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는 억울하다

2025. 8. 6

by 도토리


예수님과 일행이 어느 마을을 여행하는데 마르타라는 여성이 이들을 집에 초대했다. 마르타는 손님을 초대했으니 당연히 예수님과 일행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깍쟁이 같은 여동생 마리아는 눈치도 없이 예수님 옆에 딱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마르타는 참다못해 ‘예수님, 마리아에게 저 좀 거들어주라고 말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한마디 한다면 아무리 눈치 없는 마리아라도 자신을 도울 수 밖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예상외다. ‘마르타, 실제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인데 당신은 너무 많은 일에 마음을 쓰고 걱정하시네요. 마리아가 당신보다 좋은 선택을 했어요.’ 라며 오히려 마리아 편을 드시는 게 아닌가!


어릴 때부터 성경(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마르타도 아닌데 분개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읽어도 비슷하다. 사람을 집에 초대했으면 당연히 화장실 청소도 하고, 그릇도 닦고, 음식도 준비하고 해야 할 것 아닌가? 근데 동생 마리아는 도무지 꼼짝을 안 한다. 여러 일을 도맡아 하면서 속으로 동생이 얼마나 얄미웠을까? 그래서 참다못해 예수님께 마리아를 좀 혼내 달라고 부탁했는데, 예수님은 반응이 생각과는 반대였다. 언니는 얼마나 더 열이 받았을까? 그리고 자존감이 무너졌을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내가 느낀 감정을 추가해 살짝 각색했지만, 마르타의 마음과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도 예수님은 그림자 노동을 스스로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음식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을 시중들거나, 청소나 빨래 등의 일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천 년 전 당시에도 여성의 그림자 노동의 영역이라는 걸 성경을 조금만 읽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섬인 제주도 그런 문화가 강해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걸 지금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긴다는 하소연을 여성들의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러니 2천 년 전 당시는 오죽했을까?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은 여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요즘 말하는 소위 ‘에겐남’ 스타일의 남성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건 아마도 당시 종교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비판적이었던 예수님의 태도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는데, 부패한 권력을 누리는 이들이 바로 남성들이었고, 이들은 늘 예수님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반대로 예수님은 자주 여성을 돌보고 옹호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간음한 창녀를 감싸는 모습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감당한 그림자 노동을 경험했다는 표현은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시대적으로 예수님이 그런 일을 했더라도 이를 기록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권력을 비판하는 데는 두려움이 없었고 여성들을 옹호했던 예수님이지만, 경험하지 못한 그림자 노동으로 유지되는 사회적 압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셨던 건 아닐까?

돌아보면 특히 가정에서의 삶은 그림자 노동 없이 유지될 수 없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셨던 ‘오병이어’의 기적은, 자식을 먹이려고 도시락을 싼 어머니의 노동에서 시작되었고, 가나의 혼인 잔치 준비와 정리 역시 여성들의 몫이었을 거라는 걸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시 돌아가보자. 예수님과 일행이 마르타의 집에 도착했는데 음식 하나 준비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몰라도 따라온 일행들은 분명 투덜거렸을 게다. 대놓고 말하진 않아도 뒤에서 수군거리는 그 사회적 압력을 그 가정의 가장 격인 마르타에게 다 감당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특히 익명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마르타는 그곳에서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쓰는 건 예수님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나는 마르타의 억울함에 자주 ‘필’이 꽂힌다. 당시 떠오르던 ‘핵인싸’였던 ‘예수님과 아이들(제자들)’이 떠나고 마르타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잔치를 준비하고도 오히려 인정받지 못했다는 억울함과 허무감을 마르타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모두가 떠난 집에서 마르타는 마리아를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고, 그 마음을 어떻게 풀었을까?


어릴 적부터 해소되지 않는 억울함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모두의 상호작용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억울하다는 감정을 많이 느꼈다. 돌이켜보면 억울함은 행위의 비교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억울함은 인정받는 행위를 통해 만족감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이 그런 노력을 늘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해 주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따라서 나는 나를 매 순간 인정하고 칭찬해 주어야겠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이럴 때 쓰라고 내려온 국가와 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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