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간밤에 비가 내린것 같은데, 오늘도 종일 흐리고 비가 흩날리는 날씨였다.
오늘이 막내 마지막 기말시험이라 온 가족이 출동했다. 우리가 동생을 후문에 내려주고 서촌을 간다고 하니, 큰 아이도 이대 친구를 만난다며 따라나섰다. 온 가족이 즐거운 드라이브를 하는 날이었는데, 길을 잘못
안내한다고 내비 탓을 하며 학교까지 갔다. 어제 남양주 카페에서 아내와 내년 돌파구를 찾아내 한시름
놓은 덕에 잠도 잘잤는데 말이다.
청하식당에서 부대찌개와 청국장을 맛있게 먹고, 우산이 없어 바로 옆 카페로 들어갔는데 분위기와 커피
맛이 일품이었다. 아내는 이렇게 여유 있게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브런치 글도 세 개나 밀렸다며 아내를 읽게 하고 좋아요 감수를 받았다. 비 때문인지, 근심이 사라져서인지 오늘따라 창밖 풍경이 멋지고, 음악소리도 아름답게 들려왔다. 사람 마음이 하루 상간에 이렇게 바뀔 수 있음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 다 그런지도 모른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이고, 내 정신과 건강마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 갇혀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만 같다.
카페에서 아내가 이어령 교수님이 말씀하신 "못 배운 티가 나는 사람의 특징 4가지"를 보여 주었다.
말을 함부로 하고, 자기 자랑만 하고, 남 탓을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왠지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은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했던 하루였다.
내가 화내고 걱정했던 모든 일들은, 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단 생각마저 들었다. 내비가 잘못 길을
안내했거나, 설령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을지라도, 그곳엔 또 다른 이유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가며 내 길이 아니라고 투덜댔지만, 동호대교를 건너며 아름다운 퇴근길 풍경들이 펼쳐져 보였다.
이왕 벌어진 상황들은 무조건 즐길 수 있어야, 행복하고 현명한 삶이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