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마당이 있는 제주로 이주하고 난 후 아이들은 개를 키우자고 부쩍 조른다. 이주를 설득할 때 아내가 아이들에게 분명히 약속한 사항이긴 하다. 하지만 아내는 개털 알러지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아이들은 근처 공방에 묶여 있던 개를 산책시키면서 허전함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두 마리 모두 태어나서 산책을 해 본 경험이 없는 터라 아이들과 호흡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 뭉치는 그나마 몸집이 작은 웰시코기라 좀 나았지만, 길동이는 큰 진돗개 믹스견이라 아이들은 질질 끌려다닌다. 얼마전 지인이 골든 리트리버를 분양해 주겠다는 말에 우리는 잠시 들떴지만 아내의 완강한 반대에 무산되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우리나라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동물보호단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들과 함께 열악한 번식장과 보호소의 실태를 눈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되고 돌아갈 수 있는지를 실랄하게 보여준다.
| 보호소의 개들
보호소에서 개들이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3가지이다. 자연사, 안락사, 입양이다.
어떤 언어를 들으면 머릿속에서는 그와 관련된 이미지가 활성화된다. 자연사, 안락사, 입양이라 말이 불러 일으키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언어가 누락한 현실을 발견하고, 이미지가 조장한 허상을 거부하는 일은 중요하다. 어떤 자연사는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는 것을, 어떤 안락사는 고통사라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어떤 입양은 죽음이라는 급행열차라는 것을 언어는 알려주지 않는다. (144쪽)
| 번식장의 개들
번식장의 개들은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 개는 두가지가 있었다. 먹는 개와 애완견이다. 사람들이 반려동물로 많이 키우는 개들은 번식장에서 생산이 된다. ‘생산이 된다’라는 말이 적확할 정도로 번식장의 개들은 아기낳는 기계에 불과했다. 더 많은 생산성이라는 말은 더 많은 임신과 출산을 의미한다. 더 작고 귀여운 개들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3대에 걸친 근친교배도 성행한다. 생산할 수 없으면 버려진다.
먹기 위해 사육되는 개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밥은 우리가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들이다. 그 쓰레기들을 모아 갈고 난 후 발효제나 여러 것들을 섞어 개들의 먹이로 사용한다. 주인들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를 받아서 돈은 벌고, 그것으로 개들을 사육한다. 그곳은 정말 우리 사회의 하수구 처리장과 같은 곳이다.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없으면 그 많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당당하다. 그렇게 키워진 개들은 음식점으로 보내져 일명 몸 보신용으로 사용된다. 정말 그것이 건강에 도움이나 될까?
| 개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
개를 둘러싼 여러 논쟁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소, 닭, 돼지는 되고 왜 개만 안되냐고 평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하향 평준화이지 진정한 평등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먹을 권리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겐 안전과 위생을 담보할 수 없는 먹거리라는 논리로 맞선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문화적 상대주의로 공격하는 이들에겐 보편성에 반하는 상대주의를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지 되묻는다.
특히 ‘나는 개는 먹지 않지만 개를 먹는 사람들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도 저도 아닌 대다수 사람들이 찬성하는 개고기를 합법화에 대해서도 크게 경계한다. 그건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또 하나의 동물을 잔인한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짜 잔인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동물과 인간 모두를 무생물의 기계로 다루는 현대 축산업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개든 고양이든 곰이든 말이든 새로운 동물을 저 잔인한 축산 시스템에 밀어 넣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최소한의 도덕성이다.(211쪽)
내 글 솜씨로는 이 책이 설명하는 우리나라 개 사육 시스템에 대해 잘 표현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읽다 말고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악취가 싫고 비위가 약해 마주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해 왔던 우리의 자화상이 여기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피하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