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병원과 냉동식품, 그 사이에서 알게 된 것

외진을 다녀온 날, 처음으로 선택해본 순간

by 고품격 글쟁이



“너 입술 옆이 왜 그래?, 왜 이렇게 텄어?”


몇 주째 그대로였다.


“예. 의무대는 다녀왔습니다.”
“이게 긴장하거나 피로하면 올라오는 포진인데…

잘 안 없어집니다.”


포대장은 잠깐 내 얼굴을 더 보더니
“그래?”
하고 짧게 넘겼다.
나는 원래 겨울이 오거나, 피곤하거나,
몸이 허해지면 입술 주변에 포진이 올라오곤 했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항상 그랬다.
잘 먹고, 잘 자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때는 달랐다.


“아직도 안 나았냐?”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였고,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신경을 건드렸다.
딱지가 앉았다가도 다시 터지고,
아문 것 같다가도 다시 벌어졌다.
밥을 먹을 때도, 말을 할 때도, 입을 조금만 움직여도
그게 계속 느껴졌다.


왜 이렇게 안 낫지…”


그 겨울의 포진은
단순히 올라온 게 아니었다.
나는 그걸 앓고 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었다.


낯선 환경, 선임들 눈치, 끊이지 않는 근무,

그리고 늘 모자란 잠.

그때 그 포진은 지독하게도 낫지 않았다.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나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아마도 몸이 먼저, 버티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외진 한 번 다녀와라. 언제까지 그럴 순 없잖아.
가서 분대장한테 보고해. 포대장이 보내라고 했다고.”


“예, 알겠습니다!”
그 순간, 나를 걱정해주는 포대장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런데…

외진이 뭐지?
뭔가 큰 병원에 가라는 뜻 같긴 한데,
정확히는 몰랐다.
나는 분대장에게 보고하기 전에
세 달 먼저 들어온 맞선임에게 물어봤다.


“일병님, 외진이라는 게 뭡니까?”
“외진? 외래 진료 말하는 건데.”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버스 타고 저기 멀리 있는

○○병원까지 갔다 오라는 거야. 가면 좋다.”
“좋습니까?”
“버스 타고 한 시간, 갔다 오면 오후다.
하루 일과 그냥 째는 거지.”


그 말에 순간 귀가 솔깃했다.
그때, 맞선임이 내 입술을 보더니 툭 던졌다.


“그 입술 때문에 가는 기가?”


부산에서 온 그는
투박하게 말을 이어갔다.


“근데 니, 외진 간다고 말하기 전에
포대장님이 보내라 했다 카라.”
“예?”
“안 그럼 니 뺑끼 쓰는 걸로 오해받을 수 있다 아이가.”


나는 순간 멈칫했다.


“아니… 병원 가는 게 왜 뺑끼입니까?”


그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한 번 가보면, 뭔 말인지 알끼다.”




“분대장님, 저 입술 터진 게 안 나아서…

외진 다녀오려고 합니다.”


“뭐?”


분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이등병이 뭔 외진이야.
내가 이등병 때는 다리가 부러져도 참았어.”


그는 코웃음을 치듯 덧붙였다.
“하여간 요즘 놈들은 말이지, 진짜…”


한창 잘나가던 상병 5호봉의 분대장은
떫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저는… 참을 만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포대장님을 만났는데,
입술이 며칠째 그대로인 걸 보시고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잠깐 멈칫하더니,
“어쩔 수 없네. 다녀와라.”
그리고는 덧붙였다.



“내 지켜본다.”



내심 서러웠다.
몇 주째 낫지 않는 입술 때문에
밥을 먹을 때마다 쓰라렸고,
세수를 할 때조차 고역이었다.
아파서 병원을 가겠다는 건데,
그걸로 갈굼을 당하고 있었다.
도대체 외진이 뭐길래,
아픈 사람을
이렇게까지 죄인처럼 만드는 걸까.




“오늘 외진 가는 병사들은 아침 식사 이후 08시 30분까지 사단 의무대 앞으로 집합 바란다.”


오.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08시 30분이면 한창 아침 청소를 하고,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뒤 일과 집합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다른 곳으로 집합하라니.

그날, 대대에서 외진을 가는 병사는 나 혼자였다.

다만 의무대 앞으로 가보니 같은 막사를 쓰던

다른 부대 병사들이 몇 명 더 모여 있었다.

인접 부대 병사들까지 하나둘 모이자

어느새 서른 명 가까이 됐다.

그때, 멀리서 큰 대형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우리 모두를 군병원으로 데려갈 이동 수단이었다.






군용 버스를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딱딱한 의자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안락하게 느껴졌다.
버스 안에는
운전병의 취향이 담긴 듯한
당시 유행하던 걸그룹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대를 벗어나자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철조망과 위병소가 사라지고,
대신 낮은 상가와 간판들이 보였다.
문을 막 열어젖힌 식당,
아직 손님이 없는 편의점,
길가에 세워진 배달 오토바이.
버스는 신호등에 멈췄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그 모든 장면이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창가에 기대 그 풍경들을 하나씩 따라갔다.
이곳에는 나를 감시하는 눈초리도 없었고,
아픈 입술을 참고 일과를 버틸 필요도 없었다.
그저 도착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
군에 입대한 이후
가장 마음이 편했던 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너무 편안한 분위기에 깜빡 잠이 들었다.
“도착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온 말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았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매일이 이렇게 마음 편하면 얼마나 좋을까.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병원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군병원이라 하면 왠지 모르게

얼룩무늬로 도배된 투박한 건물을 떠올렸는데,
막상 마주한 모습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여느 일반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외관이었다.




인솔 의무병의 안내에 따라 피부과에 접수를 하고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내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생각보다 일반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환자들이 모두 병사라는 점,
그리고 일부 의료진이 군복을 입고 있다는 것.
그 정도의 차이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서는 정보가 중요했다.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누가 먼저 아는지가 달라지는 곳이었으니까.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병사들의 대화가 들렸다.


야, 빨리 진료받으면 열두 시 반에 저기 PX 앞에서 보자.”
“거기 엄청 크다던데?
냉동도 엄청 종류 많대.”


순간,
귀가 솔깃해졌다.


그러고 보니 복귀 출발 시간은 15시, 오후 세 시였다.
그런데 점심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누가 챙겨주는 것도 없고, 별도의 지시도 없었다.
그저 각자 알아서 먹고 정해진 시간에 다시 모이는 구조였다.
아까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PX.
여기 PX가 엄청나게 크고,
전자레인지를 비롯한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다는
꽤나 ‘고급 정보’였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목표를 하나 세웠다.
‘빨리 진료 끝내고, PX를 가봐야겠다.’




어느덧 내 진료 차례가 돌아왔다.
처음 보는 군의관은 내 입술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거 헤르페스네.”

담담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좀 쉬면 다 낫는건데.”


그는 내계급을 슬쩍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긴. 그러기가 쉽지 않지. 전입한 지 얼마 안 됐지?
연고 바르고, 약 줄 테니까 챙겨 먹어.”


그 말투는 이 상황이 특별할 것 없다는 듯 심드렁했다.
진료는 금방 끝났다.

문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안 낫는 이유는
약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외진을 일주일만 매일 올 수 있다면
아마 어떤 병이든 다 나을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지쳐 있었던 거였다.


진료가 언제 끝나느냐에 따라
외진은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했다.
오후에 잡히면 PX는 꿈도 못 꾼다고.
그런데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이름이 불렸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이었다.


‘이거…’


잠깐 계산이 섰다.
복귀는 세 시.
지금은 겨우 열두 시쯤. 세 시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세 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곳은 하나였다.
자연스럽게
PX 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PX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면 됐다.

도착하자 입에서 짧게 소리가 새어나왔다.

우와…”


대대에서 보던 PX는 구멍가게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넓은 공간.

끝없이 늘어선 냉장고.

진열된 식품들.

그리고 곳곳에 놓인 테이블과 전자레인지.

병사들은 냉동식품을 꺼내 아무렇지 않게 돌려 먹고 있었다.

목발을 짚은 병사도 있었다.

몸은 불편해 보였지만,

먹는 데에는 아무 제약도 없는 것처럼.

그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다른 곳도 둘러볼 수 있었지만,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냉동고 앞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안에는 익숙한 것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냉동만두, 볶음짬뽕, 슈넬치킨.
나는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손만 뻗으면 바로 집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대대에서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병사들에게 냉동식품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자레인지 앞에는 늘 줄이 있었고,
자리는 비어 있는 법이 없었다.
괜히 기웃거리다가는 선임들 눈치만 보게 되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건 먹고 싶다고 먹는 게 아니라,
소위 말해 ''이 되어야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달랐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고,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그대로 집을 수 있는 거리.
그 순간,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는 먹는 것조차 내가 고를 수 있었다.




볶음짬뽕이랑 슈넬치킨.
냉동고 앞에 서자 그 두 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별 고민 없이 그걸 집었다.
대대에서 선임병들이 자주 해 먹던 조합이었다.
옆에서 몇 번 본 기억이 그대로 따라 나왔다.
냉장고를 한 번 더 열어 빅팜 하나를 꺼냈다.
볶음짬뽕에 같이 넣어 먹던 게 떠올랐다.
계산대 옆을 지나면서는 바나나우유도 하나 집었다.
자리로 돌아와 봉지를 뜯었다.
볶음짬뽕 위에 빅팜을 대충 잘라 넣고,
슈넬치킨은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드디어
옆에서 보기만 하던 걸 직접 먹어보는 순간이 왔다.
볶음짬뽕을 한입 떠 넣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면서 입안이 바로 얼얼해졌다.
매콤한 면발 사이로 잘게 썬 빅팜이 씹혔다.
기름진 맛이 퍼지면서 매운맛이 한 번 눌렸다.
슈넬치킨도 집어 들었다.
겉은 바삭했고, 속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한입 베어 물자 기름 향이 먼저 올라왔고,
뒤늦게 짭짤한 맛이 따라왔다.
나는 입술의 통증도 잊은채

거의 씹는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었다.
그건 단순히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그동안 닿을 수 없던 ‘짬’의 경계를
처음으로 넘는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먹고 나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복을 입은 채 냉동식품을 먹고 있는 병사들.
목발을 옆에 세워두고
서서 먹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다른 부대에서 외진을 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병사들도 보였다.


각자 아무 말 없이 먹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누가 먼저 먹는지도,
얼마나 먹는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말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느슨했다.
그곳에서는
시간도, 순서도, 눈치도
잠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군대 같지 않은 순간이었다.

여기서는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자기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대에서는
늘 누군가의 속도에 맞춰야 했으니까.




어느덧 PX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복귀 버스에 올라타 있었다.
올 때와 달리 차 안이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는 잠깐 눈을 붙일 만큼 마음이 가벼웠는데,
돌아가는 길은 그럴 틈이 없었다.
복귀하면 다시 일과가 시작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고,
질서와 규칙에 따라 하루를 보내는 생활.
내 스스로 어떤 행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던 순간들.


입술도 다시 쓰라렸다.
아까 먹은 볶음짬뽕 때문인지, 열이 오른 듯 따끔거렸다.
치료를 하러 나왔는데, 오히려 더 자극만 준 셈이었다.
창밖을 보다가 시선을 떨궜다.
아까 그 시간이 자꾸 떠올랐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던 식사,
눈치 보지 않아도 되던 자리,
내가 먹고 싶은 걸 고르던 순간.
그걸 한 번 겪고 나니,
다시 돌아가는 길이
이상하게 더 무겁게 느껴졌다.



외진을 가면 괜히 뺑끼로 보일 수 있다는
선임병의 말이 떠올랐다.
그땐 잘 몰랐는데, 막상 나와 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아까 PX에서 보이던 병사들.
그때는 ‘나이롱(?) 환자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걸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 또한 그들이 군생활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일테니까.




역설적이게도 외진을 다녀온 후

나의 포진은 몇일 지나 금방 치료되었다.

그것은 군의관이 준 연고와 약 때문이었을까.

혹은 하루간의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냉동식품을 즐겼기 때문이었을까.

지금도 알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날 PX에서 보낸 시간은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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