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간의 영국 축구 일주 - 런던 1

셀허스트 파크, 크레이븐 코티지

by 서재현

일단 아침 일찍 나와서 지하철을 타고 셀허스트 파크로 향했다. 오이스터 카드를 구매했고 구글맵을 따라가니 길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셀허스트 파크는 일정에 맞는 투어프로그램을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밖에서 한 바퀴 둘러보고 오자라는 계획이었고...

역을 나오자마자 우산이 부서졌다. X와 함께 썼던 커플 우산인데 영국의 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이 이후로 느낀 거지만 영국의 날씨는 비가 자주 오지만 한국처럼 무식하게 쏟아지지 않는다. 이슬비 느낌으로 오되 매우 거센 바람을 동반하기에 우산보다는 코트와 모자가 매우 효용이 좋다. 나도 이후로는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활용해 셀허스트 역에서 내려서 셀허스트 파크까지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였고, 가장 독특한 점은 주택가와 경기장이 붙어있다는 것이었다!

영상 캡처라 사진 속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사진 왼쪽 담장도 일반 가정집 담장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민원 어쩌고저쩌고 했을 풍경인 거 같은데... 경기장은 사방이 가정집에 둘러 쌓여있고, 경기장에 큰 마트가 입점해 있어서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는 것도 가능했다.

나는 샌드위치, 과일, 음료로 구성된 meal deal을 사 먹었다, 약 3~4유로 정도

배를 채우고 한 바퀴 돌아보니 비 오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되게 운치 있는 경기장 전경을 볼 수 있었다.

한바퀴 돌면서 찍은 풍경

팬스토어에 들려서 크리스탈 팰리스의 아이콘 윌프리드 자하 선수의 유니폼을 사면서(간 구장에서는 유니폼하나 머플러 하나씩 사야지 라는 목표도 세웠다) 마킹 찍는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음홀 대전을 하고 있었다. 홀란드가 epl에 온 첫 시즌이기에 이는 영국 내에서도 역시 큰 화제였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짧은 셀허스트 파크 방문을 뒤로하고 스타디움 투어를 예약한 풀럼의 홈구장 크레이븐 코티지로 발을 옮겼다.

마찬가지로 셀허스트 - 웨스트 브롬톤 역을 찍은 뒤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동선이었는데, 시간도 남고 동네구경이 하고 싶어서 나는 걷는 걸 택했다. 사실 첼시 - 풀럼 지역이 런던 내 부촌에 해당한다고 해서 런던 부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걷는 걸 택한 것도 컸다. 길을 걸으며 느낀 건 진짜 부촌은 맞는구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였고(이건 유럽 특인 거 같기도), 큰 개와 함께 러닝 뛰는 부부들이 엄청 많이 보였다. 그리고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영국 상류층 복식(코트와 니트 스카프 등)을 갖추고 있었다. 근데 차는 10년 20년 탄 도요타 프리우스 같은 게 주류였던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또 한국과의 소비 행태 차이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동네 구경을 하며 발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크레이븐 코티지에 도착했다!

조니 헤인스 동상, 풀럼에서 18년을 뛰었고 영국 역대 최고의 패서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별명은 마에스트로

스타디움 투어를 예약했기에 리셉션으로 향했는데 들어가자마자 혼났다. 바로 크리스털 팰리스 쇼핑백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게 나중에 이스탄불에 축구를 보러 갔을 때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 리셉션에는 나이가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는데 웃으면서 풀럼에서는 두 벌 사라고 하셨다. 그래서 "저는 미트로비치 짱팬입니다. 백 벌도 살게요" 하고 웃어넘겼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니 나와 투어를 함께할 젊은 부부(유모차탄 애기와 함께) 그리고 나이 든 부부 이렇게 6명이어서 투어를 떠나게 되었다. 투어는 리셉션에 계시던 할아버지와 함께 이 클럽의 시작과 과거에 대해 들으면서 시작됐다. 조니 헤인즈 이야기와 기타 등등...

그리고 외벽에 있는 출입구를 보여주시는데, 이게 처음 지어진 상태 그대로의 출입구라고 한다. 웃으면서 옛날에는 못 먹었기에 이 정도 사이즈면 충분했다고 설명하시는데 진짜 문이 작긴 했다(오래된 스타디움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다). 가이드분과 나 둘 다 173~5 정도인데, 머리가 닿을만한 높이었으니... 티켓을 수령하는 티켓 오피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ㅋㅋ 영상에서는 허리를 숙여야 한다고 액션 하시는데 귀여우신 면이 있으셨다.

이게 안쪽에서 본 출입문의 모습인데 들어가 보면 진짜 비좁다. 또 하반신 정도 높이로 영국식 회전문 turnstile 이 있는데, 너무 어두워서 영상에 담기지는 않았다..(웨스트햄 홈구장에서 다시 한번 보게 된다). turnstile과 좁은 출입구의 콜라보로 진짜 요즘 성인들이 지나다니기에는 쉽지 않은 사이즈의 출입구가 되었는데, 축구를 보기 위해서라면 좁은 출입구쯤이야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다.


출입구를 지나면 비로소 크레이븐 코티지의 전경을 볼 수 있게 된다.

풀럼의 홈구장에서 가장 특이한 건 당시 기준 EPL에서 가장 오래된 스탠드와 가장 최근에 지어진 스탠드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22/23 시즌 승격팀으로써 EPL 경기장 규격을 충족시키지 못한 풀럼은 한쪽 스탠드를 최신 스탠드로 높게 증설하며, 나머지 반대쪽은 기존의 작은 나무의자 스탠드를 유지했는데, 이로 인해 이런 특이점이 나타난 것이다. 사진으로 보면 티가 안 나겠지만 나무의자는 진짜 목욕탕 의자 사이즈다...


누군가는 공사비용을 아끼기 위해 전통으로 포장한 것 아니냐! 라며 코웃음 치겠지만 전통을 지키며 돈도 아낄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현명한 방법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 클럽을 수년간 지탱해 온 팬들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고.


피치를 보고 나면 클럽하우스로 이동하는데, 이때부터는 젊은 직원분이 안내해 준다.

계단을 타고 VIP 접객 공간으로 이동하는데, 계단에서 뒤를 돌아보면 풀럼 부촌의 멀끔한 주택가가 우리를 반겨준다.

vip 룸은 진짜 깔끔했다(오래된 건물이라 작긴 했지만), 그 vip 룸 한편을 장식한 건 펠레의 축구화였다. 1973년 3월 12일 펠레의 산투스와 풀럼이 친선경기를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가졌고, 그때 신었던 축구화와 축구공, 그리고 잔디라고 한다. 밑에 있는 건 크레이븐 코티지를 지은 건축가와 그 사진이라고 한다. 크레이븐 코티지는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경기장이라는 역사가 있는 만큼,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이렇게 역사적인 소장품들과 그 역사를 깔끔하게 큐레이팅해 놓은 느낌이어서 매우 인상 깊었다.

vip 박스에서 본 전경

vip룸에서 나와 선수락커로 향할 때 선수락커 바로 뒤에 위치한 믹스드존 부속품? 도 볼 수 있었고, 락커룸에 걸린 현역 선수들의 유니폼도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들어가 본 선수 락커라 그런지 우와~ 했지만 이후 방문하게 되는 락커룸들을 생각하면 중간에서 살짝 아래정도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로피 진열장으로 향했다. 승격할 때 트로피가 중앙에 위치한 게 인상 깊었다. uefa 문양이 있는 트로피는 2002 인터 토토컵으로 기억한다. 트로피 진열장을 설명하며 가이드 분이 한 조크가 있는데


우리 트로피 진열장이 꽉 차있지는 않지만 걱정 마세요, 토트넘 장식장보다는 낫잖아요?


이 멘트는 진짜 영국 모든 팀 가이드들이 하는 개그였다(ㅋㅋ).

그렇게 투어가 끝난 뒤 미트로비치 유니폼을 하나 사서 리셉션에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크리스털 팰리스 쇼핑백도 받으러..)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한식당 프랜차이즈를 들리고 10분 정도 더 걸어가면 스탬퍼드 브리지가 있었기에,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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