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은 산업화된 사회의 마지막 안전판이다
백년의 급진, 중국의 현대를 성찰하다.
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게
3년 전 쯤 이 책을 누군가에게 받고서는 읽지 않았다. 지리를 공부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가지 않는 나라는 중국이다. 멀리 있는 나라들은 이야기만 들어도 흥분되는데, 중국은 한 번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 한문 수업시간에 숙제를 안했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맞아 시퍼렇게 멍들어야 했던 나쁜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가깝고 비슷한 문화는 시시하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그럼에도 이 책을 꺼내 읽은 이유는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서기 때문이다. 제주에 내려오니 도서관에 가기가 너무 힘들다. 20km 이상을 차로 달려야 괜찮은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고육지책으로 그동안 책장에 뽀대용으로 고이 모셔 두었던 한 번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 읽거나, 읽지 않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읽을 것이 없을 때 쯤에 체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꺼내들었다.
| 중국 경제 위기의 안전판은 소농중심의 농촌
서구사회와는 달리 식민지로부터의 자본 축적이 불가능했던 중국이 지난 백년 간 어떻게 공업 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느냐에 대한 나름의 경험을 토대로 한 분석과 미래를 위한 주장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특히 서구 자본주의적 시각이 아닌 중국 자신의 경험을 분석해 중국의 공업 발달을 논하고 있다. 공업 국가와 자본 축척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농업과 농민, 농촌에 대한 이야기가 내용의 핵심이다.
저자는 미국, 유럽과는 달리 식민지를 통한 자본 축적이 힘든 중국의 경우 농촌, 농민, 농업(이른바 삼농)을 통해 공업 발전을 위한 원시적 산업 자본을 축적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공업화를 위한 외국 자본 유입으로 인해 발생한 국가 위기 때마다 소농중심의 농촌과 농업이 중국을 구한 안전망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1950년 이후 중국 농민들은 토지개혁으로 일정량의 토지를 소유하게 된 ‘소자산계급’의 소농이 인구의 대부분이었다. 중국이 여러 차례 외국 자본 유치를 통해 공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채무 때문에 위기가 계속 발생했었지만, 그 위기 당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다시 소농경제로 돌아감으로써 위기를 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마오쩌둥 시기에 청년들을 강제로 농촌으로 이주시킨 정책들은 중국의 이런 위기들과 맞물려 시행된 조치들이었고, 소농 경제는 풍유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극단적 빈곤의 위험으로 보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오늘날 중국은 청년들을 농촌으로 강제로 내려보낼 강력한 정책을 시행할 힘을 더이상 가지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이 삼농(농업, 농민,농촌)을 중심으로 소농경제를 지킨다면 미래에 다가올 위기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반대로 중국 정부가 도시에 의존해서 공업을 발전시키고, 금융 자본 강화를 통해 내외적 안정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자유전(농사 짓는 사람들이 농토를 소유하게는 하는 것)의 원칙을 깨뜨리지 말고, 급진적 토지 사유를 통해 외부 자본에 의해 농토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이른바 효율성을 위해 추구하는 농토를 대규모화 시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농업 정책을 추구하면 안된다. 이런 정책이 가능한 나라들은 토지가 넓고, 식민지를 통해 자본 축적이 가능했던 미국, 유럽의 소수 국가들 뿐이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벼농사, 소농 중심의 아시아 국가들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서구 농업 정책을 배워온 학자들이 대다수인 우리나라 역시 소농을 퇴출시키고 대농장을 만들어 규모의 농업 정책이 여전히 추진되고 있고, 여기에 돈이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소농들은 기계화와 규모의 경제를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비전이 없는 곳에 젊은이들이 없고, 그로 인해 심각한 고령화 사회와 인구 유출을 경험하고 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나라 농가 인구는 전체 인구의 5%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농가인구 10명 중 4명은 65살 이상의 고령자이고, 농가 인구의 중위연령은 59살로 전체인구의 중위연령 41살보다 18살이나 높다. 중위연령은 그 지역의 인구를 나이별로 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위치한 나이를 말한다. 농촌은 60세 어르신들이 딱 중간 나이다.
| 기억에서 지워지는 농촌, 농민, 농업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집권한 진보적인 대통령과 여당에서조차 제대로 된 농경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사실상의 농촌과 농업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도시에 사는 많은 젊은 사람들은 고향이 더 이상 농촌이 아니기에, 농촌과 농민, 농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 오히려 이들에게 농민들은 수구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올드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강한 듯 한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했던가? 미디어에서도 농업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농업, 농촌에 관한 뉴스와 기사는 강력 범죄가 아니고서야 이제 찾기가 힘들다. 이들은 이제 대다수가 도시에 살고 있는 중심 세력(?)에 의해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11월 8일 농민 단체들은 농정 대개혁을 주장하며 청와대 앞에서 실시한 60일 간의 단식 농성을 무관심 속에서 마무리했다. 촛불로 집권한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기업과 눈치를 보는 GMO(유전자 변형 생물) 완전표시제 후퇴, 자본을 위주로 한 스마트팜 등의 정책 등에 대해 비판하는 농성이다. 아울러 책임 있는 농정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여전히 서구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 정책이 추구되는 우리나라 정부도, 소농이 공업화된 중국(한국, 일본)을 살려왔고, 또 앞으로도 여전히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원톄쥔의 설득력 있는 주장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