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라는 이름의 가방을 내려놓을 때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는 지독한 강박에 대하여

by 유열

​오늘도 나는 보이지 않는 가방 하나를 짊어지고 전동휠체어의 전원을 켠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은 마치 오늘 내가 메고 나아가야 할 하루치 염려의 무게처럼 다가온다. 조이스틱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수록, 어깨 위의 가방끈은 더 팽팽하게 나를 조여온다. 사람들은 내가 바퀴를 굴려 어디든 자유롭게 유영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내 손등 위에는 늘 긴장의 실금이 가 있다. 이 작은 막대 하나에 나의 안전과, 가방 속에 빽빽하게 담긴 오늘 하루의 모든 변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싱가포르 여행의 기억은 그 가방이 가장 무거웠던 순간으로 남아 있다. 낯선 땅, 낯선 공기 속에서 휠체어 바퀴를 굴린다는 건 출발 전부터 수만 가지의 ‘염려’를 가방 가득 쑤셔 넣는 일이었다. 비행기 배터리 규정부터 이름 모를 거리의 저상버스 배차 시간까지, 나는 모든 상황을 나의 통제 안에 가두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거듭 확인했다. 혹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의 하루를 무너뜨릴까 봐, 나는 여행의 설렘보다 체크리스트의 무게를 더 크게 짊어지고 있었다.
​이런 긴장은 일상의 아주 작은 틈에서도 불쑥 고개를 든다. 식당 하나를 가더라도 나는 늘 ‘한 뼘의 문턱’ 앞에 멈춰 선다. 그 작은 단차 하나가 나의 세상을 가로막을까 봐, 나는 리뷰 사진을 수십 번 돌려보고 지도 앱의 바닥을 확대하며 마음을 졸인다.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을 앞두고, 나는 아직 마주하지도 않은 장애물에 미리 가로막혀 내면의 평온을 조금씩 갉아먹곤 했다.
​결국 깨달은 것은, 내 염려의 본질이 ‘모든 상황을 내 뜻대로 장악하고 싶다’는 지독한 욕구였다는 사실이다. 내가 조이스틱을 꽉 쥔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턱이 평지가 되지 않듯, 인생의 불확실성 또한 나의 걱정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변수를 완벽히 통제하려는 강박은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려야 할 바람의 결을, 따스한 햇볕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흔히 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고, 내 앞길의 문턱을 미리 지워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릎 높이의 시선에서 마주하는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이나 하늘을 나는 참새를 보며 “너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니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눈부신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겸손한 신뢰’였다. 다스릴 수 없는 영역은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맡겨두고, 나는 그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조이스틱을 부드럽게 밀며 나아가면 그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염려할 것이다. 배터리 잔량에 마음을 졸이고, 식당의 문턱을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조이스틱을 쥔 손에 너무 힘을 주면 오히려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는 것을. 가방 속의 염려를 하나둘 길가에 내려놓고 나면, 비로소 조이스틱을 밀어내는 손끝이 가벼워진다는 것을. 조금은 엉성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며, 내가 굴리는 바퀴 자국마다 삶의 가장 진솔하고 따뜻한 문장들이 새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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