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차 수술실 신규 간호사 에세이
(수술실 간호사 4개월차에 '전국수술실간호사회' 컨퍼런스였나.. 무튼 1년에 한번하는 큰 행사가 있었고, 신규는 무조건 에세이를 내야한다고 하여 처음으로 완성된 에세이 한편을 썼었다. 그 때 처음으로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쓰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이 글로 상을 받게되었다. 맥북을 정리하다 발견한 이 에세이를 읽어보니 고쳐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지만, 그래도 이것은 신규간호사의 부끄럽지만 풋풋한 에세이니까 그대로 기록해두련다)
나에게 처음은 항상 설레고 긴장되는 순간이다. 처음 가는 소풍도 그렇고 처음 가는 고등학교, 처음 만나는 사람과 새로운 환경들이 그렇다. 나는 처음을 맞이하기 전에 머리에 몇 번씩 시뮬레이션을 그리기도 하고 가끔은 혼잣말을 하기도 하면서 그 전날 밤을 보내곤 하였다. 하지만 이번의 시작은 나에게 꽤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준비도 되지 않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가기 싫은 학원을 가는 마음이랄까. 그렇게 나는 수술실에 들어왔다.
입사 전 친구와의 여행에서도 여행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 “지옥 전 스페인”. 그렇다. 나는 지옥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여행을 갔고 나에게 병원은 지옥이었다. 제발 병동만 아니기를 하고 마음속으로 정말 많이 빌었다. 차마 입 밖으로 이 말을 꺼내면 왠지 괘씸해서 병동으로 가게 될까봐 입 밖으로 잘 꺼내지도 않았다. 왜 그렇지 않은가. 가위바위보는 하자고 하는 사람이 지고 공포영화에서도 호들갑 떠는 사람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니 나는 차라리 간절한 마음으로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낫겠다 라고 생각했다.
입사 첫날 간호부장님께서 내밀어준 봉투에 ‘OR 김00’이라고 써져있다. 아, 사람은 입을 잘 놀려야 한다. 그 날 집에 가면서 생각했다. 나에게 드디어 운이라는 것이 왔구나. 항상 난 운이 없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체육대회에서 내가 속한 팀이 한 번도 우승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청팀이던 백팀이던 항상 내 팀은 졌다. 2002년 월드컵에도 내가 축구를 보면 항상 이기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난 정말 많이 노력을 해야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랬던 나에게 운이 찾아왔다. 같이 입사한 친구들 모두 수술실을 지망으로 썼지만 내가 간택되었다. 이건 간택이다. 조선시대 왕실의 혼인 후보자를 뽑듯 내가 뽑혔다고 보면 된다. 옆에서 친구가 운다. 원하는 부서로 배정되지 않아 울고 있는 친구를 달래주면서 간사하게도 나는 속으로 그 울음 속에 내가 속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보다 나은 내 병원생활을 생각하며 조금은 기뻤다. 그런데 내가 너무 간사했나 보다.
입사 4개월을 지난 시점 내 기쁨은 거기서 끝이 났다. 수술실에서 일을 하는데 도무지 웃음이 나질 않는다.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가. 행복하지가 않다. 난 수술실에서 너무 서툴렀다. 맞다. 어찌 보면 서툰 것이 당연하다. 왜냐면 나는 신규니까. 가끔 선생님들이 나를 ‘아가’라고 부르거나 ‘애기’라고 부르신다. 나를 그렇게 부르시는 것에 동의한다. 절실히 동의한다. 가끔은 영원히 아가이고 싶다. 무언가를 하면 실수이고 심지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때에는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점점 진화론을 믿게 되었다. 내 신체구조와 역할이 상황에 맞게 바뀌어 가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귀는 언제부터 이렇게 안 들렸나 싶을 정도로 먹은듯하다. 나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내 귀나 서로 말은 공유하지 못하고 답답함만 공유한다. 답답함이라도 공유하니 다행이다. 빠른 속도로 답답함을 해결해줄 누군가를 찾게 되니. 또한 내 눈과 내 눈썹은 연인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과 눈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입으로 말을 못 하니 눈으로라도 말을 하게 되었는데 보통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뭐라고요?” 이거나 “죄송합니다”“설마 또 내가 잘못을..” 또는 “제발 나를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 이러한 말들이다. 달리기도 엄청 못하고 체력도 없어서 앉아서 책만 읽어도 팔이 저린 저질체력을 가진 나였으나 달리다가 걷기, 달리면서 주머니 속에 가위 찾기 등 다리와 팔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집에 가면 쓰러져버리는 체력을 소지하고 있다. 체력은 한순간에 늘지 않는다. 그래서 올림픽을 4년간 준비하나 보다. 또한 자취 5년째를 맞이한 나지만 빨래를 한 번도 털어서 널어본 적이 없었으나 여기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리넨을 털고 또 털고 무언가 없어지면 모든 것을 다 터는 털기의 덫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도 안 좋은 것은 빨리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고 대답부터 하는 것을 배웠다. 알아듣지도 못하고 생각도 없는데 무조건 ’네‘부터 나온다. 그래서 무지하게도 헤맨다. 역시 사람은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알면 뭐하나, 나는 자동반사적인 ’네‘라는 대답을 습관으로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커다란 문제들을 많이 가져오게 되었다. 혼나지 않기 위해서 우선 대답부터 하니 모르는 것은 쌓여가고 질문할 용기는 나지 않고 이러니 잘 할리도 없고 다시 혼나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점점 나는 위축되기 시작한다. 어깨는 언제부터 굽었는지 펴지지도 않고 안 그래도 처진 눈이 더 처져서 쳐진 입꼬리와 만나게 해 주려다 말았다. 수술을 시작하고 스크럽을 하게 되면 밖에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여러 지시를 내리시는데 절묘하게도 그때 교수가 나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게 된다. 또한 나는 그 전날에 보고 온 수술 과정을 생각하려고 하는 이 동시다발적인 상황이 오면 내 머리는 살기 위해서 방전 모드를 가동하는데 그 때면 사고도 정지, 몸도 정지, 한마디로 멘붕의 상황이 찾아오게 된다. 내가 알파고 또는 이세돌, 이 둘 중 하나라면 좋으련만 지시를 이행할 수도 없고 생각도 할 수도 없는 나는 그저 월세 사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아, 미안합니다. 나는 수술실이 안 맞나 봅니다. 맞지 않으면 떠나야지요'라는 생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울다 잠들고 아침에 부은 눈으로 출근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난 팀장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수술실이 맞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께서는 처음은 다 그렇다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며 나를 다독이시고 조언해주셨다. 힘들게 고민했던 시간들이 맥없어지게도 사실 나는 아주 빨리 설득되었다. 나에게 실망할 정도로 빠르게. 내가 이렇게 수용력이 좋았나 싶다. 그렇게 조언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 나는 다시 일을 하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난 이곳에서 수술실 간호사를 해야 하는가.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이유. 첫 번째, 수술에 참여하고 있지만 못할까 봐 너무 두렵고 재미가 없다. 두 번째, 일을 거의 12시간 정도 하고 집에 와서 수술 공부를 하니 몸이 너무 지치고 내 시간이 없다. 이 두 가지 이유가 가장 컸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행복하게 일하고 싶었다. 사람에 대한 이유는 거의 없었다. 상대적으로 우리 수술실 분위기는 좋았고 난 역시 인복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선생님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상황을 아시고 여러 선생님들께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아마 간호사라면 다들 보았을 SBS 다큐 <나는 어떻게 나쁜 간호사가 되었나>가 방송되었다. 나는 계속 생각하고 계속 고민하였다. 생각이 나를 지배할 만큼 여러 갈등과 고민이 나를 휘저었다. 이런 와중에 차지 선생님께서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아시고 수술이 많이 없는 날에는 오버타임 시간을 이용해 나를 빨리 퇴근시켜주시고는 하였다. 이럴 때면 나는 나의 '줏대 없음'에 굉장히 놀라게 되었다. 그렇게 징그럽게 울었던 날들이 믿어지지 않게 빨리 퇴근할 때면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빨리 퇴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나를 설득하고 있는 소름 끼치는 상황이 찾아온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 미치도록 공감되는 구절이다. 수술실 간호사는 내가 더 깊은 사고를 할 수도 없고 좀 더 나은 나로 성장할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다. 근데 나는 내 생각만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위인은 아니었나 보다. 어쩔 수 없는 배부른 돼지였을 뿐. 나에게 2시간의 편안함이 내 자아 찾기를 중단할 만큼 큰 위력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나란 인간의 간사함에 대해 실망하기도 했다. 그리곤 생각이 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정말 수술이 재미없는가.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뭐 그다지 4개월 동안 무슨 많은 수술을 해보았겠나. 또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수술이 재밌다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몸은 힘들지만 수술은 재밌어”라고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하니 수술이 재미없는 건지 수술실의 어려운 상황을 대면할 자신이 없던 건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개인 시간이 없다는 것은 주위를 살펴보니 일을 하면서 자기 시간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은 공평하면서도 꽤나 주관적인 것이어서 시간이 생기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술을 공부하는 지금의 내 시간은 어떻게 보면 미래의 시간을 벌어다 주는 투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는 경험이 필요하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은 아직 너무나도 작고 이야기가 없다. 이대로 사회에 다시 홀로 돌아간다면 내공이 없어서 금방 사그라 들것이 예상된다. 그리고 어디서 4개월 일하고 그만둔다는 신입직원을 이렇게 조언하고 달래주면서 잡아주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다시 힘을 내기로 하였다.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아야지.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열심히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내서 일해보자.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론적으로 난 수술실에서 계속 일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번의 내 경험을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게 되었다. 팀장님께 그만두고 싶다고 두 번이나 찾아간 것을 성급한 행동이라고 해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과정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고민이나 갈등 없이 수동적으로 살았을 것이다. 정답이 있는 삶은 없지만 자신의 삶에서 의미는 있어야 한다. 내가 사는 한 번뿐인 삶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내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이제야 조금 방향이 보인다. 나는 대학생활을 꽤나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학점관리도 잘했다. 스펙도 열심히 쌓았다. 공부에만 갇혀있기 싫어서 아르바이트로 꾸준히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책도 읽고 독서토론모임도 나갔다. 그런데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은 엄연히 다르더라. 나도 그랬지만 열심히 사는 대학생들은 아마 사회생활이라는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생활과 대학생활의 가장 큰 차이는 사회생활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요소가 더 많다는 것이다. 남을 컨트롤 할 수도 없고 나도 컨트롤할 수도 없다. 즉흥적으로 살지 않고 나처럼 계획적으로 살아왔다면 이러한 상황이 꽤나 당황스럽고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겪어야 할 일이다.
처음은 항상 어디를 가던지 존재한다. 처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 첫 시작을 어떻게 꾸려나가느냐에 많은 것이 달라진다.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이 어렵다. 나와 같은 많은 신규 간호사, 신입직원들은 다들 어렵다. "어렵지만 힘내고 버텨봐." 이런 말들은 전혀 아무런 힘도 없고 위로도 되지 않는다. 난 아직 경험과 경력, 이 모든 것들이 부족하기에 누구를 훈계하거나 위대한 진리를 전한다거나 어떻게 살아라 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가 않다. 그저 나처럼 이런 일을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겪을 사람들에게 "너만 그런 것은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부단히 경험하자고 전해주고 싶다. ‘아재’들은 옛날에는 이렇게 힘들었었어. 너희들은 편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재’ 시절의 청춘을 경험하지 못했듯, ‘아재’도 현재 우리 시대의 청춘이 아니기에 지금 우리가 겪는 고민들을 그저 편한 사치라고 폄하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꿈’이 없는 시대가 얼마나 불행한지 아재들은 모른다. "일요일 밤이 행복한가? 금요일 밤이 행복한가?"라고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우리는 금요일 밤이 좋다. 왜냐면 내일 쉬니까. 행복은 희망에 있다. 미래에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4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집에서 출근을 하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전히 뛰어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방향이 변했고 마음이 변했다. 내면이 변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미래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조금이나마 가늠이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경으로 앞으로도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힘든 상황이 찾아왔을 때 이전보다는 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거나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거나 처음은 찾아온다. 처음을 잘 이겨내려면 어떻게 하지?
김훈의 구절을 또 한 번 인용하자면
‘축복은 저 숨 막히는 무더위 속에 있었던 것임을 여름의 끝물에 한 입의 과일을 깨물면서 문득 알게 된다. 이 많은 과일들을 지상에 차려놓고 힘센 여름은 이제 물러가고 있다’
지금 이 무더위는 너무나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짜증이지만 무더위가 단 수박을 만든다고 하면 축복이라는 것. 서로 단 수박이 의미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무더위가 있어야 달아지고 그 무더위가 축복이라 하니 우리는 축복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넘실대자. 파도에 오르락내리락 넘실거리다 보면 축복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