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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요 Sep 29. 2022

재택근무로만 일이 돌아가요?

내가 이직을 결심하고 많은 기업을 만나면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디즈니에서 전 세계 전면 재택을 코로나 기간 내내 진행하고 있다고 하면 많이들 이렇게 물어본다. 재밌는 점은 이렇게 물어본 곳들이 한국 대기업이나 금융회사같이 보수적인 곳들이 아니라 강남에 있는 소위 잘 나간다는 스타트업들이란 말이다. "그렇게 전면 재택근무를 하면 일이 돌아가나요?"


그럼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전 세계 디즈니의 몇 만 명 직원이 전 세계에 다 뿔뿔이 흩어져서 모두 재택근무를 해도 일이 돌아가는데, 당신네 100-200명 회사가 한국에 다 같이 있으면서도 재택근무로 일이 안 돌아간다면 그건 당신 회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라고. 물론! 나는 이직 인터뷰 중이었으니 이렇게 얘기하진 않았다. 


나는 오히려 모두가 다 같이 재택을 하니까 일이 돌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재택을 하고 누구는 사무실을 나온다면, 사실 이렇게까지 효율적으로 재택근무에 최적화된 스타일로 업무 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 간혹 사람들이 나와서 같이 모여있다고 해도 미팅을 들어갈 때는 각자 자리에서 각자 자신의 카메라를 켜고 들어간다. 모두가 재택을 하는 상황이기에 그렇게 해야 내 목소리도 더 잘 들리고, 내가 얘기할 때 카메라에 내가 노출되어 다른 사람들도 더 편하게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재택 한다고 앉아 있는데, 상대방들은 회의실에 모여서 카메라 하나로 전체 회의실이 비치는 상황은 잘 들리지도, 잘 보이지도 않아서 매우 별로다. 


물론 전면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사무실에 나오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어르신들일수록 나오는 것을 선호하시고,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원룸에서 재택을 1년 넘게 하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나오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재택을 언제나 선호하지만, 사무실에 나가는 것의 장점도 있다 보니 섞어서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사무실에 있다 보면 더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거나 사회적으로도 가깝게 느껴지기 나름이다. 그래서 새로 온 직원들은 특히 1달 정도는 사무실 출근을 하는 게 업무파악이 훨씬 쉽다. 


재택근무를 하면 논다는 인식도 많다. 나는 이건 케바케라고 생각하는데, 그 원인은 회사에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조직에 fat이 많고 인력 당 업무가 많지 않으면 당연히 재택근무를 하면서 그게 드러난다. 업무가 많지 않고 보는 사람도 없고 쓸데없는 미팅도 없어지니, 놀게 되는 거다. 이러면 fat을 줄이거나 재택을 없애거나 해야 하는데, 사실 fat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조직도 많다. 반대로 업무가 많은 상태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출퇴근이나 휴식시간까지도 다 업무시간이 되어서 하루 종일 일에 매몰된다. 


그럼 애들 둘 키우는 집에서 엄마가 재택근무를 하려면 어디서 해야 하는가? 답은 '장소가 없어서 아무데서나 한다'이다. 애들 방을 주고 나면 나의 서재방이란 것은 만들 자리조차 없다. 따라서 나는 안방 침대 밑과 온장 사이의 작은 통로에 1인용 작은 책상을 하나 놓고 (그마저도 아이 컴퓨터 책상 용으로 샀다가 안 쓰게 된 것), 이제는 안 쓰는 아이 의자에 앉아서 재택근무를 한다. 별도의 모니터 스크린은 당연히 없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는 남편이 안방에서 자기 때문에 안방에서 나와서 식탁에서 일한다. 그마저도 안되면 거실에 아이들 간식 먹는 용 작은 테이블을 펼쳐놓고 바닥에 앉아서 일한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완벽 준비가 되어 있다. 


모기장을 친 침대와 옷장 사이 작은 공간에 놓인 1인용 책상. 옷장을 열려면 의자를 치워야 한다. 항상 먹을 것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100% 전면 출근을 하라고 하면 나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일이 많고, 밤낮없이 일한다고 해도 재택근무는 확실히 시간을 내가 더 컨트롤해서 사용 가능하다. 일 중간중간 아이들에게 숙제를 시켜놓고 나올 수도 있고, 점심을 빨리 먹고 아이와 동네 산책 한 바퀴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가 맡은 일을 내가 끝내 놓기만 하면 눈치 볼 일도 없다. 옷도 편하게 입고 (처음에는 상의라도 갖춰 입었으나, 지금은 언제나 티셔츠 차림), 화장도 열심히 안 해도 된다. 이런 flexibility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임을 이제는 뼈저리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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