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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될 용기가 생길 때까지

by 다롬

대구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KTX를 타러 동대구역으로 갔다. 시원한 고객대기실에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플랫폼으로 나왔다. 내가 탈 호차 앞에 서 있었는데, 옆에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조그만 아이와 그 손을 꼬옥 잡고 있는 젊은 남자를 봤다. 너무 젊어 보였지만 아이의 아빠가 아니라고 하기엔 아이를 보는 그 사람의 눈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웃는 표정에 사랑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열차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아이의 키에 맞춰 옆에 쪼그려 앉더니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고는 둘 다 곧 열릴 듯한 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틈에서 한껏 상기된 표정의 젊은 여자가 내렸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던 아이와 남자를 보고 활짝 웃었다. 아이는 두 팔을 벌려 뒤뚱뒤뚱 최선을 다해 걸어갔고, 그 여자는 쪼그려 앉아 아이를 맘껏 안았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보며 생긋 웃었다. 그러고 여자는 아이를 안고,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올라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본 그 가족. 꽤 길었던 대구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었다. 어찌나 예뻐 보였는지 그때 내 눈에는 그 가족만 반짝반짝 포커스 되어 보였다. 언제 아이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결혼 4년 차. 요즘은 이렇듯 아기들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아기와 함께 있는 젊은 부부의 모습은 특히 더. 둘 만의 신혼을 즐기고 있는 우리 부부의 다음 단계라 여겨져서 그렇겠거니 한다.



'일단 낳으면 어떻게든 키워진다.'라는 주변인들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이전 생활에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충분히 신혼을 즐겼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이를 낳는 것은 거의 부부의 인생을 거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한 인간을 낳고 키우는 것에는 상당한 노력이 수반된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3.5단계(결혼과 출산의 사이)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 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



2세 계획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얼마나 많이 했으면 이 고민이 나의 책에도 아예 소제목 하나로 들어가 있다. 그런데 고민만 많지 여전히 이렇다 할 계획은 없다. 감히 엄두도 안 난다. 우리 나이 서른, 벌써 부모가 된 친구들을 보면 진정한 어른으로 보이고, 그 대단한 모습을 보면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역시 우린 아직 덜 컸어' 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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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결혼하면 평생 재밌게 살게 해 줄게!"


이 남자를 놓칠세라 제주도에서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26살의 나는, 청혼의 멘트로 웃기지도 않는 말을 냅다 던졌다. 웃기지도 않지만 사실 내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말이었다. 지금도 내 꿈은, 남편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재미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재밌다. 저녁마다 가는 산책에서 우리는 늘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한다. 너와 나. 우리.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나라. 시작하고 싶은 운동, 내일 장 봐서 요리해 먹을 메뉴, 보고 싶은 책, 오늘 자기 전에 볼 다큐멘터리. 그 안에서 가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그때마다 '한 명은 낳아서 잘 키워보자! 언젠간!'이라는 하나마나 한 말만 하고서 금방 야식 얘기로 후다닥 넘겨버리곤 한다. 아직은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라는 것에 둘 다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오직 서로만 케어하면서 큰 부담 없이, 나의 주도로 2년 전부터 자유로이 해외살이를 하는 지금은 늘 여유롭고 평화롭다. 남편은 매일 앞으로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조잘대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이 반짝이는 눈으로 평생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2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이다. 출산과 육아라는 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 후에는 과연 남편의 이 반짝임이 어떻게 될까 봐서 겁이 난다. 물론 나도 그럴 수 있겠지만, 책임감에 짓눌려 남편이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다. 마찬가지로 계획은 있지만 아직 아이는 없는 신혼인 내 오랜 친구. 우리는 학생 때 얘기, 친구들 얘기, 남편 웃긴 얘기를 하다가 아기에 대한 얘기를 했다. 둘 다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지인들의 육아를 보는 간접적인 체험은 꽤나 했기에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했는데, 특히 친구가 전해주는 멋진 엄마의 육아법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삶을 육아로부터 분리해서 철저히 지켜내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일을 해내는 엄마.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남편도 나도, 우리를 잃지 않으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수도 있겠다. 남편의 이 반짝거림을 지켜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말도, 부정적인 말도 여전히 우리에겐 어떤 허상처럼 들린다. 우린 아직, 부모가 될 용기가 없다. '상황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그 핑계 뒤에 숨어 제대로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렇다고 딩크로 살자는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막연히 '언젠가는...'이라는 생각만 할 뿐.


겁 많은 나와 남편은 결국 평생 이렇게 둘만 살게 될 수도 있지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문득 이제 괜찮겠다 생각이 드는 날이 오길. 언젠간 우리에게도 부모가 될 용기가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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