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과 스타벅스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오늘은 아내와 남양주 삼패사거리에 있는 스타벅스에 다녀왔다.

오후 늦게 산책을 하자며 집을 나섰다가, 걷기가 추울 것 같아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무작정 나와, 스타벅스 쿠폰을 쓰면서 주차가 되고 주유도 싼 동네를 찾다가 그곳을 생각해 냈다.

한가할 줄 알았던 주차장이 꽉 차있어 당황했는데, 거짓말같이 뒷 차 한 대가 슬며시 빠져주었다.

기대 없이 올라간 이층 창가자리도 쓱 비면서, 노을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오전에 어머님 집에 가서 막 끓인 동지 팥죽을 가져다 아이들과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점심 때는 어머님이 주신 쌈을 싸서 먹자며 제육볶음을 하던 아내가 갑자기 어머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조금 전 할머니와 팥죽 감사 통화를 했던 큰 애까지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바람에 어머님 집을 또 가야 했다.

가면서 전화를 드렸더니 수육과 싱건지, 배추까지 챙겨 나오셨다. 우리 집 식탁 위에 차려진 김장김치,

총각무, 쌈, 삼치조림까지 모두 어머님이 주신 음식들이었다.


막내도 할머니를 오랜만에 본다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큰 애는 학교도 모시고 갔었고, 근처 과외를 갈 때

들러 할머니와 사진도 찍었던 것 같다. 날씨 풀리면 막내 대학도 구경시켜 드리자며 큰 딸과 의기투합했다.

내가 항상 할머니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해서인지, 아이들도 할머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사실 어머니의 끝없는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삼 형제 가정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나는 청소년기에 부모님께 큰 근심을 끼쳐 드린 죄가 있어 더 그렇다.


때마다 주시는 동지 팥죽 같은 어머님 사랑과 그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아내도 감사하다.

번거로워도 어머님과 시간을 보낸 날은, 뭔가 잘 풀리는 것 같고 알 수 없는 충만함이 있다.

석양이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어제와 다른 보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과 행복은 없다. 내 수고와 감사가 없다면 어떤 풍경과 음식도 소용이 없는지도 모른다.

멋진 여행을 짜보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의 스토리가 먼저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