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가족은____

내 안의 어린아이

by 에세이스트 유진

얼마 전, 조용한 ADHD 증상이 의심되는 딸과 함께 풀배터리 검사를 진행했다. 이때 부모로서 요구되는 MMPI와 문장 완성 검사를 작성하며 알게 됐다. 어린 시절 나의 가족은 가끔 화목했으며, 자주 불안했구나.

내 안에 잠재된 우울과 불안이 결코 작지 않구나.


행복이 넘치는 가정에서 그늘 없이 자라 눈부시게 밝은 친구를 시기했다. 그런 행복이 주어지는 건 누구에게나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있듯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무너질 듯 불안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보다 이혼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더 고요하고 평온하려나. 아무런 선택권도 없는 무력한 어린아이였지만 이혼 가정이 나을지 그나마 형태를 유지한 가정이 나을지를 때때로 저울질했다. 자라면서 내 안의 불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친구 관계, 연인 관계에서도 난 자주 조바심을 냈고 움츠러들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지독히도 외로운 모습이었다. 그들이 다투고 갈라설 결심을 하는 동안 둘 사이에는 우리 남매를 서로에게 떠넘기고자 하는 말들이 수없이 오갔다. 중학교 졸업식 전날도 어김없이 그들의 다툼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고 우리는 불안했다.

졸업식 당일, 주위를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며 타들어가는 나의 마음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실망감과 초라함이 뒤섞인 졸업식을 보냈다. 누구도 내게서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불안정함을 눈치채지 않길 바랐던 나의 바람마저 서글프게 사그라든 날이었다.


어릴 적 나는 엄마의 말에 이따금씩 베였기에 절대 말로 아이를 상처 주는 엄마는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아이를 키우며 나를 시험하는 상황들은 이전과 다르게 다양한 변수와 함께 복잡다단하게 뿌리를 뻗어 갔다. 언제 화를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인내심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내 안에서 마구 솟구친 뜨거운 화염이 아이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아이를 아프게 하는 말들을 쉴 새 없이 쏟아 내고 나서는 며칠을 그 후유증에 우울해하는 날들을 반복했다. 아이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넨다 한들 이미 상처 나 버린 마음이 어찌 처음처럼 온전해질 수 있을까.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아이를 위해서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부터 달래야 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불안에 떨며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나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손을 내밀어 줘야 했다. 집안이 떠나갈 듯 악에 받친 채 서로를 비난하며 잔인하게 짓밟던 부모를 바라보며 처참히 가라앉았던 내 마음을 이제라도 도닥여야 했다. 그때 내 마음에 깊이 남은 상처를 돌보아야 했다. '네가 많이 아팠겠구나.',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이제 마음 놓아도 돼.', '앞으로는 고요하고 평온한 날들이 펼쳐질 거야.'


유년 시절 원가족 관계에서 겪은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을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원가족과 분리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애써 외면하고 묻어두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깊게 헤집는 과정이 될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내가 용감히 나의 상처를 마주하길 바란다. 글을 쓰면서도 조금만 더 덜어내고 싶고, 감추고 싶은 아픈 기억들이지만 담담히 적어 내려가고 싶다. 그저 자신을 연민하려는 게 아니다. 나에게 진정한 위로를 건네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나의 아이에게는 따스하고 안온한 유년시절을 선물해 주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