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질문 뒤에 숨겨진 서늘한 진심
신입사원 시절, 인사팀 선배와 동기들이 모인 술자리는 퍽 다정했다.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며 모두가 혼란스럽던 시기, 선배는 인심 쓰듯 물었다. "너희는 어디서 일하고 싶어?"
서울, 인천, 경기... 동기들은 마치 소원 성취라도 해줄 듯한 선배의 질문에 신이 나서 각자의 희망지를 쏟아냈다. 나 역시 그 다정한 질문에 취해 잠시 착각했던 것 같다. 회사가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지도 모른다는, 아주 말랑말랑한 착각.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얼음물보다 차가웠다.
"가기 싫으면 다 그만둬. 어차피 너희 아니어도 할 사람 줄 섰어. 다시 뽑으면 그만이야."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술기운이 단번에 달아났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내뱉은 '희망'은 선배에겐 그저 가소로운 투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름과 꿈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규격만 맞으면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양산형 부품'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는 말, 회사는 가족이 아니라는 말은 그날 밤 내 안에서 선명한 문장이 되었다. 부품은 불평하지 않는다. 부품이 기계의 진행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기계는 수리하는 대신 부품을 교체해버린다. 그것이 훨씬 싸고 빠르기 때문이다.
이 냉혹한 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평생 교체될까 전전긍긍하며 기계의 속도에 몸을 맞추거나, 아니면 어떤 기계에 꽂아도 작동하는 '독보적인 부품' 혹은 기계 자체가 되는 법을 익히거나.
나는 그날 이후, 다정한 질문 뒤에 숨은 칼날을 잊지 않는다. 회사가 나를 '다시 뽑으면 그만인 존재'로 취급할 때, 나 역시 회사를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정거장'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남지 않기 위해, 나는 퇴근 후 나만의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