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부부싸움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어제 아내와 막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우린 서촌으로 올 A+ 파티를 하러 간다는 핑계를 댔다.

그제 밤 12시경 막내가 쭈뼛대며 안방으로 오더니, 지금 막 성적이 올라왔다며 성적표를 보여줬다.

안방에 잘 오지 않던 내성적인 아이라 더 놀랐다.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건 알았지만, 매번 조금씩 아쉬워

했기에 더 기뻤던 것 같다. 어제 계절학기 수업을 시작하러 간다기에, 그냥 넘길 수 없다며 엄빠가 대신 파티를 하겠다고 따라나섰다.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를 학교 후문에 떨구고 서촌으로 향했다.


서촌 주차장들이 만차여서 북촌으로 차를 돌려 삼청동수제비집과 블루보틀 카페에 갔다.

그렇게 즐거운 하루를 보냈지만 늦은 밤 제법 큰 부부싸움을 했다. 아내가 금요예배를 마친 후 친한 집사님과

1시간 넘게 수다를 떨고 돌아왔다. 늦는다는 카톡을 보내 반갑게 아내를 맞았는데, 수다 내용이 문제였다.

교회에선 아무리 친해도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며 아내를 뭐라 했다. 아내는 너무 사람을 믿어, 남 얘기나 우리 비밀까지 빠짐없이 말하는 경우가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교회분들이 알면 안 될 들까지 다하면 어떡하냐며 크게 뭐라 했다. 마치 내가 아내 몰래 교회분께

내 책을 선물했을 때 아내가 나에게 하듯이 말이다. 그럴 때 아내는 정말 창피하다며 나에게 엄청 뭐라 한다.

우리 내밀한 가정사를 너무 깊게 남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민폐이자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내가 우리 가정의 치부들을 가감 없이 전부 사람들에게 말할 때 크게 당혹스러워한다.

남을 너무 의식하는 내 성향과, 타인을 너무 좋게 보는 아내 성향이 부딪히는 것이다.


다행히 오랜 부부싸움 데이터로, 진심으로 화를 냈지만 아내를 크게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아내는 내가 화를 낸 만큼만 방어를 하기 때문에, 나만 선을 넘지 않으면 그 이상 도발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주장이 확고하여 내 말을 수긍하지도 않는다. 데이터에 빨간불이 켜지면 아내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휴전 메시지를 보내면 되는 것이다. 지난번 책 사건 잡도리를 복수했다며 실없이 통쾌해하니, 바로

어이없어하며 받아주었다. 막내도 대견했지만, 어젯밤 우리 부부싸움 성적에도 A+을 주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