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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삶는 온도 싸움

중년 백수 일기

by 일로

토요일 오전에 교회 집사님 아들 예식장을 가려고 준비를 하다 부부싸움을 하고 말았다.

매일 아침 내가 달걀을 삶는데 아내가 달걀 삶는 인덕션 온도를 7로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난 항상 8에 맞추고 8분 타이머를 해서 반숙을 만드는데 아내가 9에 맞혀져 있는 온도를 7로 해놓고 하는

말이었다. 너무 불이 세면 물만 줄어든다며 실수로 9로 해 놓은 것을 보고 잔소리를 한 것이었다.

순간 짜증이 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내 나름 노하우가 있는데 왜 또 잔소리를 하나

싶었다. 아내도 내 반응에 서운했는지 따져 묻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실랑이를 하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아내는 눈물까지 흘리다

못 가겠다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한참 언쟁을 하다 보니 이미 늦었고 눈도 부어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혼자 가라고 해서 더 화가 나기 시작했고 나 혼자 가겠다는 말을 뱉기 일보직전이었다.

순간 다음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혼자 운전을 하다 보면 더 화가 치밀 것이고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이렇게 작은 불씨가 화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아내에게 통사정을 하며 내 잘못을 인정하고 다짐을 한 후에 겨우 아내와 출발할 수 있었다.


또 한 번 절실히 느꼈다. 왜 나는 이토록 어리석은가?

이미 평상시 아내의 조언들조차 거슬려하다 보니 이 먼지 같은 말에 발끈한 것이었다.

7이면 어떻고 8이면 어떻다는 것인가? 아내의 나를 향한 사랑의 지저귐들이 왜 불편한지 모르겠다.

그래, 알았어.라고 하면 스쳐 지나갈 일들이다. 아직도 내 안에는 무언가 못난 마음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지 못하고 뭔가 불만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구로역에 있는 더링크 호텔 예식장에 갔다가 김포 현대아웃렛에 가다가 또 교육을 받아야 했다.

비가 와 차가 막히는데 네비를 보고 가다가 갈랫길에서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아내가 오른쪽 길이라고 하는 바람에 행주대교를 넘어가게 되어 도착시간이 20분이나 늘어나 버렸다. 또 짜증이 밀려와 아내 탓을 하며

투덜대니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급한 일도 없어 좀 늦게 가도 아무 문제없는데 왜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을

망치려 하냐는 것이었다. 차 막힐 때마다 아내에게 듣던 말이라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때마다 매번 같은 말을 들어도 들을 때뿐 내 천성은 왜 이렇게 바뀌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내 말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즐겁게 드라이브와 쇼핑을 마칠 수 있었다.

일상에 감사한다고 입으로만 떠들었지 내 맘 한구석에는 나도 모르는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불만의 씨앗들이 자라 큰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우리 마음은 열심히 돌아보지 않으면 온갖 풀들이

무성히 올라온다. 내가 누리는 모든 축복들은 당연한 것이 되어 무뎌지기 때문일 것이다.

주일 예배 말씀처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아내와의 언쟁은 내 불만의 뿌리들이 자라다 부딪히는 경고의 빨간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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