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을 제대로 모셔야 나라가 산다!
단군을 제대로 모셔야 나라가 산다!
중국의 저력은 사마천의 “사기”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기”는 전 세계 역사서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저작 중 하나이다.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천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죽는 것보다 힘들다는 궁형(당시 사형보다 더 큰 형벌로 인식되었던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역경을 극복해가며, 죽는 날까지 써 내려간 책이다. 저술 시기도 BC100년 내외로 세계 최고 오래된 반열의 수준이다.
이스라엘의 저력은 토라(모세오경)나 탈무드 등으로부터 나온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거의 필수로 이들 서적을 공부하면서 자라며, 이 책에 나오는 종교, 역사와 사상들이 삶의 기준이자 철학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종교, 역사, 사상 등이 일체화되는 수준이다. 이렇게 유대 교육은 어릴 때부터 엄청난 삶의 지혜에 대한 교육, 도덕적으로 수준 높은 교육 등 전인교육에 올인(all in)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단군을 제대로 모셔야 나라가 살 수 있다. 오만한 정치인들이 정치 지형이 바뀔 때마다 흔히 새로운 국가제조 혹은 국가개조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오만한 짓이다. 국가의 제조나 개조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의 회복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BC2333년에 벌써 우리의 엄청난 역사가 있었고, 그 역사는 우랄 알타이 어족으로써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튀르키예(과거 ‘터키’라고 불렀음) 등의 동유럽, 혹은 서유럽의 일부까지 뻗어나간 것이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이나 튀르키예에 가면 한국말과 유사한 말들이 상당히 많으며, 단군과 조선이라는 용어, 좌식문화, 제사 문화 등 상당히 유사한 문화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동질감 때문인지 이들은 우리나라의 말과 문화를 아주 쉽게 따라 배우고 느끼며, 상당한 우애까지 생기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지 않던가? 튀르키예인들도 스스로를 돌궐 제국의 후예라고 부르면서, 많은 지역에서 어릴 때부터 고구려의 후손인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라 배운다. 튀르키예의 역사 교과서에 따르면 돌궐 제국의 “오르혼 비석”에 고구려는 형제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나라 저력의 근간은 조선(고조선)과 단군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오늘날까지 수천 년 전해오는 고조선의 홍익인간 재세이화(弘益人間 在世理化) 사상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대단한 ‘대사상’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하늘의 이치대로 땅에도 이룬다.’는 이상의 참다운 가치가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단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지 말고, 후손들이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조선상고사 등 다양한 자료들과 아직 발견되지 못한 사료들을 고증을 통해 찾아내고, 나날이 복원의 정도를 높여가며, 한층 드러나게 하여야 마땅하다. 즉 나라와 민족 자긍심의 회복을 위한 역사적 고증 및 연구에 앞으로 한층 더 높은 수준의 투자를 해나가야 하겠다.
또 우리나라가 굳이 건국절을 따로 정하려면 BC2333년 10월 3일(개천절)로 정해야 마땅하다.
최근 정치계, 학계 등에서 건국절을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으로 알려진 1919년 4월 11일(혹은 4월 13일, 4월 23일, 9월 11일 주장설 있음)로 정해야 하느냐, 해방 이후 광복절인 1945년 8월 15일로 정해야 하느냐, 혹은 대한민국 정부 탄생을 국내외에 선포한 1948년 8월 15일로 정해야 하느냐에 대한 의견이 매우 분분하다.
만약 건국절을 1919년 혹은 그 이후로 정한다면, 반만년에 가까운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고작 100년 내외의 협소한 역사 안으로 가두어 버리는 큰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되는 셈이다.
자칫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한국은 1919년에 처음 나라를 세운 초보 국가이구나!”라고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1919년 4월 이미 우리 임시정부가 개천절을 국경일로 선포하였고, 독립신문에서도 이미 개천절을 ‘건국기념일’이라고 표현한 사실이다.
청교도를 위시하여 유럽인들의 식민지 개척의 역사로 시작된 미국의 건국절은 독립을 쟁취한 1776년 7월 4일을 기준으로 하니 약 250년 정도가 되었고, 우리보다 고대국가 형성이 훨씬 뒤처진 일본의 건국절은 BC660년 2월 11일을 기준으로 하니, 약 2,700년이나 된다.
우리가 역사적 중요 기준점을 정할 때는 어김없이 단기(檀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래야 나중에 남과 북의 형제들이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강한 자긍심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함께 발전적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개천절인 10월 3일 이라는 날짜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미국의 경우는 안 그런가? 미국의 독립기념일도 엄밀하게는 날짜의 오류가 있으나, 그냥 문제없이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경우에도, 일본 황실의 시조인 진무 덴노가 BC660년 2월 11일에 일본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일본 학자들 사이에는 진무 덴노가 신화 속에 만들어진 인물로만 인정되고 있기도 하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다소 무리하게 이날을 건국절로 정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도 일본은 여전히 이날을 건국절로 잘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것은 날짜가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개천절의 의미를 제대로 찾고 기리겠다!”라고 하는 자세와 뿌리에 대한 강한 자긍심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단군을 제대로 모신다고 하는 것은 남과 북의 화합, 동서(좌우)의 화합, 빈부의 화합, 오늘도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고려 후예들에 대한 응원, 제외 동포들의 그동안 수고에 대한 위로 등에 큰 모티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나라의 정신적 큰 ‘구심점’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