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을 장식하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보면 ‘마약’이 우리 사회의 신종 키워드로 자리매김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미디어에 등장하던 유명인들이 마약사범으로 연루되기도 하고, 이제는 군의 울타리 안까지 마약이 침투했다는 기사를 보면 군도 더 이상 마약 청정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전쟁 수행의 주체인 군인이 마약을 근절해야 하는 이유는 전쟁사에서도 그 교훈을 찾아볼 수 있다.
최초 마약은 전쟁터의 이상적 동반자였다. 19세기 초 독일 약사 프리드리히 빌헬름 제르튀르너는 양귀비에서 모르핀을 분리·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모르핀은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으므로, 이 진통제는 미 남북전쟁과 보불전쟁에서 널리 사용됐다. 당시에 마약은 전장의 적인 두려움 대신 ‘과감함’을 심어주는 동력이었고, 상처를 입은 군인에게 아픔을 이겨내게 하는 필수품으로 자리했다. 더욱이 헤로인·코카인, 그리고 메스암페타민이 주성분인 ‘페르비틴’은 한때 소화장애, 무기력증, 우울증까지 완화해주는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해 군인뿐 아니라 계층을 불문하고 유럽 전역을 장악하기도 했다.
마약이 주는 달콤함은 독일 군대를 취하게 했다.
마약의 마력(魔力)은 전차가 아르덴고원을 넘어 스당(Sedan)과 덩커크(Dunkirk)까지 꺼지지 않는
최대 마력(馬力)으로 달리게 했다. 당시 독일군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와 시간이었고, 멈추지 않고 진격하는 전차의 엔진을 꺼뜨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유명한 전격전의 신화가 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알 수 없는 명령에 따라 진격은 멈추고 말았고, 완승을 목전에 두었기에 후유증은 더욱 심각했다. 전격전의 수행 동력을 마약 하나로 깎아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군인들이 침식을 잊고 달릴 수 있게 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난 이후 독일 군인들은 중독으로 더 많은 마약을 찾았고, 무분별한 남용은 독일 군대를 병들게 했다.
지도자 히틀러는 그 누구보다 약에 절어있었다. 히틀러의 주치의 모렐(Morell)의 기록에 의하면, 히틀러는 1100여 회 이상의 각종 약물 주사를 맞으며 판단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제국의 부흥을 외치며 마약을 금지하고 ‘금욕주의’를 표방했던 나치독일의 총통이, 뒤로는 코카인과 아드레날린 등 닥치는 대로 몸에 투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전장의 국면이 악화될수록 약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심해졌고, 육체와 정신이 붕괴한 상태에서 그는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판단을 하기도 했다.
강력한 약물의 힘은 히틀러를 녹아내리게 했고, 약에 절은 중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멸’뿐이었다. 그는 결국 약의 제물이 되어 자신을 파괴했고, 광기 어린 명령의 결과는 인류를 고통스럽게 했다.
‘독일 제국의 부흥’이라는 기치 아래 국민을 민족주의에 취하게 했던 히틀러가 도리어 약물에 중독돼 깨지 못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그는 자신과 국가를 달콤한 꿈에 취하게 했지만 정작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 꿈을 꾸게 했지만 깨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암울한 전황을 잊기 위해 약에 기대었고, 약에 의존해 현실을 가리려 했다. 약이 결국 스스로를 삼킨 독(毒)이 된 것이다. 오늘날 군인이 금단의 열매에 손대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