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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May 31. 2024

가치로운 색을 입혀라

당신 생에 아주 가치로운 색을 입힐 수 있어라圖;geediting.com

   

“당신 말에 원하는 색을 입혀라

당신 표정에도 원하는 색을 입혀라.

당신 행동에도 원하는 색을 곱게 입혀라.

당신 생(生)에 아주 가치로운 색을 입힐 수 있어라.

그 색채가 아주 깊숙이 스며들게 하여라!”       


   

 우리 주변에는 지극히 평범하거나, 별로 가진 게 적어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아도, 유난히 멋져 보이고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

 이들은 분명, 아주 가치로운 색채(사람이 객관적으로 가진 것과는 무관하게 뿜어져 나오는 아주 멋지고 매력적인 풍모 혹은 품격)를 지닌 인물이라 하겠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자기 말에 늘 자신감이 있어 시원시원한 편이고, 얼굴빛이 밝으며, 행동도 매우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어서, 마치 그의 몸에서는 힘찬 기운과 맑은 향내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그 누구와 대화를 하더라도, 그 누구를 대응하더라도, 매우 난처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비교적 차분하고 멋지게 말을 건네고, 또 멋지게 받아넘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별 특별한 조건을 가지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지게 말하고 멋지게 행동할 수 있는 그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이들에게는 분명히 눈에 보이는 물적 조건이나, 객관적인 조건 외에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바로, 자기 깊숙한 곳으로부터 출발한 진정한 마음의 색깔과 향기(고요한 마음, 편안한 표정과 미소, 시원시원스러우면서도 정중한 자세와 행동, 잘 갖추어진 소통과 공감 능력 등)가 남들보다 탁월할 수 있다.      


 그럼, 이렇게 우리가 자기 말과 행동에, 자기 생(生) 전반에 아주 멋진 마음의 색깔과 향기를 보다 잘 입힐 수 있는 힘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것일까?     


 첫째는, ‘당당함’이다.     


 이러한 당당함은 스스로 세상을 엉터리로 살지 않으려는 의지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자기 나름의 생각이나 행동의 판단 기준, 관점 혹은 개인 철학 등을 어느 정도는 갖추어 지녀야 한다.

 또, 세상에 늘 고정되어 있거나 절대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나 개념들은 그 어디에도 결코 없을 것이니, 항상 겸손하게 자신의 판단 기준, 관점, 철학 등을 기꺼이 수정하고 바로잡으려 하기도 해야 한다.


“당신의 말, 표정, 행동에 아주 가치로운 색을 입힐 수 있어라!”(그림;geediting.com)



 당당함이 있음과 없음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소소한 예를 한번 들어보자.     


 부친이 작고하시어, 조문객을 받아 놓고, 그동안 어른의 동정에 대해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는 과정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해 보자.  

   

     “우리 어른은 최근 몇 년간, 하는 수 없이 요양원에서 생활하실 수밖에 없었어요!

       자녀들이 많기는 하지만, 모두들 먹고살기가 바쁜지라, 모두들 모실 처지가 못 되었거든요!”  

   

 이렇게 되면, 그 어른의 생전 생활은 “하는 수 없이, 요양원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딱한 처지”였던 것으로 되어버린다.     

 반면에,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결코 어둡지 않으면서, 비교적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어른은 최근 몇 년 동안, 요양원에 계셨어요!

      비교적 식사도 잘하셨고, 자식들이 번갈아 가며 찾아뵈어서 같이 외식도 즐기시고~ 그렇게 하셨어요. 

        ~~(이하 생략)~ ”     


 위의 말에서, 비록 특별한 반전 같은 것은 없더라도, 아주 진솔하고, 요양원에 모신 것을 부끄러워하는 느낌은 전혀 없다.

 이렇게 되면, 그 어른은 요양원에 계셨지만, 비교적 행복한 말년을 보내신 것이 된다.


 이러한 예에서도 보듯이,

 우리는 이와 유사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항상 후자가 될 수 있도록 자기 생을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이 대단히 필요하다.

 그러니, 평소에 실제로도 항상 모든 면에서 당당한 길을 걸어가야 하고, 그럼으로써 말이나 행동 또한 항상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래야만, 자기 생의 전반을, 결코 부끄럼 하나 없이, 결코 초라하거나 왜소하게 느끼는 경우는 더욱 없이, 아주 멋지고 당당하고 가치롭게 가꾸어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위의 작은 사례처럼, 자기 생(生)을 대하는 두 가지의 케이스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주 천양지차인 것이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식사 몇 번만 즐겁게 하여도, 조금만 더 당당하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어서도, 충분히 후차처럼 될 수 있는 것이겠다.  

    

 둘째, ‘자신감’과 ‘도전’이다.    

 

 사람이 매우 소극적이거나, 자신감이 없으면, 자기 목소리가 속으로 기어 들어가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자기주장에 힘이 실리지 못하여, 말 끝이 가라앉고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멋진 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실행력이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어떤 도전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 미래에 대해, 매사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불안감과 공포에 취약한 마음을 가지게 되니, 그 어디에도 도전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가령, 권투시합에 비유하자면, 다소 지나친 "아웃복서(상대 선수에 근접하여 시합을 펼치지 않고, 항상 빠른 발을 이용해 치고 빠지기를 잘하는 선수)"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아웃복서로 평가되는 선수들 중에서도 세계 챔피언(슈거 레이 레너드, 무하마드 알리, 플로이드 메이웨더 등)이 된 예는 제법 많지만, 이들은 주로 권투 기술상 혹은 작전상 아웃복서이지, 그 실질적인 내면을 들여다보면 완전한 아웃복서는 아니다.


 이들은 주로 계획적으로 아웃복서의 자세를 취하면서도, 자기에게 기회가 오게 되면, 대번에 인파이터적 성향(매우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그러하니, 세계 챔피언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들은 비교적 아웃복서였지만, 항상 자신감과 적극적인 도전 의식이 충만한 마음을 지닐 수 있었으므로, 결국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겠다.     


 만약, 스스로 자신감이 충만하다면, 자기 말에 힘이 실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말에 자신감과 힘이 실리게 되면, 표정이나 태도마저도 거리낌이 없어지고,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해질 것이며, 밝은 얼굴빛과 시원시원스러운 행동으로 모든 일을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과연 이렇게 자신감을 잘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일단은, 자기 내공을 충실히 갖추는 것이 좋다.

 남들보다 많이 알고, 많이 깨친다면 당연히 자신감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비록 내공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기가 진정 진솔하고 정직하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즉, 모든 소통에 있어서, 최대한 있는 사실(팩트)을 가지고, 정직하고 진솔한 판단에 근거하여 자기주장을 어필해 나간다면, 그 내공이 크든 작든 간에, 상대에게 결국은 통할 수밖에 없다.

 있는 사실을 가지고, 자기 마음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일관되게 말하는 자에게, 그 누가 과연 이이를 달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나중에는 결국, 모두들 지극히 공정하고 진솔한 그에게 크고 작은 ‘존경’을 표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지나치게 자기주장을 강조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항상 팩트를 가지고, 오히려 겸손한 주장을 잘해 나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낮은 목소리의 주장이라고 하여도, 아무리 매우 겸손해 보이는 주장이라고 하여도, 자신감이 없는 주장은 결코 아닐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더욱더 큰 힘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은 당장 쩌렁쩌렁하게 주변에 충격적으로 전해지지는 못하더라도, 나중에는 상대방 측의 주장과 객관적 균형이 잘 잡힌 목소리, 아주 공정한 목소리 그리고 매우 품격 있는 목소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하여, 매사 스스로 자신감이 매우 충만해졌다면, 그 어떤 일이든 기꺼이 도전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럼에 따라, 나중에 얻을 수 있는 결실도 그만큼 크고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스스로의 자신감에 기반한 확신을 가지고서 행한 도전일 것이니, 과연 그 결실이 하찮을 수 있겠는가?, 그 의미 또한 적을 수 있겠는가?     


 이게 바로, 결국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길 혹은 자기 생(生)에 아주 가치로운 색을 잘 입히고, 그 색채가 아주 깊숙이 스며들게 할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셋째, 쿨한 마음가짐이다.   

  

 ‘쿨한 성격’이라는 말은 보통, 국내외적으로도 “매우 시원시원하고 멋진 성격”을 의미한다.


 이른바,

     “사람이 자기가 몰두한 일에 열심히 도전을 하다가, 혹여 실패를 좀 하면 어떤가?,

       고민고민할 필요 없다. 세상 뭐 별 것 있느냐?,

       모두 다 괜찮다, 어쨌든 죽으란 법은 없을 것이니 말이야!”     


 이렇게, 항상 쿨한 스타일로, 그 어떤 어려움도 바로 툴툴 털어버리고, 또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얼마든지 다른 할 일이 많고, 기회도 많다고 생각하면 된다.

 항상 이런 식으로 편히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어차피 세상이라는 곳에는 ‘무조건 성공’이라는 개념은 없다.

 단지, 그것은 모두의 ‘희망 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그 어디에도 너무 성패나 결과에 신경 쓰지 말고, ‘쿨한 도전’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계속 집중해 나가면 된다.     


 이러한 쿨한 성격과 가장 대조되는 성격이 바로 우유부단한 성격,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성격, 구질구질한 성격, FOBO(결정 장애), 지질하고 쪼잔한 성격 등이다.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무엇하나 결정을 하는데도 매우 힘이 들며, 그래서 그 추진력 또한 매우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생에서 아주 반듯한 성공을 가져갈 수 있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일 수 있다.     


 한편, 쿨한 성격은 양보를 잘하는 성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상대의 그 어떤 간청에도 가급적 쿨하게 양보를 해 주고, 상대를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만약, 아주 첨예한 일일수록, 절대 내 고집부터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여 판단해 주고, 양보도 기꺼이 해 준다면, 상대도 당신의 마음 씀씀이를 아주 고맙게 생각해 줄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또, 내가 기꺼이 이렇게 양보하여야, 나도, 나중에 내가 필요한 경우, 상대에게 보다 강하게 어떤 양보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 요청의 말 또한 그만큼 힘이 실릴 수 있고, 아주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사람이 신중하다고 하여, 결코 쿨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신중’또한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매사 시행착오를 줄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성격이다.

  그러니, 이러한 쿨한 성격과 신중한 성격을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 혹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관계로 보는 것이 더 좋겠다.


 우리가, 가장 좋은 성격 스타일을 말하는 데 있어서, 비록 정답은 없겠으나, 일반적으로 보자면, 아래와 같이 말할 수도 있다.     


     “매사를 시원시원스럽게 판단하여 말하고, 다소 생각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진중히 잘 생각하여 하나를 너무 늦기 전에 잘 결정해 주고, 그 결정한 바에 대해서는 절대 미련을 갖지 않고, 최대한 계속 지켜주려 하고, 만약에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바로바로 쿨하게 인정하는 스타일”    

               

“말에는 언제나 신뢰를 담아라!”(그림; parade.com/989608/marynliles/confidence-quotes)



 넷째, 말의 신뢰이다.  

   

 자기 말에 ‘신뢰’를 실으려면, 일단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의 말에 토를 달거나, 말꼬리를 물지 말 것이며, 자신의 말이나 행동, 표정 등에도 상호 모순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즉, 설령 상대의 말에 문제가 좀 있더라도, 바로바로 그 말의 꼬리를 물어 말하지 말고, 결코 목소리도 높이지 말 것이며, 항상 차분히 상대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결국, 상대의 말을 존중해 주는 격이 되어, 그만큼 상대도 당신에게 마음을 열기가 매우 쉬워질 것이 아니겠는가?

 또, 항상 말이나 행동 등에 상호 모순이 없으면서, 시간적으로도 항상 일관되게 주장하고 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로 하여금 제대로 된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만약, 상대가 예의 없게 말을 하거나, 타당하지 않은 주장 혹은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을 한다고 하여, 당신이 바로 받아치게 되면, 아무리 당신의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다소 간의 모멸감 혹은 자존심 같은 것이 발동할 수가 있어서, 당신의 말을 더욱더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그러니, 상대의 그 어떠한 날 선 말에도, 바로 받아치지 말고, 차분히 그리고 가급적 낮은 목소리로 응대해 가며, 일단은 잘 받아들이고서, 차차 힘이 실린 목소리로 단계적으로 설득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고, 너무 직설적으로 대응하여 토를 달거나, 말꼬리를 바로 물게 되면,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게 되어, 대화의 의미가 없어질 수 있으며, 아무런 결과물도 만들어내기가 어렵게 된다.      


 또, 자기 생각을 너무 강하게 어필할 필요는 없겠으나, 항상 정확한 주장을 아주 명료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당신의 주장이 상대에게 설득력을 가질 것이며, 정확한 대답을 얻어낼 수도 있고, 보다 상승적인 대화와 결과물도 이끌어낼 수 있다.

 당신이 애써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면, 그 대화에서 가급적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건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말꼬리를 물지 않는 성격은 보다 ‘말의 핵심(목적)’에 집중하는 성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화 중, 상대의 크고 작은 약점이나 실수, 결례 등에 절대 집중하지 않고서, 항상 대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일종의 주목(attention)을 잘해 나감으로써, 대화의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너무 세세하게 상대의 말 하나하나에 그 어떠한 이이나 지적도 달지 않고서, 항상 상대에게 대승적 마음을 잘 전달하고, 대화의 핵심에 집중을 잘해 주어야, 상대도 당신의 마음속으로 기꺼이 들어오려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위선은 더욱더 멀리 해야 한다.

 겉으로는 착한 척, 도덕적인 척, 매우 훌륭한 척을 하면서, 뒤로는 엉뚱한 행동을 마구 하고 다닌다면, 이는 인격이나 인간성 자체에도 문제가 심각한 지경일 것이니 말이다.

 차라리 어떤 “~척”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덜 미웠을 것이고, 덜 배신감도 느꼈을 터인데, 그 “~척”를 그렇게 유난히 하는 바람에, 더욱 상대에게 상처와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항상 상대의 말을 존중하여 토를 달지 않고, 말꼬리를 물지 않으며, 항상 진지하게 상대를 인정해 주고, 자신의 말, 행동 등에도 그 어떤 모순이나 위선이 절대 없어야, 그리고 목적에 집중된 가지런한 마음을 잘 전해줄 수 있어야, 결국 신뢰라는 것이 생기게 되고, 매우 어려운 상대의 마음마저도 제대로 열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 매우 합리적이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너그럽고 희망적이기도 하여야 한다!”(그림; parade.com/989608/marynliles/confidence-quotes)



 다섯째, 합리적이면서도 너그러운 마음이다.     


 ‘합리성’은 우리의 소통과 공감 능력에 가장 기초가 될 수 있으며, 원활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합리성만 너무 강조하다 보면, 자기 말에 이성적인 부분이 매우 강해져, 같이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성적인 힘이 지나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너무 따지게 될 수 있으며, 서로의 소통이나 공감에 여러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자기 말은,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동시에 두루 너그러울 수 있어야 하겠다.

 이러한 너그러움은 감성적인 부분에서 상대와의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할 수 있게 하며, 무엇보다 대화의 결과가 서로에게 상당히 고무적일 수 있는 상승적인 소통이 될 수 있게 한다. 

 만약, 당신의 말이 매우 너그럽지 못하고, 세세하고 합리적인 내용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상대와의 사이에 무슨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는 마음이 커지게 되어, 대화 도중 점점 트러블을 만들어내고, 스트레스만을 가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말의 표현 또한 가급적 희망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 좋다.     

 우리가 상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매사가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사람이 있고, 반대로 아주 희망적인 사람이 있다.

 매사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사람은 대화를 이어나가면 이어나갈수록, 답답하고 침체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결국은 매우 우울한 느낌마저 들게 할 수 있다.     


 반면에, 설령 현재 어려운 일이 많더라도, 미래에는 이러이러한 가능성이 있고, 그 여러 가능성 중에 우리가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는 분야는 ~ ~ 분야라고 하면서, 현실과 희망을 대비시켜 주면서,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과의 대화에서는 삶에 대한 강한 긍정과 희망 가득한 색채를 느껴볼 수가 있어서, 내 삶의 기운과 의욕을 크게 키울 수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말하는 것이, 당연히 매우 합리적이어야 함을 아주 기본으로 해야 하고, 여기에 매사 까탈스럽지 않고 편안한 너그러움 또한 잘 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희망의 색채를 마치 배경색처럼, 마치 배경음악처럼 잘 깔 수 있어야, 비로소 보다 상승적 대화를 잘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고, 그 소통과 공감의 결과 또한 매우 훌륭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과연 이렇게 하여야, 당신의 말과 행동 등에, 당신의 소중한 생 전반에 아주 “가치로운 색채”를 잘 입힐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겠다.

 또, 그 색채가 당신의 내공 깊숙이 잘 스며들 수 있게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니,      


   ♡♡  가치로운 색을 입혀라  ♡♡


당신 말에 원하는 색을 한번 입혀 보아라.

그 색은 그저 치장을 위한 색이 아니어야 한다.

그저 보여주기를 위한 색은 더욱 아니어야 한다.

오로지 마음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가.

참을 수 없이 비치어 나오는 그러한 색감이어야 한다!     


당신 말에는 항상 향내가 묻어 있도록 하여라.

그 향내는 그저 그런 흔한 향기가 아니어야 한다.

결코 자극적이지 않고, 오래가는 향기이어야 한다.

오로지 마음 깊숙한 곳에 그윽하게 내재되어 있다가,

참을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그러한 향내이어야 한다!    

 

당신 말에 밝은 미소를 한번 담아보아라.

말의 품격에 걸맞은 미소를 한번 담아 보아라.

거짓 미소나 가식적인 미소는 절대 담지 말아라.

특히 어떤 의도가 있는 미소는 더욱더 담지 말아라.

상대의 마음을 아주 환하게 풀어주는 미소만을 담아라!     


당신 말에 걸맞은 표정을 보여 주어라.

당신 말에 걸맞은 눈빛을 잘 보여 주어라.

당신 말에 걸맞은 태도나 행동도 보여 주어라.

어정쩡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라.

확신에 찬 모습을 확신에 찬 어조로 잘 말해주어라!     


당신의 말에 멋진 소통을 담아보아라.

당신의 말에 멋진 공감도 잘 담아보아라.

상대에게 반듯한 마음으로 말을 건네고서,

아주 정중하게 대답도 한번 잘하여 보아라.

아주 멋지게 받아넘기기도 한번 잘해 보아라!  

   

당신의 생(生)을 아주 멋지게 채색해 보아라.

속을 감추거나 꾸미기 위한 색칠은 절대 안 된다.

혹여 거짓이나 위선을 위한 색칠은 더더욱 안 된다.

오직 당신 깊숙한 곳에 스며든 마음의 색이어야 한다.

그 깊숙한 곳의 색감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하여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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