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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운 Feb 19. 2022

프랜차이즈 리퀄 시대

<스크림>, <텍사스전기톱학살>, <할로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판 <스크림>이 개봉했습니다. 우즈보로 마을에 고스트 페이스가 돌아온 것이지요. 이 작품은 1편과 거리를 두면서도 또 연결된 형식의 속편이라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리퀄'이라 소개합니다. 


    리퀄이라는 단어를 정의하자면 이렇지 싶습니다. (정확한 건 아니에요) 기존에 대한 전통을 이으면서도 또 전복적인 재해석을 시도하는 신작. 1편에 등장한 인물이나 요소 그리고 설정을 느슨하게 연결지으면서도 거리를 둔 새로운 이야기. 원작의 다음 내용을 만드는 시퀄이나 이전 내용을 다루는 오리진 혹은 프리퀄과도 다른 방식으로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방법.


    저는 이 리퀄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긴 합니다만, 의미있는 분류는 맞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2022년 판 <텍사스전기톱학살>도 비슷한 구성을 갖추었지요. 이 슬래셔 호러 시리즈 리퀄 붐의 시발점에는 2018년 판 <할로윈>이 있을 테고요.


    세 작품의 구조도 비슷합니다. 과거의 살육전은 신기한 옛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살인귀가 돌아와 새로운 주인공을 노리자, 원작의 주인공이 새로운 주인공을 도와 그를 물리치려고 한다는 점. 이전까지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에 무게가 더 실렸던 주인공들이 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재해석된다는 점. 같은 구조의 이야기에 각자의 프랜차이즈다운 스킨을 씌웠을 뿐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2022년 판 <스크림>이나 <텍사스전기톱학살>은 2018년 판 <할로윈>에 비하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뭐, <텍사스전기톱학살>은 논외로 두지요. 2022년 판 <텍사스전기톱학살>은 젠트리피케이션과 인종차별 그리고 총기난사 사건 등을 뒤엉켜 놓기만 하고 별다른 고민없이 그냥 끝내버린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얕은 편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최초에 갖고 있었던 미덕-이라고 표현한 것은 양해해주세요-은 21세기에 재현하기 어려운 무엇이니, 이렇게 나이브한 결과물이 나와도 딱히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아요. 


    반면 2022년 판 <스크림>이 근래 슬래셔 호러의 대세를 '리퀄'이라 정의내리며 그 흐름을 공식으로 입증하려는 자기 나름의 야심찬 시도에서 출발합니다만, 결과는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고 슬래셔 호러라는 장르를 원초적으로 재정립하는데 성공했던 1편에 대한 지루한 반복에 그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로 치면 '깨어난 포스'지 '라스트 제다이'는 못된 셈이라고나 할까요. 


    2022년 판 <스크림>의 내용을 투박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즈보로 마을에 다시 한 번 고스트 페이스가 나타납니다. 이 살인자는 한 여성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도망치고, 그 생존자의 이부언니가 생존자를 보살피러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이 이부언니는 <스크림> 1편의 고스트 페이스였던 빌리 루미스의 딸이었고, 새 고스트 페이스가 자기 자신을 무대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 사건을 일으켰음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빌리 루미스가 저지른 사건의 생존자였던 시드니 프레스콧과 게일 웨더스도 마을로 돌아와 과거에 겪은 사건에 대한 완전한 매듭을 짓고자 하지요.


    결국 이 작품은 자기들이 장면 하나를 할애하며 언급한 '리퀄' 공식에 부합하게 전개됩니다. 2018년 판 <할로윈>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관객이라면 2022년 판 <스크림>의 전개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질문 하나를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1996년 판 <스크림>부터가 1978판년 판 <할로윈>의 완벽한 리퀄이지 않았나요?" 라는 질문 말이지요. 


    1996년 판 <스크림>에서 시드니 프레스콧은 소위 '슬래셔 호러 영화 속 파이널걸' 공식을 체화한 동시에 전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있었던 살인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으며 자신을 덮쳐오는 살인마와의 싸움 속에서 대상화된 존재로 노출당하는 것을 넘어서 승리하는 것을 통해 그 트라우마를 극복했습니다. 이 승리는 앞으로의 '파이널걸'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투쟁적인 존재가 되도록 이끈 혁명이기도 했지요.

 

    2018년 판 <할로윈> 역시 1996년 판 <스크림>의 영향 하에 만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마치 1996년 판 <스크림>이 1978년 판 <할로윈>의 영향 하에 있었던 것처럼요. 로리 스트로드는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이자 복수자가 되었고 마이클 마이어스를 신봉하며 살인사건을 영화 소재다운 재미거리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마이클 마이어스에 의해 단죄받습니다. 로리 스트로드와 마이클 마이어스의 최종 결전 역시 1978년 판 <할로윈>을 완전히 뒤집어서 진행되고요.


    기존 <할로윈> 시리즈라고 로리 스트로드를 단순한 피해자로만 조명한 것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피해자와 생존자 사이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인식한 작품이 2018년 판 <할로윈>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이 1996년 판 <스크림>인 것도 명확합니다. (이 사이에 해당 장르에 대한 약간은 짓궂고 가끔은 한심하지만 상당히 유쾌한 변주인 <캐빈 인 더 우즈>도 넣을 수 있겠지요.)


    결국 2022년 판 <스크림>은 이미 1996년 판 <스크림>이 슬래셔 호러 장르 전반에 대한 '리퀄'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복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1996년 판 <스크림>의 미덕은 기존 공식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넘어 새로운 공식을 제시하고 장르 전반을 재구성하는 혁명적인 성취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제가 1996년 판 <스크림>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It's the millennium!"이었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고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지요. 하지만 2022년 판 <스크림>은 리퀄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지만, 바로 그점 때문에 결코 1996년 판 <스크림>의 리퀄이 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다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2022년 판 <스크림>의 주장대로 이제 프랜차이즈 시리즈는 리퀄 시대를 맞이한 것은 맞습니다. 기존에도 구작 프랜차이즈를 되살리고자 하는 움직임은 있었으니 이 호명이 호들갑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만, 넷플릭스가 이끈 OTT 서비스의 부흥도 이 리퀄 시대를 맞이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상황에 더 주목할 필요는 있겠지요. 컨텐츠 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기존 팬덤의 지갑이 두터워지자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다시 부활의 기회를 얻다 못해,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는 프랜차이즈에서조차 멀티버스에 뭐에 온갖 핑계를 대면서 과거의 영웅과 괴물들을 되살리고 있는 와중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고민할 것은 '무엇을 되살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되살리느냐', '왜 되살리느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넘어, 그 이야기가 현대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와 왜 다시 호출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야만 해요. 


    기존에 나온 훌륭한 '리퀄' 작품들이 이 고민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도 어떤 의미로는 리퀄의 형태를 띄고 있지요. 이 시퀄 시리즈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빼어난 문제제기를 하고 <나이브스 아웃>으로 단정된 해답을 맺어 멋진 결말로-<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논외로 치지요-마무리되었으니까요. 앞서 언급했던 2018년 판 <할로윈>도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할로윈 킬즈>에서 주춤했다는 평이지만 <할로윈 엔즈>를 기대할 차례고요. 2021년 판 <캔디맨>도 현대적이고 당사자성 있는 이야기로 뒤바뀐 리퀄도 언급하고 싶군요.


    결국 훌륭한 리퀄 작품에 요구되는 요소들은 훌륭한 작품에 요구되는 요소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비록 과거의 소재에서 출발하더라도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기존의 작품들을 그저 답습할 뿐이라는 것은, 굳이 프랜차이즈 작품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교훈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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