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것에 자존심 걸지 말아라!
살다 보면 부가가치가 전혀 없는 쓸데없는 주장을 자존심 때문에 고집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은 연속되는 말대꾸나 말꼬리를 무는 형태로 계속 이어지기도 십상이다. 그러나 잘 한번 생각해 보아라. 별 대화의 진전도 없는 상태로 A주장과 B주장이 맞서 평행선만 달리는 경우라면 서로 스트레스만 주고받으며 서로 간의 우의나 감정을 심각하게 상하게 할 수 있다.
초나라왕 한신의 과하지욕(胯下之辱)의 예를 들어보자. 과하지욕이란 “가랑이 사이로 기어서 지나가는 치욕”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옛말에 “한순간의 분노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말과도 유사한 말인데, 바로 큰일을 위해서 눈앞의 굴욕이나 사소한 자존심 같은 것은 접어두고, 순간을 참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신(韓信)이 한고조 유방(漢高祖 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 소싯적에 장차 나라의 최고 명장이 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손자병법” 등의 책을 밤낮으로 탐독하였다고 한다. 또 천하의 최고 명장을 꿈꾸던 터라 늘 아끼던 보검을 차고 다녔다. 하루는 그가 주막에서 아직 출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슬퍼하면서, 술로써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술 몇 모금에 취기가 올라 비틀거리며 주막을 나와 골목에 들어서자 동네 불량배(백정의 아들)들이 팔짱을 끼고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들 중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덩치도 크고 무예에도 꽤나 능한 자인 것 같은데, 늘 보검을 차고 다니는 것 같은데 어디 나와 한번 겨뤄보지 않겠는가?”
한신이 고개를 들어보니 동네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불량배들이 모여 있었다. 싸워봤자 의미(가치)도 없는 것 같아 한신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오늘은 내가 급한 볼일이 있으니 그만 길을 비켜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량배들은 끈질기게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그러면 검술은 몰라도 사람을 죽이는 법은 알고 있을 테지? 겁쟁이가 아니라면 그 검으로 나를 한번 찔러 보거라.”
이 말에 한신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화를 참으며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원한도 없는데 너를 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불량배는 더욱 신이 나서 저잣거리 가운데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서 “배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이네. 이마저도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사이로 한번 기어나가 보아라. 그러면 그냥 보내주겠노라”
한신은 “만약 저 놈을 죽이면 나는 살인죄로 신세를 망칠 것이 분명하고, 이 상황에서 명예나 체면, 자존심을 지켜서 무엇 하리”라고 생각하면서 불량배가 시키는 대로 그의 다리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 지나갔다.
이때 모여 있던 구경꾼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으며, 그 후로부터 한신을 “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놈”이라고 놀려대었다.
훗날 한신이 유방의 오른팔로 되어 한나라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초나라의 왕이 된 후 다시 그 옛 동네에 찾아와서 과거의 사건을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내가 있는 건 그때의 굴욕을 참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옛날 자기를 모욕했던 불량배 두목을 데려다가 오히려 그를 용감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해주며, 중위(中尉; 순찰, 치안 등을 맡는 중간 정도의 벼슬)라는 직책에 임명하여 중요하게 썼다는 것이다. 한신의 이러한 행적이야말로 과연 진정한 용기와 큰 배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한순간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해 소중한 생명을 죽이는 사건이 요즘 많이 보도되고 있다. 잠시의 굴욕이나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려는 자들은 한신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과하지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