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정말 오랜만에 수수카페에 다녀왔다. 예전엔 가끔씩 갔는데 새 건물이 들어 선 이후에는 거의 안 갔다.
뭔지 모르게 옛 감성이 사라진 것 같았다. 사람은 참 미묘한 느낌에 행동이 좌우되는 것 같다.
고난주간 새벽기도를 갔다 와 잠에서 깨어보니, 비 온 뒤라 미세먼지가 모처럼 좋았다.
이런 날은 카페 야외벤치에 앉아 봄 날을 만끽하고 싶었다. 적당한 곳을 찾다가 잊혔던 수수카페의 풍광이 떠올랐다. 몇 년 만에 가보니 더 넓어지고 옛 정취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새벽예배를 드려서인지 빚으로 사는 것 조차도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며 아내에게 어떠냐며 칭찬을 강요하다 면박을 들어야 했다.
아내는 항상 중심을 잡는다. 내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 너무 즐거워할 땐
살짝 맥을 빼기도 한다. 어쩌면 수수 카페가 아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과 편안함이 있고, 산과 강.. 요동치지 않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달려와 있었다. 다들 겨울 내내 야외에 앉을 날을 기다려 온 듯했다.
큰아이와 대학 입학 후에 와서 석양 사진을 찍던 추억들도 되살아 났다.
살짝 흐린 시원한 봄날을 즐기고, 오는 길에 기와집순두부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밍밍한 순두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그 담백함이 맛있게 느껴졌다.
수수 카페와 순두부집에서 더 만족할 수 있었던 건 새벽 예배 때문인 것도 같다.
아내에게 운길산역을 지나치며 말했다. 오늘따라 즐거운 건, 오늘 새벽 고난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아니면 새벽 기도 속에서 내 심령이 좀 더 겸손해진지도 모른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언제나 일상 위에 있지 않다. 일상이 깨진 고난 아래서 다시 평범을 회복할 때
느껴지는 것 같다.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겸손이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올림픽대로를 달려오다 보니 벚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수수한 아내와 벚꽃 구경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