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수는 일종에 모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아. 너희는 예수를 모델 삼아서 삶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거라."라고 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기독교인 대다수가 어떤가요.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찬양 일색입니다.
스스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뭐가 아쉬워서 피조물의 찬양에 목말라하실까요?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흔히, 시편, 그중에서도 다윗이 쓴 시로 알려진 글들은 요즘말로 하면 손발이 오 그라들 정도의 아부성 글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알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부하의 아내에 눈이 팔려 부하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하고 그 아내를 취한 자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서 얻은 아이가 바로 솔로몬이죠.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왕으로써 하지 말라는 것만 죄다 했습니다.
그런 솔로몬은 더 이상 지혜의 왕이 아니죠.
하나님께 지혜를 받았으나 지혜롭지 않게 하나님이 주신 왕으로써 지켜야 할 것을 죄다 어겼으니 지혜의 왕이 아니라 어리석은 왕이죠.
뭘 어겼냐고요?
병거를 많이 두지 말라, 성곽 요새를 쌓지 말라, 여자를 많이 두지 말라...
죄다 어겼습니다.
행동으로 죄라는 죄는 다 지어놓고, 말과 글과 노래로 백날 하나님을 찬양해야 뭐 합니까.
그런 행태는 지금의 기독교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해놓고 행동은 믿음 없는 자만도 못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개차반도 이런 개차반이 없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신칭의'를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신칭의'에 대해서 자세하게 따로 언급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간단하게 서술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그게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제목이 아들 대학 합격하게 해 달라, 좋은 직장 갖게 해 달라, 결혼하게 해 달라, 월급 오르게 해 달라,
주식 오르게 해 달라...
이게 이 세상을 가득 마음에 둔 어리석은 자 아닐까요?
예수와는 거리가 먼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약자 편에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물질을 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약자 편에 서서 받는 핍박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가진 물질을 약자를 위해 쓸 수 있는 것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게 예수를 닮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입으로 시인하고 교회에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예수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내 행위와 상관없이 말이죠. 이게 요즘 기독교인들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이신칭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만날, 놀기만 하던 고3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 그를 서울대에 합격시켜줬습니다.
이게 행위와 상관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럼 그 고3 학생은 어찌해야 할까요?
변함없이 놀기만 하면 될까요?
아니면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삶의 태도를 고치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맞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받은 자격 없는 자에게 구원을 줬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구원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줬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과 설명입니다.
뭣도 모른 채 살며 죄짓다가 늙어 죽은 후 마지막 때에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할 이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 기회는 예수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양으로 바쳤기 때문에 생긴 기회입니다.
그런데 그냥 예수를 믿는다 말하고 교회에 다니면 끝까지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 비유로 말했듯, 일단 합격시켜줬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구원으로 가는 시작일 뿐, 완성과 끝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성경에서는 나중 믿는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믿은 자가 나중 된다는 구절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한 번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타락한 이는 다시는 구원이 없다는 말씀도 존재하는 것이죠.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 없는 우리가 예수의 희생으로 가까스로 구원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럼 기회를 잡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의 복음, 메시지대로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말로만 "잘못했습니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회개가 아니죠.
회개란 잘못된 것을 끊어내고 옳은 것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삶이 바뀌지 않은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입술로 시인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의 삶과 예수가 결단한 것을 보고 듣고 느낀 후에
그것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해서 회개하느냐입니다.
결국,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행위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행위가 없다면 그것은 열매 맺지 않은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제 말이나 주장이 아니라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말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지는 잘라서 불 사르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가지는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예수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나"입니다.
나, 당신은, 예수를 믿는다는 당신은...
회개가 행위로 나타났습니까?
아니라면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구원은 꿈도 꾸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