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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Mar 06. 2022

나 지금 좀 행복한 것 같은데?

몰캉몰캉

"뭐지. 나 지금 좀 행복한 것 같은데?"

지금까지 나에게 행복이란 것은 잠시 찾아오는 것이었다. 누군가 " 언제 행복해?"라고 물으면 "나는 웃을  행복해. "라고 언제나 답했다. 나는 자주 웃었고 자주 행복했다. 중학교 때는  심하게 웃었다. 별거 아닌 것에도 숨이 넘어가라 웃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디폴트 표정은 '뚱한 표정'이었고, 선생님들은 내가 웃는 아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중학교  담임선생님은 내가 꽤나 슬픈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인  알았다. 갑자기 나를 교무실로 불러서 '긍정적인 '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가장  웃는 애가 누구지?"라고 아이들에게 물었을 , 아이들이 나를 지목했고, 선생님은 "어머, 그러니?"라고 놀란 표정을 나에게 숨기지 못했다. 나는  담임선생님이 놀랐는지 그때 당시는   없었지만, 머지않아   있었다. 언젠가 내가 집중할 때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거울에는  마리 '불독' 노려보고 있었, 맞다.  '불독' 나였다. 나는 깜짝 놀라 집중했던 미간의 긴장을 풀고 눈을   깜박여 내가 알던 나의 모습을 다시 거울에 비추어 보였다.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다. 적당히 모범생이었던 나는  수업시간마다 집중했고, 그렇게 나는  수업시간마다 '불독'  되었고, 선생님은 매번 아이들 사이의 '불독'같은  모습만 봤을 테니,  놀란 마음이 이해되었다. '불독' 웃는 것은 나도 상상이 되지 않으니.


나이가 갈수록 그 사람의 생활습관이 표정에 드러난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배에 복근이 생길 만큼 몸을 흔들어가며 웃어도 '웃상'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웃어야 '웃상'이 되는 건지. 나는 '웃상'인 아이들이 부러운 것은 둘째 치고, '불독상'으로 인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만은 바랬다. 대학교 시절에는 어떤 교수님은 내가 '불독상'이라는 이유로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수업시간은 집중해서 강의를 들어야지. 어떻게 계속 웃고 있으란 말인가. 심지어 그 교수님도 내가 볼  때는 '불독상' 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순한 '웃상'이라고 우리들에게 강조했다. 계속 웃으면 '웃상'이 될 수 있을 거라면서 우리에게 부단히 노력하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깨달았다. 50년 넘게 노력했으나 저분이 '불독상' 인거 보니 나는 틀려먹었군. 심지어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군. 흠. 나는 내가 '불독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여전히 무표정을 지을 때면 나는 '불독상'이지만 웃을 때면 불독이 어디 있었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바뀌었다. 그런 '선택적 반전 매력'을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친절해 보이고 싶을 때, 누군가를 좋아할 때, 호감을 가지고 있을 때 나는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저 무표정 하나만 지었을 뿐인데 그 누구도 '불독'에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단점만 있는 것은 역시 아니었다.


'까르르' 하고 더 이상 시도 때도 웃지 않아도 되는 성인이 되었을 때,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스무 살에도 나는 코드가 맞는 친구랑 있으면 너무 많이 웃어버렸다. 도서관에서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나서, 도저히 짐을 챙겨서 도서관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웃었다. 친구가 웃는 모습을 보고 웃고, 그런 상황이 웃겨서 또 웃고, 웃음을 참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또 웃고. 웃고 웃었다.


 다시 정정해서 성인이 되고 나서 몇 년 후에, 나는 웃지 않고 있어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행복이란 '잠시' 찾아오는 것이었다. 불붙는 간호학과 시험기간에 '바람 좀 쐴까?'하고 친구랑 나가서 허니브레드를 먹을 때 행복은 찾아왔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친구랑 밤마다 운동장을 열심히 걷고 뛰다가 누군가 "죠떡 먹을래?"하고 제안을 하면 당연하듯 "그래!" 하고 떡볶이를 먹으러 갈 때.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 찾아오는 작은 기쁨. 바로 그게 행복이었다. 열심히 일만 하다가 갑자기 훅 여행을 떠났을 때. 그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었다. 행복은 그렇게 고통 속에 짧게 찾아오는 기쁨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데, 고통 속도 아닌데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뭐야. 왜 행복한 건데. 이렇게 오랜 기간 행복하다니. 그동안 짧은 행복만 맛보았던 나에게 이렇게 긴 기간 동안 행복이 지속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마음이 계속 몰캉몰캉했다. 몰캉몰캉은 말 그대로 몰캉이 었다. 날카로운 각이 없는 물렁한 물체가 작은 포말을 그리며 첨벙첨범, 아니 참방참방하는 것 같은 몰캉한 느낌이었다. 이건 찐 행복이구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행복하다는 느낌은 이런 거구나. 꽤 괜찮은 휴식기를 보내고 있구나. 그러나 이렇게 느끼는 것을 말로 표현해도 될까. '내가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까?'라는 망설임이 한동안 잊고 먹지 않았던 영양제처럼 불쑥 머릿속에 떠올랐다.


 뭐랄까. 내 스스로 단죄하는 어떤 죄책감 같았다. 왜냐하면 나랑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은 여전히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 열심히. 매일 오랜 시간 동안. 그 몸과 마음의 지침을 알고 있기에 나는 나만 이렇게 행복을 느껴도 되는 건지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쁘게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려 꾸미는 것도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것도, 누군가 괜찮아졌냐고 물으면 '정말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게 내 행복을 드러내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나도 행복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유발해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게 될까 봐. 그런 걱정이 불현듯 내 행복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그런 걱정이 옆에 있어도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계속 밀려들어왔다. 걱정은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발 밑동을 잡고 있었지만, 나는 몇 번의 발길질이면 걱정의 손아귀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강력한 밀물에 의해 나는 발길질에 동력을 주어 걱정을 저만치 밀려나게 하고, 차라리 이 거센 밀물이 그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거센 행복이 그들에게도 "이게 뭐지? 나 행복한 것 같은데...?"라고
거부할 수 없게 몰캉몰캉 밀려들어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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