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랑이 주는 힘
난 무언가 성과를 낼 때 남과 비교를 잘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경쟁 사회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타인과의 비교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그날 해낼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야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비교 사회에서 자라며 조금이나마 이런 마음을 보존할 수 있었던 데 엄마의 영향이 컸다. 엄마는 세 쌍둥이 자매 사이에서 다방면으로 뒤처졌던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되려 내가 기가 죽기라도 할까 봐 날 보듬었던 엄마의 모습이 선연하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시험이 끝난 뒤 성적이 나오는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학교 정문에서 하교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대학가에 있는 액세서리샵으로 가 내 취향의 액세서리를 고르게 했고, 그 당시 내가 푹 빠져 있던 녹차 빙수를 함께 나눠 먹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유진아, 넌 지혜롭고 이해심이 많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인생은 지혜로 사는 거야.'라며 나를 다독였다. 나라는 사람이 지닌 고유성을 엄마는 존중했다.
주위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려 들자면, 어떠한 경쟁 선상이든 자신을 객관화하려 들자면 한없이 초라해질지 모른다. 집안부터 학벌, 외모, 지금껏 이룬 성취까지. 그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출발선부터 힘이 빠지고 어깨가 축 처지기 쉽다. 그래도 자신의 고유성을 믿는 힘이 마음 한편에 있다면 '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야.'라는 소리가 가슴 깊은 곳에서 뭉그적거리며 고개를 내밀 수 있다.
내가 인생에서 이뤄낸 작은 성취와 도전들 역시 엄마가 내게 건네준 격려가 연료가 되어 주었다. 그 연료 덕에 자신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결국 묵직한 두려움을 밀어내며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두 번의 과 수석으로 좋은 성적을 냈던 대학 시절의 내가 그랬고, 특출 난 외모와 학벌 없이 방송사 시험을 치르던 20대 중반의 내가 그랬다.
현재 나의 내면 불안의 원인을 찾자면 아마도 엄마일 테고 마음속에서 숱하게 원망했던 대상을 꼽자면 단연코 엄마일 것이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아끼고 격려했던 그 순간의 기억이 엄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했다.
내 아이에게도 내 서툰 진심이 단 한순간이라도 가닿길 바란다. '엄마는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