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자기 주변의 여러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자칫 소홀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당신의 소중한 인적 네트웍을 위해서도, 마땅한 도리를 위해서도, 사실 당신이 상대하는 그 누구에게나 항상 존중의 마음을 잘 담아 귀하게 대해야 할 터인데, 혹여 그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어느 정도 챙겨서 대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서 매우 성의 없는 자세로, 매우 무감각한 상태로, 무표정 혹은 아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수 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순간순간 친절해 보이고, 상냥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수 있어도, 정말 존중의 마음을 잘 담아서 상대를 대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는 의미이다.
특히, 자기에게 특별한 의미나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은 상황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요청에도 대충 건성으로 대하거나, 심지어는 무관심 내지는 무시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오늘날,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모바일 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일수록, 그중에서도 대도시 지역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게 나타난다.
사실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과의 다양한 인적 관계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가족이 잘 되기 위해서도, 그 가족 구성원끼리의 긴밀한 관계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과연 있을 수 있겠는가?
어느 크고 작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그 성공을 위해서는 유능하고 믿을만한 인재의 등용과 인적 자산 관리부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는 편이다.
그야말로, 인적 네트웍은 모든 일의 시작이요 끝이기도 한 것이겠다.
“상대를 항상 존중하고, 마땅히 최고로 대해 주어라!”(그림;.conovercompany.com/teamwork-respecting-others)
삼성그룹이 여기까지 성장한 데는 고 이병철 회장이 ‘인재 제일주의 경영’을 표명하여 그룹 전면에 내세워 국내외 최고의 인재들을 두루 등용하였고, 그 인적 자산의 관리에 수십 년 이상 총력을 기울여 온 것이 아마 가장 핵심 중 핵심일 것이다.
오는 날 미국이 저렇게 잘 나가고 있는 것도, 과학, 경제, 문화, 국방, 스포츠 등을 포함한 각계의 세계적인 천재들이 대부분 그 최고의 무대로서,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나사(NASA)로,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로, 월가(Wall Street)로, 할리우드(Hollywood)로,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으로, NBA로, MLB 등으로 어제도 오늘도 끊임없이 세기의 천재들이 오늘도 몰려들고 있다.
우리에게 이렇게나 중요한 인적 네트웍을 과연 대충대충 대해서야 되겠는가?
항상 최선을 다해 상대를 대하고, 상대를 연구하고, 상대에게 구애하고, 상대를 존중하기도 하여야 마땅하겠다.
물론 혹자는 “혼자서도 잘 살기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완전히 혼자서 고립된 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가령, 아무리 독신 신봉자라고 하여도, 그 생활상을 잘 들여다보면,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대면, 비대면 혹은 웹상으로 타인을 대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과연 먹고 살 수도 없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도 없고, 이루고 싶은 일들을 가히 이룰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혼자 생활하기를 매우 즐기는 사람이라도 할지라도, 자기 인생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인적 네트웍이 더없이 중요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렇게 자기 주변을 둘러싼 인적 네트웍을 잘 관리하고 대부분의 타인들이 모두 자기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자신이 매우 행복해지고, 자기 생(生)의 뜻도 잘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오늘의 주제가 되는 “당신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을 두루 최고로(You're the best!) 대해주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 생활 주변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는 소소한 사례들을 몇 가지 도입해 보자.
첫째, 어느 이웃 간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서 가족끼리 먹기 위해, 가까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좀 여유 있는 수량으로 사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마침 집 앞에서 옆집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이웃 간 정을 생각하여 아이스크림 몇 개를 꺼내 주려 하였다.
그런데, 자기 손에 든 투명 비닐봉지 속에는 아이스크림이 천 원짜리부터 오천 원짜리까지 아주 다양하게 들어있었는데, 잠깐 머뭇거리다가는 이내 결심을 한 듯, 그중에서 가장 가격이 낮은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 몇 개를 꺼내 주었다.
물론 천 원짜리이더라도, 공짜로 주는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나, 여기에 생각을 조금만 더 보태보면, 기왕이면 가장 값비싼 오천 원짜리 몇 개를 꺼내주는 것이 얼마나 더 훌륭하겠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싼 천 원짜리를 꺼내어 주느냐, 가장 비싼 오천 원짜리를 꺼내어 주느냐의 문제는 그야말로 생각의 한 끝차이인 것이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생각의 차이가 아주 큰 선심(마음 씀씀이)의 차이를 불러오고, 이는 또, 돈으로는 가히 살 수 없는 엄청나고 굳건한 인적 네트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옆집 사람은 당신이 자기를 최고로 대하고 있는지, 그냥 그런 평범한 이웃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말로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금방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아이스크림 봉지가 투명 비닐봉지가 아니라 검은색 비닐봉지라고 하였더라도, 아마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당신의 표정에서, 몸짓에서, 말의 어조에서 당신의 마음이 충분히 배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 경우 만약 당신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오천 원짜리 고급 아이스크림을 몇 개 꺼내어 건네었다고 한다면, 그 이웃 사람은 그만큼 당신의 마음을 아주 높이 평가할 것이고, 매우 고마운 마음을 지니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조만간 그 답례를 하든 안 하든 간에 이런 문제는 별로 중요치 않으며, 중요한 것은 서로 간에 서서히 마음으로 맺어지는 사이, 결국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이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당신의 회사에 중요한 미팅을 하러 온 방문객에게, 회의 직전에 그냥 일반 종이컵에 흔한 봉지커피 한 잔을 타 주는 것이랑, 아주 근사한 잔에 멋지고 고급스런 향이 나는 커피를 한 잔 타서 대접하는 것은 그 느낌이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심리상, 전자처럼 종이컵에 봉지커피를 타 주었다면, 자신의 방문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줄 수밖에 없을 것이며, 후자의 경우처럼 아주 멋진 잔에 고급스런 커피를 타서 건네주었다면, 자신의 방문을 그 정도로 가치 있고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항상 손님은, 아무리 그 방문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손님이라고 할지라도, 아주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니, 항상 마음으로라도 버선발로 문밖에 나가 맞으려 하고, 차나 커피도 아주 정성 들여 대접하는 것이 당연히 마땅할 것이다.
꼭 값비싼 커피일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당신의 정성이 깃든 커피가 좋다.
필요시, 상대의 취향까지 고려한 커피라면 더욱 훌륭하겠다.
만약, 그 방문한 손님에 대해 여러 면에서 손님맞이가 매우 부족하고 소홀하여, 진행할 미팅 스케줄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도 없고, 손님을 앉혀놓고 한참 동안 자신의 딴 일이나 보고 있고, 정작 중요한 미팅은 대충대충 진행하려 한다면, 더군다나 나중에 그 손님이 돌아간 이후에는 또 다른 어떤 부탁할 일이 생겨, 전화를 붙잡고 무슨 사정을 마구 늘어놓으려 한다면, 그 자세가 마구 뒤죽박죽 되어버리고, 아주 엉망이 되어버리기 일쑤이다.
반대로, 별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질 수 없는 정도의 손님에게 마저도, 기꺼이 버선발로 맞으려 하고, 엉뚱한 곳에 한눈팔지도 않고, 그 손님과 자주 눈빛을 맞추어주는 등 두루 그 손님을 끝까지 최고 수준의 예우로서 대해 준다면, 그 미팅 내용도 매우 건설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당신에게 이모저모 도움이 많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경우라면, 나중에 혹여 무슨 부탁이 생기더라도, 얼마나 말하기가 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신의 부탁의 말소리가 아주 가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좌석'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동차를 탈 때나, 회의 시 앉을 좌석을 선택할 때도,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상석(일반적으로는 승용차는 운전석의 대각선 혹은 옆 좌석, 회의실에서는 앞줄 좌석 혹은 편한 의자가 배치된 좌석 등을 일컬음)에 먼저 냉큼 앉지 말고, 가급적 주위에 양보하려 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진정 선후배나 동료들을 항상 최고로 대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가급적 상석 혹은 좋은 자리는 양보하여라.
항상 다소 낮은 자리를 기꺼이 선택할 수 있어라.
만약, 특별한 목적이 있거나 혹은 상대방이 극구 당신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자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한은 그냥 낮은 자리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해 보아라.
이렇게 되면, 아마 당신이 앉은 그 자리는 가장 편한 자리 혹은 당신 마음의 여유를 그득 안겨주는 자리가 되어줄 것이다.
과연, 기꺼이 후배들에게까지도 자리를 양보한 당신에게 그 어떤 부담도, 그 어떤 불안 같은 것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즉, 당신이 흔쾌히 양보를 한 만큼, 아마 그 자리는 당신에게 아무런 ‘좌불안석’도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당신만의 최고의 자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자동차의 좌석이든, 회의장의 좌석이든, 회식 자리의 좌석이든, 다른 어떤 행사의 좌석이든 간에 당신이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애쓰거나, 조금이라도 더 윗자리에 먼저 않으려 하거나, 심지어는 남이 먼저 앉아있는 자리를 뺏으려 한다면, 그 자리는 아주 ‘좌불안석’ 혹은 ‘가시방석’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보통 윗사람이 많이 앉는 상석을 차지하려 하거나, 자리 차지에 욕심이나 고집을 부린다면, 이는 아주 꼴불견 혹은 거만함에 다름 아니겠다.
“아랫사람에게도 항상 존중하고, 최고로 대하여라!”(그림;.morningcoach.com/blog/respect-other-people)
넷째, 엘리베이터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신이 도심지 고층 사무실에 근무하는 한 직장인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늘 엘리베이터 이용 시, 당신 보다 후배들에게마저도, 마치 선배 직장인들을 대하듯, 항상 양보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가령, 다소 먼 거리에서 뒤따라 이용하려는 후배를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잠시 잡고서, 결코 당신에게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주어 같이 탈 수 있게 배려를 해 준다든지, 매우 복잡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다소 바빠 보이는 후배를 위해 먼저 탈 수 있게 기꺼이 양보를 해 준다든지 하게 되면, 과연 그 후배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마 당신이 많이 배려한 만큼, 그들은 매우 고마워할 것이고, 당신의 인격을 존경해 마지않을 가능성이 크다.
즉, 당신은 그들이 비록 후배이지만, 존중의 마음으로 대한 것이니 만큼, 마치 회사의 경영진을 대하듯 한 것이니 만큼, 그들 또한 당신에 대한 느낌이 매우 특별할 것이 확실치 않겠는가?
마치 윗사람에게나 하기 쉬운 그러한 행동을 스스로 과감하게 보여준다면, 후배들은 당신을 굉장히 마음이 넓고, 그야말로 ‘큰 인물’로도 보아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후배들이 꼭 그렇게 당신의 배려하는 인격을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당신은 후배들에게 그만큼 진심으로 손을 내밀었고, 어러 모로 배려를 하였고, 매우 자상하게 대해 주는 등 최선을 다하였으므로, 이미 스스로 매우 만족할만한 일을 해낸 것이다.
당신 스스로 아주 뿌듯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당신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문제는 오로지 후배들의 몫인 것이다.
당신이 애초부터 그 무엇인가를 바라서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지 않은가?
다섯째, 파트너와 식사 자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신이 업무상 혹은 사적 관계상 어떤 파트너, 지인 등을 만나, 같이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만약, 당신이 지불할 상황이라면, 과연 당신은 얼마짜리의 점심을 대접할 것인가?
물론 여기에도 정답은 없다.
단, 당신이 그 파트너를 아주 소중한 인물로서, 최고의 인물로서 대하려 한다면, 가급적 그만큼 신경을 좀 써주는 것이 좋다.
당신의 호주머니 사정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려 하고, 무엇보다 그 파트너가 좋아할 만한 그러한 식당, 그러한 자리, 그러한 분위기를 잘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과연 이렇게 배려하는 당신의 마음, 그 사람을 최고로 대하려는 당신의 마음은 알게 모르게 모두 그 파트너에게 전해지게 마련이다.
마치 텔레파시로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절대 얼렁뚱땅 점심 한 그릇 때우고 보내려 하지 말고,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식사하고 그냥 돌려보내려 하지는 더욱 말고서, 그와 함께 소중한 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좋다.
어차피 그 점심을 위해, 똑같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면, 보다 멋지고, 보다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좋은 것이지, 대충대충, 마치 의무방어전이라도 치르듯, 그렇게 보내는 것은 참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상대가 지불할 상황이라면, 절대 오버하지 말아라.
가급적 상대 파트너의 부담을 줄여주도록 하여라.
즉, 가급적 금액 부담이 적은 수수한 것으로 선택하고, 그 만남의 내용에만 충실하여라.
자기 핸드폰을 오래 사용하며 소통에 소홀해지지 말고, 엉뚱한 것에 한눈을 팔지는 더더욱 말고서, 서로 간의 대화에 집중하고, 그 만남의 자리를 끝까지 소중하게 생각해 주어라.
마치 ‘투자의 천재’ 워런 버핏과의 식사 자리(약 200억 이상 지불해야 함)라도 된 듯 말이다.
여섯째, 회사 대표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회사의 대표가 직원들 중 학업에 뜻이 있는 몇몇을 선발하여, 대학원에 보내주었고, 그들은 여기에 열심히 부응하여 석사학위 혹은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또한, 학위 취득 후에는, 마치 대표에게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더욱 그 회사 내 큰 일을 해 내었고, 많은 공적도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 중 일부가 별도로 독립하여 자기 모태 회사보다 훨씬 더 크고 대단한 회사의 창업주가 되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아마 대부분의 대표는 이를 매우 기뻐할 것이며, 자기가 스스로 키워낸 인재가 자기 모태 회사보다 훨씬 더 큰 회사를 만들어 내었고, 또 크게 성공한 데 대해, 평생 잊지 못할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할 것이다.
만약, 이를 시기하거나 질시하는 밴댕이 속을 가진 대표라면, 정말 아주 소인배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
어쨌든 그들은 신입직원 시절에 자기들이 모시던 회사의 대표의 큰 베풂으로 인하여, 일생일대의 큰 전환기를 맞게 되었고, 크게 성공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대표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과거 자기를 키워준 그 모태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항상 호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서로 상생하는 큰 (기업)그룹단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대가를 고려하지 않고, 항상 직원들을 최고의 파트너로 대하려는 대표의 순수한 마음은 때로 아주 감동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이는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간에, 자기 평생의 가장 큰 업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고, 평생 가슴 벅찬 소중한 경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직원들을 두루 최고로 대하려는 대표의 마음!”(그림;resources.workable.com/tutorial)
일곱째, 변함없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회사에서 큰 실수를 하여, 쫓겨난 동료가 있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아마 이럴 경우, 많은 동료들이나 직장 선후배들이 그 발길을 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앞으로 자기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아주 작은 계산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도시 지역의 인심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끝까지 그 쫓겨난 동료에게 위로를 잘해주고, 재취업도 도와주는 등,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지원해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동료는 아마,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먹고살기조차 막막할 때, 그것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서, 그냥 도와준 당신을 평생을 통해 고마운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 세월은 흐르고 흘러, 인생이라는 것은 마치 '새옹지마'와도 같아서,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는 또 음지가 될 수 있다.
이제 그 동료가 크게 성공하여 당신 앞에 나타났다.
당신은 과연 그를 질투할 것인가?, 아니면 크게 기뻐할 것인가?
당연히 당신은 매우 큰 기쁨을 감출 수 없어할 것이다.
동료가 어려웠던 당시에, 당신이 그를 모르는 채 하였다면 몰라도 말이다.
당신이, 당시 아주 딱한 처지에 있던 그를 위하여, 항상 변함없는 존재가 기꺼이 되어주었고, 별 이유 없이 최고인양 대해 주었는데, 그 동료는 당신의 그러한 큰 베풂에 힘을 얻어, 나중에 결국은 그렇게 크게 재기에 성공하였으니, 이 얼마나 모두에게 기쁜 일인가?
당신은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여기서, 과거 당신이 그 동료에게 건넨 도움의 대가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예 당신이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매우 딱한 처지에 있던 그 동료에게 끝까지 변함없었던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과거, 추사, 김정희는 자신이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던 제주도 유배시설에, 주변의 날 선 시선과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끝까지 돌보아준 친구 같은 제자, 이상적에게 너무나 큰 고마움을 느꼈고, 그 우정에 감복한 산물이 바로 그 유명한 ‘세한도’이다.
이상적은 그 세한도와 감사의 서찰을 건네받고서,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고 또 최고로 대해주는 추사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장문의 답글까지 써 올린 바 있다.
그리고, 선물로 받은 그 세한도를 청나라 북경으로 가져가서, 무려 16명에 달하는 청나라 최고의 문인들로부터 송시와 찬문을 다투어 받았으며, 이것을 모두 모아 10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로 엮어, 유배지에 있는 스승에게 다시 돌려보냈는데, 이게 바로 국보, ‘세한도’인 것이다.
지금까지, 위에서 주변 사람들을 두루 최고로 대해야 하는 이유와 그 사례들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았는데, 여기에도 분명히 주의할 점이 좀 있다.
그 첫 번째 주의점으로, 위의 여러 사례에서 어느 정도 짐작은 되었겠지만, 당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두루 최고로 대했던 이유가 무슨 대가를 바라고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면, 이러한 행위는 당신의 좋은 의도를 크게 퇴색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당신이 크게 무엇을 바라서 그렇게 상대를 두루 최고로 대해주고, 두루 베풀어 주고자 했다면, 이는 그 목적이 해결되면 금방 없어져 버리게 되는 ‘일과성 행위’에 그칠 수 있다.
그러한 계산적인 당신의 마음을 상대가 과연 왜 못 느끼겠는가?
아마 한 두어 번 겪어보면, 금방 알아차리고, 곧바로 느끼게도 될 것이다.
오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말 상대를 존중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그렇게 상대를 최고로 대해주고, 그래서 항상 베풀려고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당신의 인적 네트웍을 두루 넓혀라!”(그림;smallbiztrends.com/measuring-employee-happiness)
두 번째 주의점으로, 항상 상대를 최고로 대해주고, 선심을 베풀어 주려는 당신의 마음이 혹여 당신의 자랑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 또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의 사례 중에서도, 이웃을 위해 비싼 아이스크림을 제공한 선심의 경우에도,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비싼 점심을 낸 경우에도, 이러한 당신의 행동이 당신의 돈자랑 혹은 가오(폼)를 위한 행위였다고 한다면, 과연 별 의미가 클 수는 없겠다.
그러한 돈자랑 혹은 가오 역시 진심이 아주 결여된 상태이므로, 당신의 소중한 인적 네트웍을 지속해 유지하고, 상승적으로 이끌기에는 점차 역부족일 수 있다.
항상 진심만이 진정한 친구를 얻고, 아주 소중한 인적 네크웍도 얻을 수도 있는 것이겠다.
가령, 요즘 우리 주변에는 각종 여러 기부 행사나, 여러 사회적 선한 행사를 행할 때, 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은 별로이고, 어떻게 하면 사진 몇 장을 더 찍고, 어떻게 하면 더 홍보를 잘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행사를 많이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에 온통 골몰하는 모습들이 거의 일반화되어 있는 편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참으로 ‘매우 일그러지고 구겨진 선(善)의 모습’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
여러 좋은 일을 행함에 있어서, 그 본래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자기 자랑에만 골몰하려 하니 말이다.
진정으로 그들을 존중하고, 또 최고로 대하려 한다면, 당신을 위한 홍보보다는, 과연 그들에게 같이 사진 몇 장 찍기를 요청하여 무슨 불편함은 없었는지, 좀 더 도울 일은 없는지, 자신의 선행에 무슨 문제라도 없는지 등에 대한 성찰이 우선되어야 하겠다.
그렇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사람은 진심으로 대해야 할 대상, 최고로 존중하여 대해야 할 대상이다.
아무리 좋은 일에도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결국, 상대를 항상 최고로 대해주는 자만이 상대로부터 결국 진정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설령,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을 최고로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어찌 나쁜 마음을 먹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있겠는가?
아마, 결국 나중에는 그도 당신을 여러 면에서 최고로 대하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당신이라면, 그야말로 묻지고 않고, 따지지도 않고, 더군다나 아무 말도 할 필요조차 없는 그러한 관계를 얻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주의점으로, 위에 잠깐 짧게 언급한 바가 있기는 하지만, 당신의 그러한 배려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 혹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
세상에, 그 무엇에도 백퍼센트라는 것은 없다.
나의 아무리 순수한 마음에 대해서도 나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나의 볼품없는 마음에도 아주 귀하게 받아주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신은 이미 당신의 진정성을 담아 상대를 항상 존중하였고, 또 최고로 대하려고도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즉, 당신은 스스로 해야 할 바를 충분히 다 하였으니, 그 결과에 대해서는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당신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 하는 문제는 오로지 그들의 몫일 것이니 말이다.
당신은 그저 모든 것을 쿨하게 수용하고, 당신이 생각하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항상 메타인지 마인드(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점검을 게을리하지 않으려는 마음)를 지속해 지니고서, 당신의 인적 네트웍을 꾸준히 잘 가꾸어 나가면 되는 것이겠다.
네 번째 주의점으로, 아마 이 부분도 위의 여러 대목에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당신이 최고로 대해야 할 대상을 일부의 사람에 국한시킬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당신이 항상 최고로 생각하고, 최고로 대해야 할 대상을 너무 좁혀 생각하지 말고서, 가급적 넓게 보아, 그렇게 대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주변 관계인을 모두 포함하여도 괜찮다.
당신이 기꺼이 대부분의 주변인들 모두를 그렇게 최고로 대해 주게 된다면, 당신 또한 점차 그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최고로 대우받을 것이 아니겠는가?
단, 당신이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 사람, 당신의 판단 능력을 벗어난 인성을 지진 사람까지 너무 적극적으로 포용할 필요는 없겠다.
자칫, 소중한 당신 마음을 다치기 쉽기 때문이다.
즉, 인적 네트웍의 다양성과 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 바로 네트웍의 질(質)인 것이다.
또, 이 질(質)은 당신이 수용 가능한 범위에 맞는 그러한 질이어야 하며, 처음부터 무리하여 그 범위를 확장하지 말고, 그냥 자신이 충분히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출발하여 점차 그 네트웍을 확장해 나가는 편이 좋겠다.
이런 점만 잘 경계를 해 나간다면, 당신의 인적 네트웍을 얼마든지 크게 넓혀도 될 것이다!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항상 상대방을 두루 최고로 대하는 넉넉한 인품과 미소로서 아주 유명한 편이다.
그러한 그의 성품 덕택에, 그는 장성이 된 이후 초고속 승진과 아울러 대규모 연합군을 통솔하는 총연합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될 수 있었고, 나중에는 대통령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번은 이런 일화가 있었다.
당시 맥아더 장군과 아이젠하워 장군, 두 사람을 모두 만나고 나온 한 여성의 인물평이 있었는데,
그녀가 맥아더에 대해서는 "맥아더를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정말 위대한 장군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에 대해서는 "그를 만나자 내가 얼마나 매력 있는 여자인지 알게 되었다!"라고 평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는 그가 그만큼 상대를 많이 배려하고, 항상 최고로 대하려 하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제발 끼리끼리 어울리기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서,
‘지위고하’나 사회적 위신에 너무 끌려다니지는 더더욱 말고서,
사람을 두루 사귀어라.
누구나 존귀하게 대하여라.
항상 존중하고, 마땅히 최고로 대해 주어라!
그 무엇도 바라지 말고, 그냥 잘해 주어라.
바라지 않으면 당신은 가장 자유로울 것이고, 그 어떠한 배신감이나 허탈감 또한 있을 수 없다.
항상 편안한 ‘자기 만족감’만이 있을 뿐이다.
혹여, 당신이 잘해준 사람으로부터 무슨 보답이 온다면, 그것은 그냥 덤이거나 횡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