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너머, 순수의 물결

중요한 건, 이 순간 이 기쁨 이 따듯함이야

by 크리슈나


1부: 두려움의 시작


며칠 전의 일이 아직도 생생했다. 깊은 풀에서 수영하다가 갑자기 물이 코로, 입으로 들어왔던 그 순간. 숨이 막히고 온몸이 경직되면서 두려웠고 창피했다. 명색이 연수반인데 아, 왜 이리 창피하니?


안전요원이 달려왔다. 늘 감시하던 안전요원 친구가 오늘은 왜 이리 사랑스러워 보일까. 걱정해 주는 눈빛은 너무 고맙다. "괜찮으세요?" 하고 물어보는 목소리도, 진심 어린 위로도.


"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 후로 수영장 물만 생각하면 은근히 두렵고 가슴이 답답했다. 밤에 잠들 때도 물속에서 숨이 막히던 그 느낌이 자꾸 떠올랐다.


"오늘은 그냥 집에 있을까?"


희진은 수영복을 들고 망설였다. 벌써 며칠째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평소라면 매일같이 갔을 텐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거웠다. 거울을 보니 수영복만 봐도 얼굴이 찌푸려졌다.


"에이, 그냥 가자. 가서 수면 위 예쁜 물결 감상이나 하고 오자."


그래서 결국 수영복을 챙겨 나섰다. 집에만 있으니까 더 답답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수영장 문 앞에서도 발걸음이 무거워 머뭇거렸지만.




2부: 게임 준비



아 오늘은 강습이 있구나!


"오늘 15분, 20바퀴 돌고 수구 할게요. 초급반이랑 대결합니다!"


강사님의 제안에 희진은 깜짝 놀랐다. 수구? 지금 이 상황에? 물만 봐도 움츠러드는데?


"어... 저는..."


망설이는 희진을 보고 옆에 있던 수지가 힐끗 보더니 말했다.

"언니, 재밌을 것 같은데?"


수지는 벌써 상대팀을 관찰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스모 아저씨, 리치가 길어서 정말 위험해요. 그리고 저기 초급반 언니는... 음, 의외로 빠를 것 같은데? 아, 그리고 저 할아버지는 경험이 많아 보이니까 조심해야 해요."


초급반 쪽에서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연수반이랑 게임하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그래도 재밌을 것 같은데!"

"아, 나 수구 처음인데..."


희진은 마음이 복잡했다. 물이 무서워졌는데 수구를 한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편에서는 무언가가 두근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 같은 게 있었다.


"언니, 작전 짜야해요!"


수지가 희진이의 팔을 잡고 귓속말을 했다. 얼떨결에 우리는 공격조인 동시에 골대 앞에서 골을 넣는 3인조 팀이었다. 주변에는 우리를 막는 7~8명이 눈빛을 맹렬히 빛내며 철통수비를 하고 있었다.


"제가 저 스모 아저씨를 막을게요. 완전 몸으로 부딪혀서라도 막을 거예요. 그동안 언니가 골 넣으면 돼요!"

"그리고 언니, 저기 할머니는 의외로 손이 빨라요. 조심하세요!"


수지의 열정적인 분석을 듣고 있으니 희진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골을 넣을 수 있을까?"


희진은 불안했지만, 수지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씩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3부: 게임 진행



"자, 그럼 시작할게요!"


강사님이 호각을 불었다. 게임이 시작됐다.


"자기~ 여기! 여기로 줘!"


희진은 팔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아, 이 목소리가 이렇게 크게 나올 줄 몰랐다. 그런데 공을 받으려고 팔을 뻗다가 그만 물을 한 모금 벌컥 마셨다.


"으악!"


잠깐, 어? 무섭지 않네? 오히려...


"캬~ 시원해!"


희진은 오히려 웃으며 물을 털었다. 이상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물만 봐도 무서웠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괜찮을까?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신난다.


"언니! 지금! 지금이야!"


수지가 절규하며 스모 아저씨를 견제하고 있었다. 작은 몸으로 큰 아저씨를 막아서려니 온몸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아저씨는 당황한 듯 "어어?" 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우와, 수지야! 대박!"


희진이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그 순간 공이 희진 쪽으로 날아왔다.


"어? 어디로 던지지?"


희진은 골대 앞에서 공을 들고 우왕좌왕했다. 아저씨들이 "여기 여기!" 하고 외치고, 언니들도 "이리로!" 하고 소리치고, 할머니는 "천천히 해!" 하고 응원하고. 그 소리들에 정신이 없어서 결국 엉뚱한 곳으로 공을 던져버렸다.


"아, 미안미안!"


하지만 희진은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재밌었다. 상대팀 사람들도 웃고 있었고, 우리 팀 사람들도 웃고 있었다. 심지어 골을 못 넣었는데도 박수가 나왔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다음엔 꼭 넣어요!"


순간, 상대팀 초급반 언니가 달려들더니 희진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으악!! 이 언니 뭐야... 악력이 국가대표인데?"


데드리프트 100kg까지 드는 희진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완전 허당이었다.

(나 지금 손목 꺾여서 세상 떠날 뻔했어... 살려줘!)


"미안해요, 미안해요! 너무 세게 잡았나?"

초급반 언니도 당황하며 손을 놓았다.


그 와중에 공은 휙, 휙, 휙. 여기저기로 날아다녔다.

수영장 전체가 물장구와 비명, 웃음소리로 뒤집혔다.


희진은 기분이 묘하게 업돼 있었다. 신나게 소리 지르고 스코어는 관심도 없고 물속에서 물장구치고 뛰고 너무 신났다. 골 넣는 것도 잊고 그냥 물속에서 방방 뛰어다녔다.


(아, 나 지금 완전 일곱 살 꼬마 같다... 까르르~)


"희진 언니! 공이요, 공!"

"아, 맞다! 공!"


희진은 다시 공을 향해 헤엄쳐갔다. 이번에는 물도 안 무섭고, 사람들 부딪히는 것도 무섭지만 재밌고, 소리 지르는 것도 시원했다. 어쩌다 공을 잡으면 5~6명이 달려들어 막 몸을 밀치고 비비고~얼떨떨.


"여기서 골 넣을 거예요!"

"오케이! 해보세요!"


이번에도 빗나갔지만, 모두가 웃으며 의기양양 아쉬움이 교차한다.



4부: 게임 후 여운



게임이 끝나고 샤워실에서 수지가 말했다.

"언니, 진짜 재밌었어요! 언니가 그렇게 신나 하시는 거 처음 봤어요!"


희진도 웃으며 답했다.

"와, 너 진짜 멋졌다. 근데 그 상대 스모 아저씨를 그렇게 밀어내다니? 완전 경기 하이라이트였어! 작전 대성공!"


수지가 멋쩍게 대답했다.

"언니, 사실 무서웠어요. 과해서 욕먹을까 봐 졸았는데... 괜찮았나요?"


"과하다니? 덕분에 다 재밌었잖아. 진짜 최고였어! 적당한 경쟁심 유지하며 선도 안 넘고!"


샤워하다가 만난 초급반 언니들의 눈이 생글생글 빛났다.

"진짜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해요!"

"저도 연수반 도전해보고 싶어 졌어요!"


이거 꿀잼이었다는 신호가 분명했다. 심지어 아까 희진 손목을 잡았던 언니도 "미안해요, 너무 세게 잡았죠?" 하며 웃고 있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희진은 계속 웃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며칠 만에 이렇게 밝아 보였다.


집에 가는 길, 희진은 혼자서 물장구치는 흉내를 내며 걸었다. 팔을 휘저으며 "휙, 휙!" 소리도 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신났거든.


(아, 나 완전 바보 같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집으로 가는 운전 중에도 혼자 웃었다. 집에서 흥얼거리는 소리에 희진의 남편이 "자기 기분 좋아 보이는데?"라고 물어보자 "오늘 수영장에서 수구 했어!"라고 대답했더니 그녀의 남편도도 따라 웃었다.



5부: 새로운 시작



그날 이후, 희진은 며칠째 그 일을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일하다가도, 밥 먹다가도, 자기 전에도. 옆에서 "왜 이렇게 좋은 일 있냐?"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수구 했거든요."

"수구?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몰라요, 그냥... 너무 재밌었어요."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골도 못 넣었고, 허당짓만 했는데, 왜 이렇게 행복할까?


"물이 무서웠는데... 이제 친구가 된 것 같아."


며칠 후 수영장에 갈 때의 발걸음이 완전히 달랐다. 무겁고 망설여지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수영복을 챙기면서도 "오늘은 뭐 하지?"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한 냄새와 소리들이 반겼다. 클로린 냄새도, 물소리도, 사람들 웃음소리도. 며칠 전까지는 부담스러웠던 것들이 이제는 왜 이렇게 정겹게 느껴질까?


강사님과 멀리서 눈이 마주쳤다. 희진은 진심 어린 고마움의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재밌는 이벤트를 열어주신 강사님께. 강사님도 환하게 웃으셨다.


물에 들어가는 순간, 희진은 알았다.

삶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걸.

완벽할 필요도, 뭔가를 이뤄야 할 필요도 없다는 걸.

물장구와 허당기, 그 소소한 즐거움이 수영장을, 사람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빛나게 만든다는 걸. 그 후 말수 적은 희진이 사람들과 수다도 하고 같이 모여 수영도 하며 물속의 나비 떼처럼 즐겁게 사람들과 어울린다.


희진은 생각했다. 천성이 7살 소녀인데 그리 나쁘지 않다.

뭐 어른이 되어도 가끔은 일곱 살이 되어도 괜찮다는 걸.

아니, 일곱 살이 되는 게 때로는 가장 소중한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수지가 다가와서 말했다.

"언니, 담달도 수구 할 거죠?"


희진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날은 골 넣을 거야!"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골을 넣든 못 넣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중요한 건 이 순간, 이 기쁨, 이 따뜻함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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