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에포크 Feb 21. 2022

죽헌고택의 토스트

적당한 거리를 건넬 수 있는 고귀한 태도 

어제 남자 친구와 나는 안동으로 내려왔다. 일산에서 안동까지는 차를 타고 3시간 반 정도, 휴게소까지 생각하면 4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 7시에 출발했다. 갑자기 일찍 일어난 탓에 우리 둘 다 아침부터 멍한 채로 차를 탔다. 그렇게 한 시간을 달려 여주휴게소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었다. 휴게소에는 대문짝만 한 포스터에 반미 샌드위치와 베트남 커피가 걸려있었고 우리는 그걸로 아침을 해결했다. 오랜만에 먹는 반미 샌드위치였다. 며칠 전에 먹은 바게트 샌드위치랑 비슷했지만, 반미는 반미대로 맛이 있었다. 배를 채우고 커피를 들이켜자 정신이 좀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3시간 정도를 더 달려서 안동으로 내려왔다.

휴게소에서 산 반미샌드위치

 안동은 처음 온 도시였다. 안동하면 안동 하회마을이 자동적으로 떠올랐고, 우리는 바로 하회마을로 가서 구경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봄이나 가을에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회마을은 한옥, 흙길, 나무로 된 곳이었기에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진 마른나무들과 흙길을 따라 부른 찬바람만이 반겨줄 뿐이었다. 마치 죽어있는 옛고을을 구경하러 온 것만 같았다. 하회마을을 크게 한 바퀴 구경하고선 다시 주차장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생리를 시작한 지 둘째 날이었고, 둘째 날은 항상 가장 힘든 날이다. 이번에는 생리 전 증후군이 심하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언제나 둘째 날은 배가 무겁게 아파온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점심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이번 숙소는 평소와 달리 한옥으로 정했다. 우리는 여행을 갈 때면 호텔이나 펜션 같은 곳에서 잠을 잤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곳에서 자보자고 내가 제안한 것이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오래된 한옥 고택을 예약했다. 시내에서 20분 정도 차로 들어가야 있는 곳이었다. 숙소로 가는 길은 시골길이라 흔한 마트나 편의점도 없었다. 시골마을에 시골집들만 간간히 자리했다. 봉정사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가는 길마다 '봉정사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내비게이션과 함께 우리의 목적지로 인도했다. 돌멩이가 깔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짐을 내렸다. 높지 않은 담장에 작은 문이 있었고 그 문을 지나 본채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사장님이 계셨다. 4시부터 입실이었지만 4시에 딱 맞춰 손님이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인지, 빨리 온 우리를 보고 조금 놀란 듯했다. 인사를 하고 우리가 머물 방을 안내받았다. 오래된 고택은 'ㅁ'자 모양으로 된 전통한옥이었다. 나무로 된 현관문 안쪽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아궁이가 양쪽에 있었다. 우리 방 앞에도 아궁이가 있었는데 예전에는 땔감을 넣어 우리가 지낼 방을 뜨겁게 데웠을 것이다. 우리 방은 '엘리자베스 방'이라는 곳이었다. 예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안동에 와서 이 죽헌 고택을 구경하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방 이름이 '엘리자베스 방'이 되었다고 방 위에 아주 크게 쓰여있었다. 나무 창살과 한지로 된 문은 생각보다 작았다. 옛날 사람들은 어쩌자고 이렇게 문을 작게 만들었을까. 문을 좀 더 크게 만들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알 수는 없었다. 키가 작은 나는 몸을 조금 굽혀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보다 키가 한참은 더 큰 남자 친구는 조금 힘겨워보였다. 문을 들어오면서 내는 '어우'라는 소리가 나보다 좀 더 큰것을 보면. 방안에는 적당한 두께의 이불 두 세트가 가지런히 펴 놓아져 있었다. 바닥에 까는 두꺼운 이불과 그 위에 덮고 자는 상대적으로 얆은 이불 하나. 그리고 낮은 솜베게 하나. 이렇게 한 세트였고, 한평 조금 넘는 방에 두 세트의 이불이 양쪽에 자리했다. 우리 둘이 한쪽에 짐을 놓고 이불 위에 앉아서 방을 바라봤다. 이런 방은 처음이었다. 한지로 된 나무 창살문은 네모난 방 한쪽 벽면을 제외하고 세 벽면에 모두 하나씩 있었다. 4개의 면과 3개의 문이 있었다. 이렇게 작은 방에 문이 3개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그래서인지 작은방임에도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안락했다. 작고 소박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이 방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사람의 온기가 닿으면 새어나갈 틈 없이 벽면 가득 그 온기를 품어낼 수 있는 방이었다.

죽헌고택 이부자리

그러나 밤이 되자 이 온기는 한지를 뚫고 들어오는 냉기에는 견딜 수 없었다. 그날은 겨울 중에서도 바람이 세차게 부는 추운 겨울이었고, 불을 끄고 누웠지만 강한 바람이 나무 문과 부딪혀 끼익 소리를 냈다. 주기적으로 바람은 계속해서 이 오래된 고택에 밀려들어왔고 우리 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3개의 문틈으로 바람은 이때다 싶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 방으로 스며들어왔다. 안쪽에 있는 나와는 달리 바깥쪽에 누워있던 남자 친구는 웃풍이 들어 얇은 이불로 문틈을 막아보려 자주 일어났다. 그러나 자연으로 지어진 집이 자연과 만나는 일을 쉽게 막을 수는 없었다. 보일러와 라디에이터까지 틀고 솜이불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매번 침대에서만 자던 우리는 바닥에서 자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경험을 해보자고 이 숙소를 택했기에 이것 또한 '경험'이었다. 밖에 있던 아궁이를 때었나 싶을 정도로 바닥 보일러는 뜨끈 뜨근했고, 자려고 누우니 내 쪽은 불 바닥이었다. 바닥은 불 바닥이고 윗 공기는 웃풍이 들어 차가웠다. 나는 보일러가 좀 덜 들어오는 곳을 찾아 잠을 청했다. 우리는 밤새 잠을 뒤척이다 다시 자고를 반복했다. 이게 한옥의 묘미인가 싶었지만 날이 좀 풀릴 때 왔으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수 없었다. 그래도 추운 겨울에 웃풍이 드는 방은 더욱더 조선시대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다. 지금의 우리보다 더 추웠을 사람들. 아궁이에 불을 떼야만 방이 따뜻해지고 쉽게 온수를 구할 수도 없었던 사람들 말이다. 나는 그 방에서 그 사람들을 생각했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잘 정돈되고 튼튼한 기와집의 아낙네와, 바람을 막을 담장도 없는 초가집에 살았을 아낙네.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느 집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을까. 그냥 갑자기 그런생각이 들었다.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을 데리고 한 명은 포대기에 둘러업고, 한 손에는 먹을거리를 들고 이 집을 보면서 '저런 집에 살면 좋겠다'라고 부러움 가득한 눈길을 주며 봉정사를 올라가는 아낙네였을지. 곱게 한복을 입고 춥지 않게 동물의 털을 넣어 두툼한 겉옷을 걸쳐 입고 모자를 쓴 채 담장 안에서 봉정사를 찾는 아낙네들을 구경하는 귀한집 아씨였을지.

사장님이 주신 토스트와 커피

그렇게 추운 겨울 덕분에 한옥을 더 깊이 받아들이고 있을 때 사장님이 문을 두드렸다. 조식이었다. 자그마한 반상에 원두커피 두 잔과 치즈를 넣은 토스트, 그리고 사과를 먹기 좋게 잘 잘라서 꿀과 함께 주셨다. 아저씨 혼자 이곳을 운영하는 것 같았는데 자주 해보셨는지 사과도 예쁘게 잘 잘라서 주셨다. 따뜻한 커피는 진하지 않아 아침에 먹는데도 속이 쓰리지 않았고, 치즈토스트는 꿀에 찍어먹으니 꿀맛이었다. 토스트와 함께 먹는 사과도 달고 맛있었다. '조식제공'이라고 되어있지만 매번 대형마트에서 할인하는 식빵과 잼이나 버터가 부엌 한구석에 놓여있고 토스트기에 셀프로 해 먹어야만 하는 그런 게스트하우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저씨의 정성이 들어간 따뜻한 조식은 불 바닥과 차가운 웃풍이 곁들여진 밤을, 불편한 기억에서 여행에서 있을 법한 하나의 추억으로 순식간에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저씨는 이곳에서 여행자들을 맞으며 적당한 거리로 자신의 마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건넬 수 있는 사람 같았다. 한옥인만큼 안채의 마루에서 다 같이 조식을 먹도록 직사각형의 큰 밥상에 토스트와 사과를 투박하게 큰 접시에 마련해놓고, 손님들이 묵고 있는 방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저씨는 그렇게 손님을 대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용히 한옥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조식 한상을 내오시는 분이었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호스트의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분이었다. 아저씨의 배려는 우리가 묵고 있는 이 죽헌 고택을 더 고고하게 만들었고, 아저씨를 통해 이 고택을 지은 사람들로부터 아저씨까지 내려오는 그 대를 이은 사람들을 흐릿하게나마 만나볼 수 있었다. 

대를 전해 내려오는 이 고택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