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사법 기관이 아닌 교육 기관

by 달려라토끼

오늘 출근길은 마음이 가벼웠다.

길도 막히지 않았고

미세먼지가 어느 정도 걷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햇빛이 반짝거리는 출근길이었다.

오늘 해야 할 일 다하면 브런치에 글이나 쓰고 그동안 미뤄뒀던 교실 정리나 해야지 했다.

브런치 글의 주제도 생각했었다. 직업인으로써의 교사의 윤리, 직업 의식 이런 도덕적인 내용들을 써 봐야지 했다.

그런데 웬걸,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었다.


6학년에서 발생한 일인데

여학생, 남학생이 SNS 온갖 말을 주고 받다가 여학생이 117에 신고하고 학부모도 알게 돼서 담임교사에게 학폭 사안 접수를 한 사안이다.

아이들이 주고 받은 SNS에는 정말 입에 담을 수 없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성추행 문장들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6학년 밖에 안 된 아이들이 이런 말을 쓰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상대방의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성적인 패드립이 가득한 문장들을 보니 정말 이건 그냥 둘 순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인사 잘하고 밝게 웃으며 신나게 친구들이랑 장난치는 그런 아이들인데

어쩜 저렇게 뒤에서 저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지.


애들 문제는 그렇고

이제 일은 우리 교사에게로 넘어왔다.


학폭 사안이 터지면

우선 담임 선생님이 해당 아이들에게서 사건 확인 상담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 사안 내용과 인적 사항을 학교폭력 담당자에게 넘겨주면

담당자는 학교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시스템에 이 내용을 접수한다.

그리고 관련 학생 학부모에게 모두 통보하고-이번 사안은 5명이 걸려있다-학생확인서, 학부모 확인서, 학폭 사안처리 안내문, 갈등조정 안내문, 분리의사 동의서, 학교폭력 2호조치 통보서를 전달한다.

그 후에 갈등이 중재 가능한지 조정프로그램 동의서를 받아 진행하고

전담조사관과 일정을 정해 조사를 받는다. 그리고 나서 가피해 관련학생 학부모가 학교폭력심의위원회 참여를 희망하는지 확인하고 보고서를 제출한다.


아이들 불러서 조사해야하고

학부모에게도 확인서 받야야 하고

분리를 원한다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분리할건지 전담기구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며

갈등조정이 진행되는 일정도 5명의 학부모와 통화하며 맞춰야 한다.

전담조사관이 들어오는 경우 전담조사관과의 일정도 확인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매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학교폭력 사안처리 요령 책장을 껴안고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야 한다.


우와,, 오늘 정신 하나도 없었다.


이 와중에 우리 옆반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그 반 학부모가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랑 싸운 일을 말하면서 학교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왔다.

하.. 오늘 무슨 날인가. 오늘 다들 이 화창한 봄날에 싸우고 그러는 걸까..

내일 아이들 등교하면 이야기 해보고 잘 지도하겠다. 학교에서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시느냐, 원하시면 학폭 사안 접수하시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된다고 전했다.


학교는 사법 기관이 아닌 교육 기관이다.

교사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상의 권한도 의무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학부모들은 교사가 엄청난 권한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본인 자녀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당당히 요구한다.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고 저 아이가 다시는 그러지 못해게 학교가 따끔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체벌을 할 수 없으며 언어 폭력, 정서적 학대 모두 불가하다. 우리는 교육기관에 속한 하나의 직업인일 뿐이다. 우리는 아이들과 상담하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밖에 알지 못한다.


퇴근을 한 나는 너덜너덜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 많이 소모되었고 불필요한 말들도 너무 많이 한 하루다.

이런 날은 퇴근하고 나면 멍하고 소파에 앉아 그냥 뻗어 버린다.


허공에 마구 주먹질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작가의 이전글매일 공문을 처리하고 다시 공문이 그만큼 쌓이던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