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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Jun 07. 2024

추구하되 갈구하지 말아라

그 무엇에도 매달리지 말아라(그림;liveboldandbloom.com)


 살다 보면, 아주 작은 것에 집착이 생기고, 아무 부질없는 것에도 미련이 생겨나고, 자기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성격의 일에도 쓸데없이 연연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마치 돌이나 바위에 이끼가 끼듯, 쇠붙이에 녹이 슬어가듯, 자기 집의 가구나 집기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가듯, 어쩌면 매우 자연스럽고도, 늘 발생하기 쉬운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집착이나 미련을 '일일신우일신'의 마음으로 잘 털어내지 못한다면, 자주자주 떨쳐내지 못한다면, 자기 생이 결코 편치 못할 것이며, 행복하지는 더더욱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 내면을 잘 성찰하여, 마치 이끼를 문지르고 떨어내듯, 녹을 깨끗이 제거하듯, 먼지를 툴툴 털어내듯, 자기 마음을 비워나가야 함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가 흔히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많이 하듯이, 다가올 앞일이 과연 어떻게 될지를 그 누구도 모르고, 지금의 최선이 반드시 미래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보장 또한 없다.

 물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미래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확률을 그만큼 높이기는 하겠지만, 반드시 당신이 원하는 바대로 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최선의 노력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 일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겠다.     


 그러니,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최선을 다해 도모하되, 그 어떤 것에도 집착이나 미련을 갖지 말고서, 그 결과에 대해서도 절대 연연할 필요가 없고, 설령 나중에 잘못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결코 그 어떤 낙담도 필요 없다.

 크게 보면, 세상은 늘 이렇게 잘되는 일과 못 되는 일이 어느 정도 발생할 ‘확률’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고, 아주 작은 확률의 일도 가끔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이고, 더군다나 나쁜 일이 벌어지는 그러한 확률은 심리적으로는 아주 크고, 잦고, 충격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러한 당연한 세상사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인정하여, 원하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해 그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것까지는 좋으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의 중간중간 결과물들, 진행 과정에서의 여러 사정이나 조건들 등에는 그 어떤 집작이나 미련도 결코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며, 더군다나 그 일의 최종 결과물에는 더더욱 그 어떠한 집착이나 미련이나 서운한 감정마저도 가질 필요가 없겠다.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수록 좋다.     


 다시 말해, 당장 내일의 일도 모르는 인간이 먼 미래를 감히 실제처럼 운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미래는 그냥 당신이 열심히 추구하는 것이니 만큼, 이를 결코 함부로 단언하거나 마치 결정론처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말이 되지를 않는다.

 결국, 자신의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아주 처절히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미래는 인간이 스스로 매일매일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결코 확정되어 있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니 말이다.

 미래를 바라보는 간절한 바람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차분히 기다리려는 마음이어야 하고, 그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좋든 나쁘든 흔쾌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럼 여기서, 그 무엇에도 최선으로 추구는 하되, 결코 갈구하여 연연하지는 않으며, 그래서 아주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 너무 집착하여 애쓰지는 말아라! (그림;.angi.com/articles/how-to-find-something-you-lost.htm)



 첫째, 제어 가능한 인자에만 집중하여라.     


 일단,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스스로 제어 가능한 인자와 제어가 불가능한 인자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좀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이 제어 가능한 인자에 대해서만 최선으로 추구해 나가고, 제어불가능한 인자에 대해서는 전혀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게 바로 그 어떤 집착이나 미련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일 것이니 말이다.     


 가령, 유사한 예를 한번 들어보면, 

 자신의 아주 소중한 자료가 담긴 USB를 그만 잃어버렸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일단은 자기가 잃어버리게 된 동선을 따라가며, 가능성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확인 및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일정한 시간 동안을 잘 찾아본 후에, 그래도 못 찾았다면, 그다음에는 그냥 과감히 잊어버려라.

더 이상의 찾는 일을 과감히 내려놓는 것이 좋다.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자꾸 미련과 집착의 마음으로 마구 갈구하고 매달리다 보면, 자기 소중한 마음만 마구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냥 잊어버리고자 하여도, 자기 마음이 그렇게 쉽게는 잘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구체적인 다음 행동에 얼른 돌입해 보아라.

 가령, 자기 마음을 과감히 내려놓았으니, 절대 더 이상 찾겠다는 욕심을 내지 말고, 잃어버린 사실 그 자체를 전제로 그다음에 해야 하는 행동에 집중해 보아라.

 이렇게, 다음 행동에 집중을 잘하면 할수록, 미련을 떨쳐내기가 더 용이할 것이다.     


 소중한 USB를 잃어버렸으나, 그 자료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자료가 자기 집이나 회사나 친구집 등의 컴퓨터나 노트북에 일부 보관되어 있을 수 있으니, 이를 모두 모아 보기도 하고, 이메일이나 카톡 등에도 자료를 주고받으면서 일부 남아있을 수 있으니, 이런 것들도 모조리 모아보아라.

 이렇게 하여 일단 피해를 최소화한 후, 그다음에는, 다음에 또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잘 강구해 보아야 한다.

 가령 한 달에 한번 USB를 외장하드나 타 컴퓨터 등에 백업해 놓는 방법이라든지, 인터넷 클라우드의 저장 기능을 적절히 활용해 보는 계획 등도 아주 유용할 수 있다. 

    

 이렇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자기 수고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실 당시의 실망감, 분노 등은 점차 완화되어 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나중에 그 USB를 다시 찾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손해 볼 일은 별로 없을 것이고, 오히려 이러한 자기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기가 잃어버린 자료를 최대한 복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머릿속에도 여러 지식이 좀 더 정리될 수 있고, 데이터의 이력이나 주요 내용도 좀 더 알게 되어 여러모로 유익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향후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은 발생하지 않도록 자기만의 팁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무슨 문제이든 간에, 자기 스스로 제어 가능한 부분에 집중하고, 절대 자기가 제어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을 뺏기지 않아서, 그 어떤 미련을 가지려는 마음도, 그 어떤 집착스런 마음도 없앨 수 있어야, 비로소 아주 편안해지고, 자기 자유로운 영혼을 계속해 유지해 나갈 수도 있겠다.     

 

 둘째, 결과를 속단하지 말아라.     


 우리가 자기 목표나 어떤 도전에 임할 때, 그 결과에는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냥 그 목표나 도전 자체에 최대한 집중해 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혹여, 김칫국을 먼저 마시듯, 어떤 결과에 너무 연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꾸 집착을 하게 되면, 자기 마음속에서 욕심, 조바심 등이 스멀스멀 올라와 그 결과에도 결코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자기만 먼저 그 무엇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면, 이런 조급한 마음이 결국 자기 앞길에 발목을 잡게 되어, 아주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격언 중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간이 결코 욕심을 내지 말고, 필요한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보통 ‘진인사’까지는 잘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하겠지만, ‘대천명’을 제대로 실천하는 자는 상당히 드물다고 하겠다.     


 즉,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도달하는 사람이 제법 있는 편인데, 이들마저도, 그 결과를 하늘에 제대로 맡길 줄 모르고, 감히 속단하거나, 미리 어떠어떠하다고 운운하는 경우가 많고, 더군다나 나중에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게 되면, 마구 실망을 하거나, 심지어는 매우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이 격언은, 어떤 일의 결과를 오롯이 하늘에 맡기라는 것이니, 그 결과가 설령 좋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실망해서도 안 되고, 결코 거부하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되며, 오직 아주 겸손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함이 그 참뜻일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이 있다.

 항상 좀 더 하여야 한다. 좀 더 접근하고 진행도 하여야 한다.

 즉, 정말 자기가 할 일을 빈틈없이 잘하였는지를 언제나 잘 체크해 보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되더라도, 대개는 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즉, 아직도 많이 부족한 데도 불구하고, 우물가에서 숭늉만 찾는 자가 아주 많다.   

  

 그러니, 항상 자신을 잘 성찰하여,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늘 잘 메꿔 나가려는 진정으로 낮고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마른 수건도 짜면 물이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잘 성찰해 보면, 자기가 아무리 완벽할 것이라고 느끼고 있더라고,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해도 해도 제법 더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항상 그만큼 많이 부족한 존재에 불과할 것이니 말이다.        

           

미래의 결과를 속단하여 말하지 말아라!(그림; .entrepreneur.com/leadership)



 셋째, 애틋하더라도, 참아줄 줄 알아라.       


 인간이 어떤 특정한 것에 지극해지고,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마 신의 본성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지극하지만 잘 참아줄 줄 알고,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하고, 조금 더 집착이나 미련을 갖지 않아서, 가급적 부담 없고 자유로운 생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가령, 어른 세대가 자식뻘이나 손자뻘 되는 그 누구에게도 아주 인자하고 지극한 마음(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거나, 어느 정도의 희생도 감수해 주려는 극진하고 지극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인류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신의 본성일 것이다.     

 또,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더 연민의 감정을 많이 가지게 되어, 무엇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감정이 발동하는 것 또한, 인간의 파국을 피하려는, 최대한 균형의 섭리를 이루려는, 그래서 결코 쉽게는 인간 세계의 종말을 원치 않는 신의 본성일 수 있다.     


 또한, 세상에 온갖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위선적인 사람, 혹세무신 하는 자 등이 함께 어울려 살게 한 것은 상대에 비추어 자신의 본모습을 성찰할 수 있게 하고, 다채로운 세상 모습을 잘 체험하게도 하여, 신이 제시한 고차원 방정식(생의 의미, 생의 가치, 삶과 죽음의 문제 등)을 한번 풀어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서, “존재 그 자체의 가치”가 대두된다.

 세상 만물이 모두 의미 있는 신의 뜻일 것이니, 인간이 좋고 나쁘다는 것을 평가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나쁜 것을 마구 파멸하라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존재의 가치, 그 자체를 잘 인정하여, 보다 열린 자세로 세상의 많은 것에 지극한 마음과 애틋한 마음을 지니는 자체는 매우 훌륭할 것이나, 그 존재를 너무 함부로 간섭하거나, 좌지우지하려 하거나, 너무 애틋하다 못해 마구 집착하려는 마음을 발동시키는 것은 아주 금물이라고 하겠다.  

 항상 그 무엇도 기다려줄 줄 알고,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아 줄 알고, 자기 개인적 마음을 참아줄 줄 알아야 진정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가 될 수 있겠고, 아마 스스로도 부담 없는 생을 누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신은 그 무엇도 당신에게 강제한 것이 없을 것이니, 스스로를 그 무엇에도 결코 옭아매거나 구속시키지 말아라.

 화려한 성공이나 그 어떤 대단한 것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말아라.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기획한 삶, 기꺼이 의도한 삶, 자신이 진정 정성을 기울인 삶 등이 중요한 것이지, 성공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일구어도 몽땅 여기에 두고 떠나야 하고, 때로는 그 재산을 잘못 분배하거나 처분하다가 자기 후세들에게 큰 화를 불러일으키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에 결코 욕심을 내지 말고, 자기 스스로의 생의 의미를 잘 찾아, 이를 잘 일구어나가는 과정 그 자체에 보다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또, 아무리 높은 지위를 얻었어도, 조금만 더 길게 보면, 그 지위 자체는 당신 이전에 수많은 선배들이 거쳐간 흔해빠진 지위일 것이다.

 단지, 당신이 그 지위에서의 자기만의 발자취와 소중한 업적, 아주 고유한 향취 등만이 중요할 것이다.  

   

 한편, 당신이 진정 주변에 도움을 주려거든, 그 방법적인 측면에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먼저, 간접적으로 행해 보아라.

 너무 직접적으로 도와주면,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되거나, 상대가 나태해 지기도 쉽다.

 그러니, 당신이 간접적인 자양분을 잘 만들어,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해 보아라.

 당신 혼자의 힘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거들랑, 사회적 구호 조직이나 구조 조직 등에 협조를 하는 방법도 있고, 언론이나 인터넷, 모바일 매체 등의 힘을 이용해 볼 수도 있다.      


 그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으로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다시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조차도 모르게 하는 방법을 한번 행해 보아라.

 즉, 자기가 도운 것을 결코 남이 모르게, 그 누구도 모르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요즘 너무 흔한 것이, 자신의 선행을 홍보하는 것이 당연하거나, 오히려 훌륭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SNS 등이 매우 발달하여, 실시간 자랑하고, 홍보하고, 내세우는 것이 일반화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이 그렇더라도, 잘 생각해 보면, 여전히 고금의 명언은 더욱 뼈저리게 통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오른손이 하는 선행을 결코 왼손조차도 모르게 행하게 되면, 자신의 행복감은 그만큼 극대화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경험하기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추구하되 갈구하지 말아라!(그림;liveboldandbloom.com/11/self-improvement/letting-go)


 넷째, 치우침을 바로잡아라.     


 서두에 어느 정도 언급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살아나가다 보면, 아주 작은 것에도 자주 집착이 생겨날 수 있고, 아무 부질없는 것에도 자주 미련이 생기는 등으로, 자기 마음속에 평정을 점차 잃어가고, 쓸데없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분야에도 쓸데없이 연연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균형된 삶’이 아주 중요하게 된다.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삶은 결국 ‘균형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여기서 ‘균형’이라 함은 그냥 한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 아주 자유로운 상태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어떠한 것으로부터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고, 딱 맞아서 아주 자유로울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여, 언제라도 그 간격을 더 좁혀 들어갈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더 멀어질 수도 있는 상태라고 하겠다.

 그러니, 언제나 그 선택이 아주 자유롭고, 마음은 가장 편할 수 있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겠다.     


 가령, 정신적으로 자식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서거나 심리적으로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 무엇인가를 요구하려는 마음이 커지게 되면,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또, 누구나 자기 재물 혹은 자리에 너무 욕심을 내거나, 너무 가까이 붙어서 집착을 하게 되면, 패가망신할 수 있음 또한 고금을 통해 이미 증명된 바이다.     


 또 다른 관점으로, 이렇게 치우쳐진 삶을 살게 되면, 대개는 그 누구와도 상당히 부딪히기 쉽게 된다.

 이렇게 그 어딘가에 치우쳐진 마음은 그 진실의 중심에서 이미 벗어나 한쪽으로 고착화된 상태나 다름없을 것이니, 사사건건 혹은 이 사람 저 사람과 마구 충돌하기가 상당히 쉬워진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언제나 치우치지 않아 자기만의 선(線)을 잘 지켜 나가고, 항상 균형된 생각과 행동을 가질 수 있어야만, 그 가까이 교류하는 누구도 불만을 가질 수 없을 것이고, 상대로 하여금 아주 공정하다는 느낌을 주게 되어, 결국 신뢰하는 마음을 보다 용이하게 갖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의 말과 행동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생겨나게 되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주변에서 많이들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니, 진행하려는 모든 일이 비교적 순조롭고, 부담이 없을 것이며, 실생활면에서도 대체로 매우 거리낌이 없을 수 있고, 마음도 아주 편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모두가 스스로 집착하려는 마음을 일일신우일신으로 잘 지워내어, 그 어디에도 결코 치우치지 않게 조절하여, 아주 균형된 마음을 지니게 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추구하되 매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물론 추구만 하여도, 여러 부분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이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갈구하여 매달리게 되면 될수록 더욱 크게 부딪힐 것이고, 그 결과, 상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이든 사심 없는 추구를 해 나간다면, 혹여 그러다가 어디에 부딪히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욕심스런 마음이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니, 바로바로 새로운 정리가 가능할 것이고, 상처 또한 그렇게 크지는 않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이러한 다소간의 부딪힘이 당신 생(生)에 아주 좋은 자양분이 되거나 효험 있는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욕심 없는 부딪힘을 통해 더욱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고, 여러 깨우침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매사 욕심 없고 부담이 없는 삶, 무엇인가를 적극 추구하되, 결코 갈구하여 연연하지 않는 삶, 진정 자기만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겸허하고도 낮은 마음, 그러나 아주 진실된 마음은 당신의 생을 더욱 가치롭게 빛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고, 더욱 진짜배기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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