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떠나온 나는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by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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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에 있는 학교에서 수십년 간 고전어(그리스어, 라틴어, 헤브라이어)를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 고전어에 정통한 그를 학생들은 세계, 우주를 의미하는 라틴어인 ‘문두스’라는 별명으로 부를 만큼 존경했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이를 위해 끊임 없이 매일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비 오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같은 길을 걸어 학교로 가던 그레고리우스는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한 투신하려던 한 포르투갈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강의 도중 홀린 듯이 일상을 팽개치고 그녀를 찾아 포르투갈 리스본행 야간 열차를 탄다.


떠나기 전 서점에서 구한 포르투갈어로 된 책을 번역하며 기차 여행을 시작한 그레고리우스. 리스본에 도착한 그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인 의사 아마데우 프라두에 대해 알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의 생애를 탐험한다. 알지 못하는 나라(공간), 알지 못하는 언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행. 그 조차도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듯 하다.


파스칼 메르시어 가 쓴 '리스본행 야간열차'. 세번째 도전만에 겨우 읽기 성공한 책이다. 첫번째 시도에서는 낯선 지명과 낯선 이름이 몰입을 방해했다. 두번째는 중반 이후 다른 생각에 매달려 집중하지 못해 포기했다. 이곳 제주에 내려와서야 편안하게 안방 툇마루, 근처 까페에서 집중해 읽을 수 있었다.


익숙한 일상이 반복되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공간을 떠나는 일이 어떻게 그레고리우스에게 가능했을까? 그는 새로운 공간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했을까? 누군가에겐 익숙한 공간일 그 곳이 왜 떠나온 사람에겐 다른 의미가 되는 걸까? 공간의 이동이 사람들에게 왜 새로운 힘을 주고 흥분을 주는 걸까? 여행 전 그와 여행 후 그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일상에 불만이 없었던 그레고리우스와는 달리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자신감은 바닥이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나름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불합리한 제도와 학교 내 권력자들과 늘 맞서는 자리에 서있었다. 그러나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교육 현장에서 마치 나는 굴러가는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머리색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학교.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교사와 학부모들. 꿈꾸기에는 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들. 심장이 빨리뛰고 숨이 막혀왔다. 우울해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여전히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두고.


“네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기억해.
어쩌면 내일일지도 몰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내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의 삶은 옛날과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까? 스스로가 반드시 죽는다는 걸 늘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코 체험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린 가끔 누군가의 죽음으로 간접 경험을 해보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무감해진 스스로를 보고 놀라게 된다. 늘 내일이 있을 것처럼 달리는 나를 발견한다.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서 돈이 되거나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단지 우연히 읽은 책의 주인공을 찾아나선 것이 맘에 들었다. 떠나온 나도 이곳에서 죽기 전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될까? 이곳에서 나만이 의미를 부여한 무의미하고 소소한 일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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