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 맞은 아저씨 BUT,

그 소년의 손바닥도 아닌… 발끝에도 없었다

by 낙화유수

얼마 전,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늦은 밤, 편의점 앞. 가로등 불빛이 흐릿했고, 공기엔 하루의 피로가 내려앉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담배를 꺼내 들고 있었다. 그의 손은 약간 떨렸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기보단,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성냥을 켜지만, 바람은 참 야속하게도 그 불씨를 날려버렸다. 한두 번 시도한 끝에 그는 담배를 피우는 걸 포기한 듯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멈춘 움직임. 마치 세상이 잠깐 정지한 것 같은 순간.


누군가 말했다. "저 사람, 이번에 로또 1등 됐대. 여기 근처 편의점에서."

나는 반사적으로 다시 그를 봤다. 그 순간,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조였다. 뭔가 잘못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 75억이라는 당첨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채색 표정.


그 장면을 떠올리며 오래전 신문에서 읽은 누군가가 떠올랐다.

직접 본 적도 없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다만 몇 줄의 기사에 실린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한국 20대 대기업 창업주의 손자. 태어나기 전부터 상속이 계획되어 있었고, 초등학생도 되기 전에 수십억 원대 주식을 소유했다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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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문장 하나. “로또는 감정이 없는 돈이에요.”

당시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너무 차갑고, 너무 계산적인 말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문장이 머릿속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문득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행복해 보이지만 외로워요. 돈이 생기면 사람들이 다가오지만, 진짜 내 편은 점점 줄어요.”


그 문장도 그랬다. 차가운데 묘하게 슬펐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로또는 서민에게 거의 유일하게 허락된 반전의 희망이다. 현실은 팍팍하고, 월급은 늘 빠듯하고, 세금은 내는데 집은 멀기만 하다. 그런 날들 속에 주말마다 번호를 적는 행위는 무언가를 붙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도 매주 로또를 샀다. 기대는 안 한다면서도, 괜히 번호 추첨일엔 방송을 틀었다. 어쩌다 한두 개 맞으면 기분이 좋고, 다 틀리면 “역시”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여서 로또를 샀다. 통장 잔고는 월급받고 며칠 사이에 바닥났고, 어디에 쓴 건지도 기억 안 나는데 빠져 있었다.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열심히 일하는데 왜 이렇게 되지…' 고정비는 점점 늘어났다. 월세, 공과금, 통신비, 대출 이자, 부모님 병원비까지. 카드값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고, 식비는 줄이고 또 줄여도 버겁다. 이게 다 어디로 새는지도 모르게 빠져나간다.

그러면서도 또 산다. 어쩌면 습관이고, 어쩌면 체념이다. 나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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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와 커피를 샀던 날이 있다. 정말 별거 아닌 금액이었는데, 계산대 앞에서 괜히 주저했다. 이걸 사도 되나? 지금 내 처지에서. 결국엔 샀지만, 이상하게 죄책감 같은 게 들었다. 참 묘했다, 그 기분.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가 꿈꾸는 그 '몇십억'이 누군가에겐 아예 출발선이었다는 거다. 그런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다 이겨놓고 태어난다. 사회적 신분, 교육, 언어, 태도까지.



로또는 계급의 벽을 허물기 위한 희망이지만, 그 벽을 넘는 게 아니라 그 벽을 '알게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편의점 앞 남자는 여전히 서 있었고,

문득 이런 상상도 해봤다. 만약 그 재벌가 손자를 내가 마주친다면 뭐라고 말할까. 아니, 그 아이가 먼저 내게 물어왔다고 치자. '당신은, 돈이 없어서 힘든가요?'라고. 나는 뭐라 답했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을지도.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갑자기 수십억이 생긴다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주변이 조용히 나를 평가하는 느낌. 내가 누군지보다, 내 잔고가 더 중요해지는 삶.


솔직히 말해,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며칠 안에 불안에 잠 못 들고, 다정한 사람조차 의심하게 될 것 같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라 믿지만, 그 돈이 나를 삼켜버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그건 순진한 거다.



로또를 부러워하는 우리. 그건 현실이 너무 단단해서, 도망갈 곳이 없어서, 그저 뚫고 나가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 뚫고 나간 곳이 낙원이 아닐 수도 있다면?

진짜 정상은, 로또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올라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게 보장된 삶.

그러니까 로또란, 역전이 아니라 현실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슬펐다.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로또 용지를 들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생각이 하나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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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 맞은 아저씨, 그 소년의 손바닥도 아닌… 발끝에도 없었다.

돈은 가질 수 있다. 복권으로든, 행운으로든, 어쩌다든.



가끔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지고 싶을 때도 있다. 딱히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다 너무 벅차서.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속으로만 삼킨 그런 날들이 쌓여서. 하지만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렇게 살아낸 사람뿐이다.



그 감정의 무게는,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 만든다. 그리고 그 시간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 편의점 앞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인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