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by 포차

새롭게 참여한 독서모임에서 3월달 도서로 밀란 쿤데라의 책 [참을수 없는 존재]을 선정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예전부터 책의 이름을 들어보았지만, 제목만으로 어려워보여 시도해보지 못한 책은 이번 독서 모임 덕분에 읽을수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독후감 –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에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무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가벼운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에서 출발한다. 삶이 단 한 번뿐이라면, 그 무게는 가벼운 것일까? 아니면 가벼운 삶 자체가 오히려 더 무거운 것일까? 쿤데라는 이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리지 않는다. 대신, 네 명의 인물을 통해 우리가 직면하는 딜레마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무거움을 받아들이는 것, 혹은 피하는 것


토마시는 관계의 가벼움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결국 테레사의 무거운 사랑을 받아들인다. 테레사는 사랑을 운명처럼 여기며 토마시를 붙잡았고, 그 관계는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였다. 하지만 결국 토마시도 그녀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삶을 선택했던 사람이었지만, 그는 변했다.


반면, 사비나는 끝까지 가벼움을 선택했다. 무거운 관계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지만, 그녀의 가벼움은 점차 고립으로 변해갔다. 완전한 자유가 꼭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녀의 삶이 보여준다.


프란츠는 신념과 이상을 좇으며 무거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이 믿었던 것들에 의해 무너져 내린다. 무거운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가벼움을 선택하는가, 무거움을 감당하는가?


삶은 가벼울 수도, 무거울 수도 있다


책을 읽는 도중 나는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나는 대체로 무거운 삶을 살고 있는듯하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매순간 생각이 많았고 고민도 수만가지다.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한다. 고민을 거듭하다 풀어낼수 있는 수단이 나에게는 글쓰기다.

그와 반대로 때로는 가벼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 생각과 고민이 많아 너무나 무거워질때면 하염없이 가벼워질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어딜가나 헤드폰을 들고다니는 내 모습은 그러한 가벼움을 상징하는 도구이다.


책을 읽기전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나뉘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니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무거운 사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가벼운 사람이 무거움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토마시는 테레사와 함께 시골로 떠나면서 무거운 삶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하다. 가벼움과 무거움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 삶도 그러하길 바란다. 깊은 고민과 책임을 짊어지면서도, 그 안에서 가벼움을 찾을 수 있기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받아들이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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