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외로움이 불러온 폭식
한동안 계속 배가 고팠다. 예전보다 많이 움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지 모를 허기가 찾아왔다. “왜 자꾸 배가 고프지?”라고 말하면, 동료는 내게 “살찌려고 하는 거야”라는 무서운 말을 했다. 최근 들어 가장 공포스러운 말이었다.
매일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는데 계속 배가 고팠고, 결국 공포가 실현되어 나는 체중이 늘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무슨 호르몬이 나에게 작용한 것일까.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내 육체는 그 느낌을 충족시키기 위해 먹었다. 그래도 나는 건강을 중요시했기에 살이 찌지 않는 음식 또는 재료들을 택해서 그것들을 먹었다. 샐러드를 정말 양푼에 왕창 넣어서 만족감이 들 때까지 먹었다. 단단한 양배추를 와그작와그작 씹었고, 잘 가공되어 맛있는 닭가슴살을 먹으며 단백질을 공급했다. 샐러드 소스는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을 넣어서 칼로리를 최소한으로 해놓고 마구마구 먹었다. 샐러드를 질리도록 많이 먹었다.
턱이 아파서 더 이상 힘들어서 못 먹을 정도까지 샐러드를 먹었다.
나는 나에게 계속 찾아오는 허기와 싸우고 있었다.
이런 나의 신체적인 변화는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기보다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허기가 나를 감쌌다. 이런 변화에 나는 적잖이 놀랐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기에 운동도 열심히 했다. 운동까지 하지 않으면 여기서 더한 변화가 나를 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먹고 죄책감에 운동하고, 또 먹고 죄책감에 운동하고, 운동하니 배가 고프고 또 먹고, 죄책감에 운동하고, 이것을 반복했다. 어쩌면 운동을 많이 하니 건강해졌구나 생각했다. ‘건강해지려고 하나 봐’라고 애써 나를 진정시켰지만, 공포는 계속되었다.
나는 원인을 찾아야 했다. 왜 이런 걸까?
답은 외로움이었다.
스무 살 이후 독립을 하면서 외롭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물론 애인이 없는 시기에 애인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극심한 외로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혼자서도 잘 살았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독립적인 인간의 종이 있다면 그것이 나라고 믿었다. 대학교 때 한 동기는 “넌 정말 독립적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욕인가? (나를 돌려서 깐 건가?) 그녀가 어떤 의미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지는 몰라도 난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왜냐면 그것은 팩트, 즉 사실이니까. 방학에도 집에 내려가기보다는 룸메이트가 없는 집에 혼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토익공부를 하고, 독서모임을 다니는 그 활동들이 나는 더 좋았다. 부모님 집에 가면 한없이 나태함에 빠져버리는 나였기에, 좀 더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게 좋았다. 혼자 있을 때 그런 에너지가 더 채워졌다. 연애를 하다가도 혼자 있고 싶어 헤어질 정도였으니, 얼마나 내가 외로움을 모르고 살았는지 이 정도면 말 다했다.
그런데 외롭다. 이것은 진짜 외로움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건 찐이다.
찐 외로움이다.
어째서. 어째서 내게 외로움이 찾아왔는가?
그것은 울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직장이 바뀌면서 더 이상 퇴근하고 울지 않아도 되었고, 퇴근 후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슬프고 그런 감정이 이제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육체가 쓰러질 듯이 지치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했고 시간도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이런 게 찾아오니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나만의 시간이었는데, 이제 뭘 해야 하지? 이 차가운 집에서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적막함이 오감으로 느껴졌다.
공시 생활을 부모님 집에서 하다 보니 부모님과 오랜만에 같이 있는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기숙사에 살게 되었고, 방학 때 집에 와서 지내는 한두 달의 시간 외에는 부모님 집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17살 이후로 말이다. 그러다 25살에 다시 돌아와서 일 년 정도를 부모님과 함께 지냈다. 그때 느꼈다. 부모님이 주는, 고향이 주는, 그 정서적인 안정감. 걱정 없는 안도감, 모든 것을 수용해주는 따뜻한 안락함. 그 감정들을 느껴버렸다.
그리고 다시 독립된 삶을 위해 세상에 나온 나는 그와 반대되는 감정들을 이전보다 더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를 위해 저녁을 해주는 사람이 없고, 나말고는 퇴근하는 사람이 없고, 몸에 좋은 타우린 가득한 오징어를 잡아 귀찮게 뼈를 다 발라내어 오징어 회를 만들어줄 아빠가 없다. 집순이인 나에게 재잘거리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는 엄마가 없다. 새로운 집을 구하고 부모님과 함께 이사를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부모님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수련회 캠프파이어에서 부모님을 떠올리며 울컥하는 마음이랄까?
이 정서적 허기가 나를 그렇게 배고프게 했던 것이다. 퇴근하고 고요한 집에 있을 때 정서의 허기가 몰려왔다. 티브이를 틀어서 적당한 소음을 방안 가득 채우고 나름 알차게 저녁을 차렸지만 공기가 공허했다.
공기나 너무 차가웠다. 그런 공허함을 채워야 해서 내 뱃속을 채웠다. 내 위장을 채운다고 이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사람이란 게 원래 모순을 잘 믿는 이상한 종이니까. 비어있지도 않은 위를 강박적으로 꾹꾹 채워 넣었다. 점차 내가 컨트롤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느낌이 들자 나는 이것을 해결해야만 했다.
무슨 약을 먹어야 낫는지 난 알고 있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엄마와 아빠와 같이 밥을 먹는 것. 그것이 약이다.
하루 이틀 부모님 집에 내려가서 잘 먹고 잘 쉬면 그것이 나에게 약이었다. 연차를 내고 5시간을 걸려 집에 내려갔다. 엄마한테 재잘재잘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자주 안 한다고 서운해하는 아빠를 달래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보약을 한 사발 벌컥 들이키 듯. 배터리를 충전하듯 정서적 허기를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충전 가득 100퍼센트.
충전기가 가까이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그래도 충전을 해줄 수 있는 가족과 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때 이후로 더 이상 폭식하는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인정하는 게 어려워서 더욱더 폭식을 하려는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라도 하면 마치 무너져내려 버릴 것만 같아서일까? 약해져버릴까 봐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외로우면 외롭다고 친구에게 털어놓고, 아빠한테 전화를 했으면 되었을 텐데 왜 나는 굳이 그걸 안 하고 버티겠다고 혼자 용을 썼는지.
어느 날 소개팅을 한 남자와 이야기를 하다가 말로 한 방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남자가 나한테 그랬다. “진짜 강한 사람은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 굳건한 땅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나는 독립적이다. 마음이 단단하다. 멘탈이 강하다. 상처 받지 않는다. 외롭지 않다."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고 있었나 보다.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이미 약한 사람이었다.
난 또 뭐,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될 줄 알았지.
치매에 잘 걸리는 사람은 오히려 젊었을 때 똑똑하고 영특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치매에 걸릴 거라 생각하지 않고, 초기 증상이 와도 인지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점점 치매가 되어 간다고 한다. “나는 절대 치매에 걸리지 않아”라는 생각이 더 치매를 가속화한다. 외롭거나 마음 약해질 때는 나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병에 걸리지 않는다.
“맞아요. 솔직히 좀 외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