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 싫었다.
식구가 많은 우리는 항상 우산이 부족했다.
가장 집을 늦게 나서는 내가 가장 좋지 않은 우산을 차지하게 된다.
낡은 우산을 들고 가야 한다.
우산대가 부러졌거나 구멍이 난 우산을 들고 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비 오는 날이 싫었다.
차라리 수업 중간에 비가 내려서 비를 맞고 집에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내 가난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낡은 우산, 낡은 가방들이 창피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우산부터 샀다.
빨간 내 우산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비 오는 날이 좋았었다.
그깟 우산이 뭐라고.
그렇지만 나는 그깟이 아니었어.
내가 가진 유일한 새 물건이자, 순수한 내 거였다.
지금은 비가 와도 우산 없이 그냥 후드티 모자를 잘도 뒤집어쓴다.
그때는 소중했던 것들이 지금은 소중하지 않다.
현재의 나도 그렇겠지.
어떻게든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이게 뭐라고, 하며 콧방귀를 뀌겠지.
하지만 안다.
이것도 과정이라는 것을.
결국 이런 것이 삶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