니다.
지금 내려가시면 중간에 고립되십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눈발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굵어져 있었고,
방금 전까지 보이던 도로의 경계도
이미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오늘 여기서 주무셔야 합니다.
제설이 되고 나서
도로 안정성 평가가 끝나야 내려가실 수 있습니다.”



이런.


졸지에
GOP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즉시 연대장님께 유선 보고를 드렸다.

우선 죄송한 마음이 컸다.

아침 회의부터 지시사항 이행까지 지휘관을 옆에서 보좌해야하는데, 참모가 기상하나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홀로 GOP에 고립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화를 드리자
연대장님은 질책 대신 크게 웃으셨다.



“껄껄. 그래. 소초에 갇혔다고?
부대에 잘 적응하고 있구만.
부디 잘 살아남고. 내려와서 보자.”



그렇다.
이번에도,
잘 살아남으라였다.







졸지에 소초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 됐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GOP의 밤이
빠르게 어둑해지고 있었다.
눈은 멈출 기색 없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러다 며칠은
여기에 머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상황실에 들어가니
눈 때문에 과학화 경계시스템도
오작동이 심했다.
연신 ‘삐삐-’ 하는 경보음이
조용한 소초 안에 울려 퍼졌다.
밖에는 폭설,
안에서는 계속 울리는 경보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날씨라면
북한군도 오다가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초 자체가 산자락에 위치해 있어
눈이 이렇게 쌓이기 시작하면
근무자 투입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어두운 밤에
섣불리 제설을 시작하는 것도
더 큰 위험이었다.
소초장은 우선
근무자가 다니는 이동로 위주로만
제설을 지시했다.
시간 단위로
강설량이 얼마나 누적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했고,
그때마다 상황을 보고했다.




“잠깐, 내일 수요일이잖아.
내일 부식작전 하는 날 아니야?”


“맞습니다. 그런데 대대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내일은 계획된 부식작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최소 경계 병력을 제외한 전 인원
제설작전에 투입하라는 지시입니다.”



눈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내일 제설을 일단 끝내야
그다음 날 부식이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동안은
소초는 뭘 먹고 사는 걸까.
“일단 기본적으로 축적해 놓은 부식이 있어서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제설 시작은 몇 시에 하죠?”
“BMNT 기준입니다.”


이런.
새벽부터 제설이라니.
그것도 단순한 제설이 아니었다.
먹고 살기 위한 부식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제설작전이었다.
그제야
왜 그것을 ‘작전’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잠은 자야 했기에
남는 침상 하나를 받아 누웠다.
소초장은
자기는 병사들과 같이 자면 된다며
소초에서 가장 독립된 공간인
자기 방을 양보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소초장의 권위가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결국 간부 생활관 한쪽,
구석진 자리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였는지,
아니면 밖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눈 때문이었는지,
잠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바람에 밀린 눈이 '쉬익-쉬익-'
쉼 없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가끔씩 상황실에서 울리는 경보음이
정적을 끊어놓았다.



낯선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곳이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나는 그 한가운데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버티고 있었다.




새벽녘,
해가 어렴풋이 떠오를 즈음
선잠을 자던 나도 스르르 눈이 떠졌다.
소초 안이
평소보다 이르게 분주했기 때문이다.
문 여닫는 소리와
장비를 챙기는 소리가
좁은 생활관 안을 오갔다.



아니나 다를까,
병력들은 이미 제설작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도 급히 일어나
대충 씻는둥 마는둥하고
제설 도구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먼저 눈앞에 들어온 풍경에
숨이 탁 막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먼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밤새 내린 눈이
겹겹이 이어진 산 능선을 따라
고르게 내려앉아 있었다.
굽이진 산등성이마다
눈이 새하얗게 덮여 있었고,
해가 막 떠오르며
능선 위로 옅은 빛이 번지고 있었다.


멀리까지 이어진 산들은
마치 파도처럼 겹쳐 보였고,
그 위를 덮은 눈은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긴장감과는 달리,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도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그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겨울 지오피만의 진짜 설경이었다. 문득 그 풍경을 보며 이곳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
GOP에 근무한다는 것은
이런 풍경을
매일 마주한다는 것이구나.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과 맞서 싸우며 경계작전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구나.


쉽게 다가설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묵묵히 근무가 이어지는 곳이었다.
진짜,
아무나 근무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살아남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 같았다.


자연으로부터,

기상으로부터,
어딘가에서 날 겨누고 있을 적으로부터,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버텨내야 하는 자신으로부터.





드르럭, 드르럭.
싹싹, 싹싹.



고요한 설경을
거칠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감상에 잠겨 있던 나를
단번에 현실로 끌어내리는 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장관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아, 그렇구나.
매일 보면
이 풍경도 그저 일상일 뿐이구나.
괜히 머쓱해진 나는
곧바로 제설 도구를 들고
제설작전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조금 재밌었다.
풍경도 감상하고
눈도 치우고.
마치 하나의 액티비티를
즐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자
생각보다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쌓인 눈의 깊이가
예상보다 훨씬 두꺼웠고,
삽을 한 번 밀어낼 때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두 시간이 지나자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온 주도로가 전부 눈으로 덮여 있는데,
이걸 도대체 어디까지 치워야 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간단한 아침을
군대리아로 대충 때우고
제설작전은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경계작전을 위한
철책 주변 작업으로 몇 명이 빠졌고,
남은 병력은 소초 후방 보급로 위주로
다시 차량이 올라올 만한 길을 내기 시작했다.
삽으로 눈을 가득 밀어내면
뒤에서 빗자루 부대가 투입돼
남은 눈을 쓸어냈다.
그래야 차량이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계가 10시를 가리킬 즈음,
소초장에게 물었다.
“대체 언제까지 치워야 하죠?”


소초장은 잠시 능선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앞으로 세 시간은 더 해야
저희 담당 구역이 어느 정도 끝날 것 같습니다.”


나는 무심코 다시 물었다.
“눈 올 때마다 이걸 매번 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GOP 전 소초가 눈만 오면
보급로 정비가 최우선입니다.”
그동안에도 병력들은 말없이
자기 앞에 쌓인 눈을
계속 밀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생이지만,
도로가 닦여야 부식차가 올라온다는 걸
다 알고 있어서인지
묵묵히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
이건 단순한 제설이 아니었다.
진짜,
생존이었다.


눈이 와서 차량이 올라오지 못하면
소초에 있는 먹을 것은
언젠가 바닥나고 만다.
보급이 끊기면
식사는 줄어들고,
결국 병력의 체력도 떨어진다.
체력이 떨어지면
경계는 느슨해지고,
임무는 흔들리게 된다.


GOP에서 눈을 치운다는 것은
단순히 길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먹고 살아남기 위한 길을 내는 일이었고,
경계작전을 이어가기 위한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제설은
작업이 아니라,
생존과 임무 완수를 위한
진짜 작전이었다.




어느덧 GOP 근무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났다.


물론 아래 부대에서도
눈이 오면 제설작전을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절박함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길을 내는 일이
곧 생활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병력들은 말없이
그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고 있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말이다.


그렇게 제설작전을 이어간 지
어느덧 정오가 가까워졌고,
길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가 떠 있어서
그나마 작업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해가 뜨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제설작전에 투입된 지
무려 8시간 반 만에
작업이 종료됐다.


소초로 올라가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몸은 달아올라 있었지만
얼굴에 닿는 공기는 차가웠고,
젖은 옷 사이로
식은 땀이 식어가고 있었다.


허기까지 밀려왔다.
몸은 이미 지쳐 있었는데,
배에서는
뭐라도 넣어 달라는 듯
아우성치고 있었다.
남아 있는 부식으로
뭐라도 만들었을까.
이제는
취사병에게 기대야 하는 순간이었다.



식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라면 냄새가 먼저 밀려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김과 함께 퍼지는 그 냄새는
그 자체로 위로 같았다.
컵라면도 아니고,
개별적으로 끓인 라면도 아니었다.
커다란 국통에
몇십 개를 한꺼번에 넣고
대량으로 끓인 라면이었다.
끓어오르며 퍼진 국물 냄새가
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 그래.
부식과 상관없이
항상 비축해 두는 라면이 있었지.
추운 날씨에
따뜻한 국물이라니.
지친 몸이
먼저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그 라면이
가장 완벽해 보였다.




네모난 식판을 들고 서자
취사병이 커다란 국자로
라면을 한 번, 두 번
가득 퍼 담아줬다.


면이 넘칠 듯 담겼고,
뜨거운 국물이
식판 한쪽을 가득 채웠다.


옆에는
어디서든 맛이 변하지 않는
밥 한 덩이와 김치가 놓였다.
김이 올라오는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젖은 장갑을 벗고
젓가락으로 면을 한가득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뜨거운 국물이
입안으로 먼저 퍼졌고,
얼어 있던 몸이
천천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으… 허…”



이제야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얼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연과 맞서
겨우 숨을 돌린 순간이었다.
이제 소초는
어느 정도 경계작전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태가 됐고,
부식작전이 가능하도록
보급로도 닦아 놓은 상태였다.


그날 라면 한 그릇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눈을 치우고,
길을 만들고,
보급로를 확보한 뒤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평소라면
그저 간단한 한 끼에 불과했을 라면이,
그날은
하루를 버텨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GOP에서는
음식의 의미도 달라진다.


준비된 식사가 아니라
확보해야 하는 식사,
기다리는 음식이 아니라
성공 이후에 주어지는 음식.
그래서 그날의 라면은
유난히 뜨거웠고,
유난히 맛있었다.
그리고 그때
문득 처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부디 잘 살아남아라.




GOP에서 먹는다는 것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냈다는
확인이었다.



그렇게 GOP에서 누군가가
하루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에,
평범한 이들의 일상도
지켜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전방에서 경계작전에 임하고 있을
수호병들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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