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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Jun 16. 2024

무기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이유

인생 15

정신없이 살다 가도 자유시간이 찾아오면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무기력증에 빠진다. 심리학자들은 우울증과 무기력증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우울증은 다시 도전하거나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이다. 반면에 무기력증은 에너지는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못 찾는 상태이다. 우울증은 뇌에 이상이 생긴 것이므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구분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가 어려운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기력증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지나간 일을 생각해 본다. 증권회사에 다닐 때 주식시장의 변동으로 고객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나에게 항의한다고 해서 주식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만 고객들은 원망의 대상을 나로 정한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인지 무기력증인지 한때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멈춰 서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좌절감과 상실감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나는 뜬금없이 친한 형처럼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사실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그 형을 따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 후에 대학원을 다녔고 집에 와서는 논문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딱히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나 그런 일에 집중하면 시간이 잘 가서 짜증 나고 힘든 일을 잊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특이한 습관이 생겼다.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일을 해야 인생에 의미가 있는지 해결하는 습관이다. 어떤 일을 그리고 무슨 일을 해야 인생에 의미가 있는지는 먼 훗날에 가서야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보낸 시간에 의미의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작은 달력에 그날 했던 일을 적고 그 일을 했기에 오늘이 의미 있다고 자위(自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너는 오늘도 의미 있게 하루를 보냈으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별것 아닌 그 습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로 나를 교수로 만들어 놓았다.     


학교에 와서는 승진이 목표였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일기장에 인생의 의미를 채우며 극복하였다. 신기하게도 무언가에 쫓기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비상구를 향해 달렸더니 무기력증은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자유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를 찾지 않던 무기력증도 나를 찾아왔다. 쓸데없이 유튜브를 뒤적거리며 인생의 의미나 무기력증 탈출 방법을 찾아봤다. 그러나 투입한 시간에 비해 만족할만한 답은 얻지 못했다. 애초부터 답도 없는데 유튜버들의 미끼에 속아 계속 같은 얘기만 들었다.      

이 상태가 우울증이 아니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와 연결되어 버렸다. 그러나 인생의 의미를 찾으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자꾸 시간만 흘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무기력해졌다. 이러한 악순환의 굴레가 지속되면서 다시 무기력의 늪에 빠졌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무기력증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귀찮음과 게으름의 또 다른 변명이다. 의미 있는 일을 찾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순간 그 부질없는 계획으로 무기력의 늪에 빠진다. 그냥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것만 찾으려는 욕심을 무기력이라고 탓하며, 그 상태에 안주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지금은 글쓰기를 하면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차라리 아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그 시간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의미 있는 일을 찾기보다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더 수월하고 정신 건강에도 좋다. 무기력증을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귀찮음과 게으름의 핑계는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은 확인해야 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면 결국 인생이라는 단어에 다다른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얘기한 대로 인생은 욕망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이다. 욕망과 권태 사이에 가끔 무기력이 생기는 것이다. 인생이 꼭 의미 있어서 산다기보다는 그냥 주어진 인생이라 사는 것이다. 그래서 무기력증에 빠져있다면 얼른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며 그곳을 탈출하면 된다. 그리고 그곳을 탈출해도 언젠가 다시 그곳에 파묻힐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걱정과 불안이 우리를 무기력의 늪에 밀어 넣을 때 가만히 있으면 시간은 정말로 의미를 잃어버린다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시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그 무언가가 걱정과 불안을 줄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혀 상관없다산책도 좋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고 책을 읽는 것도 좋다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다그렇게 무언가를 하면 무기력에서 탈출할 수 있다무기력에서 탈출하면 걱정과 불안도 눈앞에서 사라진다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은 내가 의미를 부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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