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사람이 있다
체공녀 강주룡 / 박서련 장편소설 / 한겨레출판
철원이라고 발음하면 마치 조선시대 함경도, 평안도의 스산한 풍경이 그려진다. 그리고 머리 속에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 군인, 군부대, 지뢰, 추위, DMZ그리고 동료의 죽음 등이다. 약 25년 전 철원 어느 부대에서 병사로 약 2년 간 군생활을 했다. 아마 그 당시 내 머리 속에 각인된 것이리라. 그곳은 변방! 나에게 철원이란 내부에 속하지 못하는 경계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공간이다. 현실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군복을 벗어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어떤 곳이었다.
책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갑자기 ‘철원’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곳이 작가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자기가 살아온 공간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변방이라는 공간(지역)에서 형성된 정체성과 더불어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이 더해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억측이고 과장일까?
이 책을 읽고 받은 느낌은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변방에 대한 보고서를 읽은 것 같다는 것이다. 변방은 단순히 장소(공간)일 수도 있고, 사람(소수자, 약자)일 수도 있다. 일제 치하 변방에 있었던 조선인들, 그 중에서도 쫓겨나 간도에 살았던 이들, 그 중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삶은 변방 중의 변방이다. 현재도 여성, 노동자의 삶은 변방이 아니던가? 하물며 당시 ‘여성+노동자’로서의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지리적으로 보면 철원은 용암대지 위에 형성된 곳이다. 땅 속의 마그마가 육지의 갈라진 틈을 타고 물처럼 흘러내리면서 골짜기들을 메워 너른 평야를 만들었다. 그 평야에선 벼농사가 활발하다. 철원을 흘러가는 한탄강에는 용암이 식어서 만든 수직의 절리(주상절리)가 드러난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를 따라 급하게 흐르는 물길은 이곳을 래프팅 명소로 만들었다.
한탄강에 있는 고석정에는 힘찬 물줄기와 함께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임꺽정의 전설이다. 이 곳에서 백정이었던 의적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숨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런 전설은 이 곳이 오랫동안 변방이었음을 알려 주는 듯 하다.
변방의 하찮은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이다. 당시 평양사람들은 가장 소외되었던 여성+노동자 강주룡이 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을밀대에 올랐을 때만이라도 그녀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당시 평양 사람들보다 우리의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저기 사람이 있다
체공녀 강주룡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이다. 저 말은 여전히 소외되어 높은 곳에 올라간 이들을 본 우리가 질러야 할 소리가 아닐까? 그게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3327.html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8301524334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