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과 생일변경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내 생일은 음력 3월 6일이다. 매년 4월 중순경에 했는데 올해는 4월 3일인 어제 케이크를 불었다.

오전 막내를 논현역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다, 주민등록상 양력 생일은 오늘이라는 대화를 아내와 나눴다.

그런데 딸아이가 아빠 생일이란 말로 듣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일 케이크를 사 왔다.

그 마음이 고마워 앞당겨서 생일 기념을 했다. 아내와 큰 딸까지 앞으로 양력 생일로 하라고 하기에, 따르기로 했다. 이렇게 졸지에 음력 생일이 양력으로 변경되었다.


결혼해서 10년 정도까지도 생일날 미역국을 안 끓여준다며 싸우던 기억들이 부끄럽게 남아있다.

왜 그땐 미역국이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졌는지.. 날 대접해 주지 않고 무시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깟 생일이 아무려면 어떤가. 그저 가족들이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일인데 말이다.

저녁 때는 처음 금요 예배를 갔다. 한 번도 예배를 강요하지 않던 아내가 오늘은 함께 갔으면 했다.

예수님 돌아가신 성금요일 성찬 예배라는 것이다. 고난주간 새벽 예배도 완주했기에 따라나섰다.


예수님은 고향사람들, 제자 베드로와 유다,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에게 철저히 무시, 배신, 외면당하셨다.

죄인 바야바를 선택하며 굴욕과 사망에 이르게 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모습이

그려졌다. 대접받으려는 모습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희생하고 섬기는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 생일은 가족들이 원하는 양력이 좋을 것 같고,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다.

못난 남편과 아빠일수록, 아내에게 대접받으려 하고 자녀들에게 군림하려 들 것이다.


막내의 착각으로 얼떨결에 시작한 양력 생일이 내년부터 내 생일이 될 것 같다.

내가 중요하다고 믿고 화내고 강요하던 모든 일들이 얼마나 하찮고 무의미한 것들인지 깨우쳐야 한다.

너무 사소한 내 주장과 감정으로 아내를 힘들게 하고 다투는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많아진다.

상대방 감정은 배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좋은 글이라며 카톡을 날리는 어르신들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열심히 성경말씀 나누고 묵상하는 제자훈련을 마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