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앞마당에 5평짜리 작은 목조 온실을 스스로 짓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덩그러니 기초만 남아있다.
막상 허가를 내놓고도 온실 짓기를 주저하는 내가 한심하다. 그런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주문한 공구들은 아들방 한 구석에서 ‘도대체 언제 나를 사용할 거냐?’고 하소연을 하고 있고, 핀터레스트를 보며 스케치북에 그렸던 설계도들은 ‘짓지도 않을 거면서 뭐 그리 열심히 그렸냐?’고 헛웃음을 치고 있다.
‘작은 온실 따위 하나 짓는데 뭐 그리 주저하느냐?’고 물으신대도 이젠 더는 변명을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온실은 도대체 언제 지어지는 거냐며 혀를 끌끌 차신다. 아마 허가를 내 준 행정기관 담당자도 ‘허가받을 때는 그렇게 떠들썩하더니 이 집은 도대체 언제 온실을 짓는 거야? 허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라며 텅 빈 마당의 항공사진을 쳐다보며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해봤다.
나는 뭐가 이리 두려울까?
목재 주문을 위해 목재상에 전화하는 게 두렵고, 예쁘게 지어야 한다는 아내의 엄포에 기가 죽는다. 전동공구를 사용하다 다치는 끔찍한 상상에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온실을 보고 한 마디씩 내뱉을 말들에 미리 마음이 흔들린다. 무엇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걱정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하루를 보내는 내 모습이 가장 힘들다.
이 온실 글쓰기 프로젝트는 다짐을 넘어 온실을 완성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공표이자 마지막 수단 같은 것이다. 채찍질을 넘어 나에게 하는 계엄령 같은 것이랄까? 반대로 어쩌면 글쓰기는 온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방패막이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온실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라도 알아야겠다는 심정이다. 글쓰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다. 온실 짓기는 이미 나에겐 단순한 가설건축물을 넘어 버렸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미뤄 온 이유들을 찾기 위해 차곡차곡 내 모습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글의 내용이 온실과는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반드시 온실과 관련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의 들쭉날쭉한 기록들이 오랫동안 축적되면 보이지 않던 큰 흐름을 보여주는 귀한 통계 자료가 되듯이, 하루하루 성실한 글쓰기를 통해 기록들을 축적하다 보면 어떤 의미들의 윤곽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50년 살아내도 제대로 이해가 안 되는 나를 더 알게 되지는 않을까?
온실 글쓰기 프로젝트는 우리 집 마당에 작은 온실이 완성되면 마무릴 될 것이다.
제발,
글쓰기와 온실이 둘 다 완성될 수 있기를 손 모아 기도해 본다.
앞마당에 2년 전 마련한 후 덩그러니 남아있는 온실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