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언어영역] '아메토라'를 읽었습니다.
패션디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패션에 관심은 많다. 특히나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스타일은 명확한 편이다. 옷은 단순하고 깔끔하게 입는 것을 좋아하고, 포인트는 가방, 주얼리, 안경 등 액세서리로 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옷은 색감과 재질에 관심이 많고, 디테일이 많은 옷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태생이 여자인 것도 있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계에 몸담고 있는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한국디자인사학회에서 기획했던 디자인사연구 기획강연을 강의하셨던 영국 브라이튼대학교의 이윤하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일본이 어떻게 해서 청바지의 전통고장인 미국을 넘어 청바지를 포함해 패션의 선도국가가 되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결국 그 해답은 단순했다.
"복제하고, 쇄신해 나아간다. = 보호하고! 파괴하고! 구별 짓는다." p.350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미국 스타일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고, 얻어진 결과에 일본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규칙성'을 부여하여 만들어놓은 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미국 트래디셔널 패션에 대해 깊고 깊게 파악했다. 파악한 내용을 기반으로 반복적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시도하며 실패했고, 일본의 장인정신에서 흘러나오는 고품질을 추구하는 일본 특유의 민족적 특성을 반영하여 결국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창조해 냈다. 처음에는 미국을 재현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미국인들이 일본패션에 열광하게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패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이시즈 겐스케(VAN 재킷의 설립자)의 노력으로 유니크 클로싱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 UNIQLO)는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 또한 유니클로의 설립자 "야나이 다다시가 명백히 이시즈를 염두에 둔 것 아니지만, 유니클로 디자인의 핵심에는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룩이 자리 잡고 있다."(P.332)고 밝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이 미국과 견주어 뒤질 바 없는 패션산업의 세계적인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결국 당시에는 우스워보이든지, 보잘것없어 보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저 파고 또 팠던 끊임없는 탐구와 시도이다. 진부한 답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답처럼 느껴지지만 이것만큼 확실하고 명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오래된 중고 리바이스 오리지널 청바지들을 미국 변두리로 찾아다니며 사모았던 그 시절, 빈티지 시장이 돈이 되었기 때문에 비즈니스적으로 일본인들은 달려들었을지 모르지만, 누가 봐도 일본은 참 보잘것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절이 있었기에 더 이상 리바이스 청바지의 재현이라는 잔재에 종속될 필요가 없는 지금의 일본 청바지가 존재한다. 책의 제목처럼,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의 일본판 버전, '아메토라'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 패션에 규칙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색감매치나, 체형을 커버하기 위한 기본적인 가이드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책에서 언급하는 '아이비스타일'과 같이 꼭 어떻게 입어야 한다는 것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구식이며, 촌스럽게 느껴진다고 할까. 명품을 입는다고, 비싼 브랜드를 입는다고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듯,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정한 패션의 핵심이 아닐까.
어렸을 때는 명품가방을 가지는 것에 설레었고, 그로 인해 행복했지만 지금은 명품보다 감각적이며 돋보이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인스타 속 개인 브랜드들에 더 눈이 가고 더 멋스러워 보인다.
이 책이 나의 전공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거나, 이론적으로 배울 것이 있는 전문서적은 아니다. 패션 관련 책이라고 말하기에는 몇 장안 되는 사진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글밥으로 채워진 두텁다면 두터운 책.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것은 결국 분야와 상관없이 결국엔 인내심을 가지고, 그저 파고 또 파고, 공부하고 질문하는 세월들이 쌓이고 쌓일 때, 그 누구도 범접하라 수 없는 나만의 무엇이 생길 수 있다는 진리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고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는 지금이 무언가 모르게 뿌듯한 오늘이다.
P.341
21세기에는 일본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미국적인 걸 더 잘 만든다는 사실이 일반적인 통념이 됐다.
P.344
"과연 누가 트래디셔널 아메리칸 스타일이 미국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본인들은 분명히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P.346
-당신의 문화라면, 중간에 배우는 것 멈추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구석구석까지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죠.
"질문 하나가 다른 질문을 만들어가고, 50년 동안 쌓이며 아메리칸 스타일에 대한 전례 없는 집학적 이해가 이 나라에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