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세계와 이상의 긴장

결국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세계에서

by 임준열

‘요구하는 존재들‘부터 ‘자유의지에 대하여 ‘ 까지 우리가 이야기한 부분들은 사실 이상적인 세계의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이상만을 좇으며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 당위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누구나 판단할 수 있지만, 그것만을 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왜냐면 우리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힘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예시를 들어보겠다. 만약 어느 날 돼지가 갑자기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추고, 언어를 배워서 자신들의 세계에 권리를 요구하며 인간을 향해 권리 쟁의를 한다고 하자. 당위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가 돼지들의 입지를 인정해 주고, 돼지도 인간만큼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 옳지만, 현실에서 그 돼지들에게 그만큼의 권리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더 현실적으로 보자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거나 서커스 극단에 팔려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입지가 우리 지구상에서 너무나도 단단하고, 돼지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인간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힘의 논리에 의해서 인간은 돼지들보다 세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고, 부정하기 어려운 서열이 생기고야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의 논리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인간이 지구상에서 우위를 점해 다른 존재들의 요구를 짓밟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인 것은 아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힘의 논리를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곧 지배를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예시를 좀 더 확장해 보자. 우리에게 억압받던 돼지가 마치 혹성탈출의 유인원들처럼 인간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결국 인간을 꺾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만약 돼지들이 우리를 지배하려 해도 우리는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래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힘의 논리 때문에 지배를 인정한다면, 우리도 지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힘이 곧 지배의 정당성이 된다면, 돼지의 예시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는 제국주의와 노예제도, 식민지의 경우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야 만다. 두 번째 문제는 힘이 정당성이 될 경우에 도덕의 가치는 사라지고 만다. 힘이 곧 행위를 정당화한다면, 옳고 그름은 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유념할 때 힘의 논리가 세계의 유일한 규범으로 적용되는 것은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힘의 논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를 조정해야 할까? 이러한 힘의 논리에서 우리를 보호하면서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힘의 논리와 대립되는 축이 필요하다. 이 축은 도덕성이나 평등 같은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세계에서 이상으로 방향성을 잡아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처럼 느껴진다. 왜 도덕성과 평등이 이상이냐 하면, 우리는 이 같은 것을 아무리 좇는다 하더라도 절대 완벽한 도덕성을 지닌 사회를 만든다거나 완전 무차별적인 평등을 얻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상을 기준점 삼아 나아가야 하는데, 이는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이상을 좇는 것을 멈추고,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잡아 그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면, 변모하는 세계 속에서 그것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나게 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변화하는 힘의 논리에 잡아먹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논리와 이상은 끊임없이 긴장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상과 힘의 논리 사이의 긴장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기준점까지 그 싸움을 끌고 와야 할까? 긴장 상태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안정 지점은 어디일까? 이 논의를 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는 선하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선함에 강요될 의무는 없다. 이 말은 우리가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의 기본 골자는 힘의 논리인데,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에 가까운 이상을 좇아야 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우리가 언제까지나 강자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끝까지 선의 반대 축에 선다면, 도덕이라는 가치가 무용해지기 때문이다. 자 이것을 유념하고 안정 상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먼저 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까? 힘이란 세계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칭한다. 이 능력은 비단 물리력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의사능력, 사고력 등등 능력 전반에 해당한다. 권리를 쟁의하는 것에서 예를 들자면, 만약 의사능력이 없지만, 사고력은 갖춘 어떤 돌멩이가 있다고 하자. 이 존재는 그의 사고로 끊임없이 세계에 권리를 요구한다. 요구가 꼭 의사표현으로 일어날 필요는 없으므로, 자유의지를 지닌 돌멩이가 권리를 요구한다면, 돌멩이는 당연하게 권리를 얻어내겠지만, 이 권리를 다른 존재들과 논의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까. 능력의 부재로 인한 힘의 비대칭이 일어나는 것인데, 돌멩이와 다른 존재인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그 요구를 알아채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이상의 편에 서서 바라보면, 모든 존재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의사 표현이나, 혹은 의사 표현 없이도 권리를 요구하고 있을 수 있으니, 모든 존재를 감안하여 살아가야 할 테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이해 가능한 범주에서 요구가 보인다면, 그것은 협상의 쟁점이 될 수 있다. 이 예시를 보았을 때 안정 지점이 드러난다. 안정 지점이란, 이상이 무시받지 않으면서, 힘이 정당성의 근거가 되지 않는 최소한의 선이 곧 안정 지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힘의 논리와 이상의 긴장 상태가 팽팽하게 유지될 때 비로소 안정 지점에 진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힘의 논리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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